이방인의 감탄, 원주민의 눈물 | 멕시코 젠트리피케이션

진짜 장벽은 국경이 아니라 돈과 자본이 만든다

by morasafon

“인간의 본성은 어디든 비슷하죠.”


5년째 멕시코에 살고 있다는 미국인 Lucas(가명)는 국경도시에서 자랐다. 그는 세상을 여행하며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느끼고, 삶에서 비슷한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환경에 적응하며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음 깊은 곳에는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차이라는 건 어쩌면 아주 겉으로만 보이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 표면을 살짝만 긁어내면, 우리는 모두 같은 감정을 느끼죠.


이해는 하지만, 짜증이 나는 것들


“아이러니하게도, 한 나라에 오래 머물며 그 문화에 깊이 들어갈수록 또 다른 차원의 문화차이가 다시 나타나요. 정말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요.”


Lucas는 멕시코에서 살며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바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늘 늦어요. 항상요. 여기서 몇 년을 살았고, 이젠 그럴 거라는 걸 예상하고 이해하지만, 여전히 화가 나요. ‘대체 왜 제시간에 올 수 없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약속에 늦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는 건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멕시코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Lucas에 따르면 멕시코인들 역시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편적인 감정은 같다. 하지만 그 상황을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그들은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약속에 늦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것’에 가까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깊은 습관이었다.


“서로의 문화를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짜증이 나는 거죠. 그들도 그게 자기 나라의 나쁜 습관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걸 알아요. 그게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들죠.”


“모든 것이 싸다”는 잔인한 감탄사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멕시코인들이 미국인에게서 느끼는 이상하고 짜증 나는 지점은 무엇일까. 혹시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미국인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너무 빡빡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내 질문에 Lucas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불평하는 것은 그런 사소한 생활 습관이 아니었다.


“그들이 불평하는 건 훨씬 더 본직적인 문제예요. 은퇴한 미국인들이 연금을 들고 멕시코로 와서 집을 사요. 미국에 비해 생활비가 훨씬 싸니까요. 그들은 ‘와, 멕시코는 정말 모든 게 싸!’라고 감탄하며 돈을 자랑하죠. 하지만 멕시코 페소로 월급을 받는 현지인들에게 그건 전혀 싸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멕시코의 아름다운 소도시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는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은퇴한 미국인과 캐나다인들이 몰려들면서, 한때 중산층 멕시코인들이 살던 평범한 동네는 집값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원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도시를 점령했어요.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죠. 이젠 그들의 도시가 된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는 ‘제발 여기 좀 그만 와. 너희 나라로 돌아가’와 같은 격한 반응들이 쏟아진다고 했다. 많은 외국인들은 현지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영어 사용 커뮤니티’ 속에 머물렀다. 멕시코의 전통적인 건축물과 색채가 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도시는, 외국인들을 위한 ‘멕시코 디즈니랜드’처럼 변해버렸다.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우리가 기댈 유일한 희망


결국 멕시코인들이 미국인에게 느끼는 가장 큰 불만과 분노는 문화적 이질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유한 외국인들이 몰고 온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즉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빼앗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을 때, 많은 멕시코인들은 ‘잘됐네, 우리도 미국인들이 여기 오는 거 싫어’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진짜 무서운 벽은 국경에 세워지는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돈과 자본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다.


그는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인을 ‘차갑고 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여전히 친절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친구가 되어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거대한 갈등 앞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초대장,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지.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경제적으로 쇠퇴하거나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도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지역 변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여, 기존 저소득층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주거 대체(residential displacement)' 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산 미겔 데 아옌데 지역에는 약 14,000명의 미국 거주자가 살고 있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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