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되지만 당신은 안 돼요 | 외국인 취업의 벽

환대는 진심이었으나 자리는 없었다

by morasafon

‘단일민족’.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거리에선 다양한 언어가 들리고, 국적도 피부색도 다른 이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간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마음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미디어는 연일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정착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아직은 낯선 시선과 부족한 제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겪는 어려움들. 이민자들에게 한국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 안에서, 정해진 역할에 머무는 동안에만 유효한 ‘조건부 환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결국 떠나야만 했던 영국인 Lukara(가명)에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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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는 진심이었다


그녀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흑인으로서 겪게 될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국행을 포기한 뒤, 수많은 긍정적인 후기와 친한 친구의 기억을 믿고 선택한 곳. 그 믿음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 재앙 속에서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세계가 패닉과 불신에 빠져들 때, 한국은 놀라울 정도의 질서와 공동체 의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어요. 한국인들은 이 위기를 더 잘 다룰 거라는 느낌이요. 그리고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죠.”


그녀는 한국 사회의 빛나는 순간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기는커녕, 오히려 공동체의 보호와 지지 속에서 안전함을 느꼈고, 마치 국적을 넘어 ‘우리’라는 이름의 공동체 일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경험한 환대는 분명 진심이었다. 이 환대의 기억은 그녀가 한국 생활을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마주한 낯선 규칙들, 그리고 한국의 학원 문화


하지만 그 환대의 울타리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녀는 낯선 규칙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녀는 몸담았던 ‘학원’에서 한국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도 세 시간씩 의자에 앉아 있는 풍경. 지쳐서 꾸벅꾸벅 졸거나, 창의적인 활동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한 번은 학원 원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거냐고. 원장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바쁘면 딴짓을 할 시간이 없잖아요. 문제를 일으킬 틈을 주지 않는 거죠.”


‘푸시, 푸시, 푸시(push, push, push)’. 아이들뿐 아니라 그녀와 같은 영어 강사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과 개인의 사정보다 조직의 목표를 우선하는 문화. 점심시간, 숟가락을 막 입에 가져가려는데 “새로운 학생이 왔으니 상담해야 한다”며 자신을 부르던 원장의 목소리.


그녀는 점차 깨달았다. 이곳의 규칙은 ‘다름’을 존중하기보다, 정해진 틀 안에 모두가 같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위기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었던 강력한 공동체 의식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개인을 옥죄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환대의 울타리는 어느새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많은 외국인 강사들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그녀는 씁쓸하게 말했다.


외국인 취업의 높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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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환대의 유효기간을 실감하게 된 것은, 그녀가 ‘영어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넘어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한 때였다. 그녀의 본래 경력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국에서 1~2년간 적응 기간을 거쳐 자신의 전문 분야로 돌아가, 이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차갑고 높았다. “외국인 한 명을 고용하려면 한국인 다섯을 고용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은 외국인 취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유창한 한국어라는 높은 기준, 그리고 외국인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전문직 시장의 굳게 닫힌 문. 그녀는 깨달았다. 한국 사회는 ‘손님(Guest)’으로서의 외국인은 반기지만, 그들이 ‘가족(Family)’의 일원이 되어 동등한 기회를 요구할 때는 인색하다는 것을.


그녀는 환대받았지만, 머물도록 초대받지는 못했다. 영어 선생님이라는 역할의 유효기간이 끝나자, 그녀의 체류도 끝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코리안 드림’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는 그녀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 그녀의 한국인 친구와 결혼한 호주인 남편 역시, 교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전환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자국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라는 단단한 성 안에서 서로를 지켰으나, 그 성벽을 너무 높이 쌓아 올린 것은 아닐까.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언제쯤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외국인 전문인력(E-7 비자) 취업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이 전문 직종에 종사하려면 통상적으로 E-7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비자를 취득하려면 해당 직종과 관련된 전문 지식과 일정 기간 이상의 경력을 갖추어야 하며, 고용 기업 역시 국민 고용 보호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법으로 엄격히 수치화된 규정은 아니지만, 실무에서는 내국인 고용 규모 대비 외국인 고용 비율이 약 5:1 수준 이상일 때 심사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안전선’이 널리 통용된다. 여기에 높은 한국어 능력 요구와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더해져, 외국인이 교육 분야를 제외한 전문직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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