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던 시대는 끝났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you can do)’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더 많은 기술을 배우고,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더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 말이다.
그 믿음은 최근 몇 년간 쏟아지는 빅테크의 감원 소식과 ‘AI가 인간의 지식 기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뉴스 앞에 쉽게 흔들렸다. 정교한 의학 논문을 분석하고, 복잡한 법률 논리를 세우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을 예측하고, 짜임새 있고 구조화된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 등. 인간 지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능력들이 이제는 AI의 것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가? AI보다 더 나은 ‘인간 지식 노동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더 갖춰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미국의 산업조직심리학자이자 심리측정학(Psychometrics) 전문가인 Yasiral(가명)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대체하는 이 AI 시대에, 기업은 대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거냐고. 나는 기술적 탁월함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Yasiral의 전문 분야인 심리측정학은, 사람의 잠재적 가치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조직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 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 기업은 직무에 따라 기계적 추론 능력, 수리 능력, IQ, 논리력 등 다양한 테스트를 활용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가장 근본에는 ‘인성(Personality)’ 검사가 자리 잡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물론 100%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가끔 사람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죠.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기업들이 왜 그토록 지원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핵심을 짚었다. 특히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사례는 흥미로웠다.
“어차피 그런 기업들은 MIT, 하버드, 예일 같은 최고의 대학 출신들을 고용합니다. 지능은 문제가 아니죠. 그들이 최우선으로 보는 것은 지원자가 우리 조직 문화에 완벽하게 맞는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 기술과 지능이 상향 평준화된 그곳에서는 이미 경쟁의 무대가 바뀌어 있었다. 지원자가 얼마나 똑똑한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가 보다, 현재 팀원들과 얼마나 잘 협력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독특하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그들이 찾는 인재상이었다.
문득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향성, 개방성 같은 기질적 특성은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영역이지 않은가. 타고난 성향 때문에 누군가는 더 쉽게 자신을 표현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Yasiral은 담담하게 답했다.
“지원자에게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공정한 일입니다.”
기업은 투자 대비 최고의 가치를 얻기를 원한다. 특정 직무와 문화에 더 적합한 성향의 사람을 찾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외향성/내향성은 인성의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며, 실제 인성 검사는 훨씬 더 복합적인 요소들을 측정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 나의 고유성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계산기의 등장으로 암산 능력이 더 이상 특별한 재능이 아니게 되었듯, AI의 등장은 수많은 지식 기반 기술을 누구나 활용 가능한 기본 소양으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기술적 역량이 AI로 대체될수록, 기업은 협업 능력, 조직 문화 적합성, 성장 가능성과 같은 인간 고유의 특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you can do)’ 만큼이나 ‘어떤 사람인가(Who you are)’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기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성이 쉽게 바꿀 수 없는 특성이라는 사실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억지로 조직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나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나와 결이 맞는 환경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탐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곳, 나의 성향이 단점이 아닌 강점으로 발휘될 수 있는 곳을 찾는 여정.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파트너다. 인간의 ‘기술’은 AI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자기 탐색과 관계 형성, 그리고 창의적 협업에 집중해야 한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그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인간적인 과제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1. 산업조직심리학 (Industrial-Organizational Psychology)
인간의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원리를 직장에 적용하는 학문 분야다. 채용, 교육, 성과 관리, 직원 웰빙 등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직업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인성 (Personality)
개인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사고·감정·행동의 독특한 패턴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경험이 상호작용하여 형성되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성향과 반응 방식을 만들어낸다. 성격 특성은 심리측정학적 검사나 면담을 통해 평가할 수 있고, 이는 직무 적합성·대인관계·스트레스 대처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성은 개인의 행동 예측과 조직 내·외부 환경 적응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3. 구글의 채용 문화 (Google's Hiring Culture)
구글은 ‘구글스러움(Googliness)’이라는 독특한 인재상으로 유명하다. 이는 “즐거움 추구(enjoying fun),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 애매함 속에서의 편안한 감정(comfort with ambiguity), 책임감(conscientiousness) 등 복합적 특성”을 포함한다. 구조화된 행동 및 인지 인터뷰를 통해 지원자가 구글의 협력적이고 혁신적인 조직 문화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심층적으로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