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공동체'란 울타리 | 남아공 빈곤의 진짜 이유

남아공의 빈곤은 왜 흑인의 몫으로 남았을까

by morasafon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난 늘 가난과 원조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대다수의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수많은 외부의 손길이 필요한 곳. TV 다큐멘터리 속 굶주린 아이들과 그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자원봉사자들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활동에 직접 참여해 본 적이 없었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이 있고, 그 노력이 과연 현지인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지에 대해 늘 궁금했다.


그러던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Aminara(가명)와의 대화를 통해, 그곳에도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쓰는 현지인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을 시골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가난을 돕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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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연계된 비영리 단체(NPO)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실업 상태에 있거나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했다. 뜨개질이나 코바늘 같은 수공예, 바닥 타일 시공, 옷을 사서 되파는 법, 텃밭을 가꾸고 채소를 파는 법까지. “그들이 스스로 돈을 벌고 독립적인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그녀의 설명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원조’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법도 가르치나요?”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대부분 인터넷은커녕 제대로 된 기술을 접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현대 국가의 발전된 모습 이면에, 여전히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어떤 이들은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건지. 그녀의 대답은, 간결했다. 바로 남아공 현대사의 깊은 상처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였다.


사라지지 않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


“남아공의 교육 시스템은 아주 좋지 않아요.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이죠.”

불과 30여 년 전, 남아공은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 아래 있었다. 유색인종(people of colour)은 백인과 동등한 교육, 주거, 기회를 박탈당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교육 시스템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남아공 교육 불평등의 뿌리에는 이 제도가 깊게 박혀 있다.


Aminara가 설명하는 남아공의 학교는 네 가지로 나뉜다. 최고 수준의 사립학교, 학부모가 교사 인건비 일부와 학비를 부담하는 공립학교, 정부가 모든 비용을 대지만 한 반에 40-50명의 학생이 있고 시설이 낡은 정부 학교, 그리고 시골 학교. 그곳은 책상과 교과서는 물론, 제대로 된 화장실이나 깨끗한 물조차 부족한 곳이라고 했다.


왜 이러한 불평등이 있는 것일까? 왜 세금이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것일까?


“부패했기 때문이지요. 지난 20년간 정치인들은 돈을 훔쳤어요. 예를 들어 시골 학교에 교과서를 공급하는 입찰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들은 책이 학교에 제대로 도착하는지보다, 그 계약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를 챙길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아요. 50만 달러면 될 일에 100만 달러를 책정하고, 나머지 50만 달러를 나눠 갖는 식이죠. 학교 화장실을 개선하는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위험한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져도, 그들은 실제로 시설을 짓는 것보다 돈을 빼돌릴 궁리에만 빠져있어요.”


정치인들이 더 부유해지는 동안,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공식적인 차별은 사라졌지만, 부패라는 새로운 이름의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공동체'라는 울타리의 힘


남아공의 인종은, 백인, 흑인, 그리고 ‘컬러드(Coloured)’라 불리는 혼혈인으로 구성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백인이 최상위 계층이었다면, 지금은 흑인이 정치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렇다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삶은 나아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Aminara는 남아공에서 가장 큰 빈곤층을 이루는 이들은 여전히 흑인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백인들은 차별의 시대에 쌓아 올린 교육과 부의 기반 위에서 여전히 중산층 혹은 부유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절대 빈곤층이었던 흑인 전체를 끌어올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공동체’의 힘이었다.


Aminara는 인도계와 무슬림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을 언급했다.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비교적 나은 교육과 인프라를 유지했고, 서로 돕고 끌어주며 민주화 이후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진 중국계 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흑인 공동체’라는 것도 있나요?”


공식적인 흑인 공동체는 없다고 했다. 흑인은 남아공의 다수이지만, 하나의 견고한 공동체로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가난한 지역에서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소수의 흑인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그곳을 떠나버린다. 인재와 자본은 가난한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겨진 곳은 더욱 황폐해진다. 인도계나 무슬림 공동체가 서로에게 일자리를 주고 정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동안, 끈끈한 구심점이 없는 다수의 가난한 흑인들은 각자도생하며 흩어져야 했다.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경계선이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있었다.


남아공의 빈곤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시작부터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깊은 상처, 희망을 훔쳐가는 부패한 시스템, 미래의 사다리인 교육의 붕괴가 얽인 거대한 구조적 문제였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부재가 가장 무겁게 다가왔다. 함께 ‘우리’로 버티는 공동체는 소수일지라도 단단한 성곽을 쌓아 올렸지만, 많은 ‘나’로 남은 다수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도생해야 했다. 그나마 성공한 개인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고, 남겨진 공동체는 더욱 황폐해지는 악순환. 이 씁쓸한 풍경은 J.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에 그려진 미국 러스트벨트의 몰락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결국 한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은 피부색이나 국경을 넘어 너무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떠나는 것이 성공의 증명이 된 세상에서, Aminara는 그곳에 남았다. 그리고 끊어진 실을 한 올 한 올 엮어 ‘우리’라는 그물을 다시 짜고 있었다.



1.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된 극단적인 인종차별 및 분리 정책이다. 이 정책은 인구를 백인, 흑인, 컬러드(혼혈), 인도계 등으로 분류하고 거주, 교육, 직업, 정치 참여 등 모든 사회 영역에서 백인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보장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부 부패

남아공은 오랫동안 정부와 공공 부문의 부패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23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남아공은 180개국 중 83위로, '심각한 부패 문제'를 겪는 국가군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부패는 공공 서비스 제공, 특히 교육, 보건, 기반 시설 프로젝트에서 예산 횡령과 비효율을 낳으며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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