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 나미비아 N잡러의 선언

가장 나를 잃기 쉬운 곳은, 가장 안락한 곳일지도 모른다

by morasafon

요즘 세대에게 ‘평생직장’은 고대 유물 같은 단어가 되었다. 한 우물을 파서 명예롭게 정년 퇴임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이제 한국의 청년들은 잦은 이직을 통해 몸값을 높이고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하는 데 익숙하다. 더 나은 기회와 성장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다. 치솟는 물가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N잡러과 긱 워커(Gig Worker)는, 하나의 안정적인 직장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현실이 낳은 필연적인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오늘날의 청년들은 여러 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이런 고민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일까?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은 어떤 직업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쳤을까


Omaron(가명)은 아프리카 남서부의 나미비아 출신이지만 현재 독일에 거주한다고 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이유를 묻자, 자국의 역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조국은 19세기 말 독일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치 아래 놓였다가 1990년에야 비로소 독립을 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30여 년. 그의 부모님 세대는 식민 통치를 직접 겪은 세대였다.


“아버지의 논리는 ‘지배했던 자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미래에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일종의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요.”

그의 아버지가 독일어 학교에 아들을 보낸 것은 순전히 트라우마 때문이었다고 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비극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Omaron에게 독일어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나 생존 도구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를 열기 위한 강력한 기회의 열쇠가 되었다. 그는 독일에서의 해외 취업을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그곳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 돌아가 자신만의 사업을 일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미래를 개척하는 가장 실용적인 무기로 바꾼 것이다.


느리고 평화로운 삶이라는 달콤한 함정


Omaron이 묘사하는 나미비아는 더없이 평화로운 곳이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고, 각자의 시간을 유유히 즐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삶. 그는 나미비아를 “은퇴 후의 삶을 보내거나, 가정을 꾸리기에 좋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은 젊은 세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곳은 너무 편안해지기 쉬운 곳이에요. 커리어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죠.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기술 발전도 더디고, 특히 예술 분야는 인구가 적어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예요.”


느리고 평화로운 삶. 경쟁 사회에 지친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꿈꾸는 삶이다. 그러나 그 안락함이 성장의 가능성을 옭아매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종종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고민한다. 안정을 택하면 성장이 아쉽고, 성장을 향해 달리다 보면 안정이 간절해진다. Omaron은 그 딜레마 앞에서 스스로 답을 내렸다. 지금은 이곳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치열하게 부딪혀야 할 때라고. 안락함에 안주하는 대신, 불편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저는 한 가지 이상의 제가 되고 싶어요"


그의 선택은 단순히 사는 곳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여러 갈래로 디자인하고 있었다. 원래는 부모님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해 해당 분야에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웠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등 변화를 겪으며, 그는 마침내 원치 않는 길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클라이밍을 훈련 중이고, 그래픽 디자인, 이벤트 영상 작가도 하고요. 저를 하나의 상자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그의 다음 문장은 내 마음에 남았다.


“I want to be more than one thing. (저는 한 가지 이상의 제가 되고 싶어요.)”


클라이머, 디자이너, 영상 작가 등 그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열정을 따라 여러 개의 길을 동시에 만들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택했다기 보다, ‘나’라는 브랜드의 포트폴리오를 다채롭게 구축하는 진정한 N잡러가 되는 과정처럼 보였다. 이는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Omaron은 안락함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불편함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준 길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1. 나미비아의 역사

나미비아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식민지였고, 이 시기에 헤레로족과 나마족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의 통치권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위임하였다. 이후 나미비아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적용받았다. 오랜 독립 투쟁 끝에 나미비아는 1990년 3월 21일 독립을 달성하였다.


2. 슬래시 커리어

슬래시 커리어는 하나의 직업이 아닌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진 사람을 뜻한다. 직업을 슬래시(/)로 구분해 나열하는 방식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단순한 추가 수입을 위한 부업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실현, 관심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커리어를 병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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