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죄는 누구의 어깨 위에 놓여야 하는가
하나의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불공정이 생겨난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사람으로부터,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일군 직장을 잃고 타국으로 떠나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죄를 현재의 개인이 짊어지는 것은 합당한가.
“남아공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인구가 뒤섞여 사는 곳 중 하나예요. 그만큼 문제도 많죠. 심각한 범죄율, 고질적인 전력난, 부패한 정부까지…”
Jinya(가명)는 담담하게 자국의 현실을 말하며 ‘흑인 경제력 강화 정책(Black Economic Empowerment)’을 이야기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끔찍한 인종차별의 역사 속에서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던 흑인들에게 경제적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한 국가적 약속. 기업의 일정 지분을 흑인에게 넘기고, 채용 과정에서도 그들을 우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론적으로는 정의로워 보이는 이 정책이 현실에서는 생각지 못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Jinya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제가 임원으로 있던 회사도 결국 지분의 51%를 흑인 파트너에게 매각해야 했어요.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죠. 익숙했던 시스템이 삐걱거리고,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는 걸 느꼈어요.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저는 오랜 시간 몸담았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들었던 ‘역차별’의 또 다른 사례였다.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피부색이 한 사람의 인생 경로를 바꾸어 놓는 현실. 나는 그녀에게서 터져 나올 불만과 억울함과 깊은 원망을 예상했다. 역사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으리라고.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Jinya의 표정은 평온했다. 분노나 상실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솔직히 어떤 원망도 느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왜 이런 시스템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녀는 그 너머의 ‘역사적 맥락’을 보고 있었다.
“남아공의 과거는 정말 부끄러운 역사예요. 극소수의 백인이 압도적 다수인 흑인들을 통제하며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죠. 지금의 정책은 완벽하지 않아요.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하죠. 하지만 이 모든 혼란은 그 부끄러운 과거를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흑인들에게 과거에는 결코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를 돌려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에요.”
그녀는 ‘빼앗겼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받아들였다’고 했다.
“저는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제 삶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웠을 뿐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떠난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흑인 동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하고 멋진 비즈니스를 일궈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다고.
그녀에게 회사를 떠난 결정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의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 열고 나선 문이었다. 덕분에 평생을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고, 조카들이 재잘거리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Jinya는 자신을 부당한 정책의 ‘희생자’가 아닌, 역사적 화해의 과정에 참여하는 한 명의 구성원이 되기를 택했다. 원망 대신 이해를, 상실 대신 새로운 시작을 택했다. 그녀에게 '화해'란, 거대한 단어가 아니었다.
1. 흑인 경제력 강화 정책 (Black Economic Empowerment, BEE)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남아공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다. 기업은 흑인 지분 소유, 고용, 경영 참여 등을 확대해야 높은 평가를 받아 공공조달이나 대기업 계약에서 유리하다. 이는 흑인 다수의 경제 참여를 늘려 사회적 균형을 이루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엘리트 중심의 혜택, 형식적 실행, 역차별 논란 등 한계와 비판도 있다.
2. 진실과 화해 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
남아공은 1995년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의 인권 침해를 다루기 위해 TRC를 설립했다. 가해자가 정치적 동기의 범죄를 자백하면 조건부 사면을 받을 수 있었고, 피해자는 증언을 통해 진실을 기록했다. 이는 처벌보다 진실 규명과 용서를 통한 사회적 화해를 목표로 했다. 완전한 정의 실현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과거사 청산 모델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