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나를 불렀다 | 편견 너머 발견한 삶

낯선 땅에서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기까지, 한 미국인의 정착기

by morasafon

미국 북서부 작은 마을 출신인 Samiel(가명)은, 자신의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자카르타’라고 답했다. 그가 인도네시아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20년. 그의 이야기는 ‘더 나은 삶, 풍요로운 삶'이라 믿는 것들의 기준에 대해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웹사이트에서 시작된 동화


Samiel이 인도네시아에 처음 오게 된 계기는 한 편의 동화 같다. 20여 년 전, 그는 전 세계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웹사이트에 무심코 프로필을 올렸다. ‘어느 나라 사람에게 관심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던 ‘인도네시아’를 클릭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주 뒤, 자카르타에 사는 한 여성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온라인 메신저로 시작된 대화는 매일같이 2년간 이어졌고, 지구 반대편의 두 사람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로가 운명임을 직감했다. 마침내 그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하지만 동화가 현실이 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동남아시아인의 미국 비자 발급은 막혀 있었고, 그가 인도네시아로 가기엔 비행기 표와 스폰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기술자였던 그는 자신의 모든 공구를 팔아 비행기 표 값을 마련했고,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의 직장 상사가 아무 조건 없이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나섰다. 모든 조각이 운명처럼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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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실에서 세상을 배우다


사랑을 따라 낯선 땅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동화와 거리가 멀었다. 그의 눈에 비친 자카르타의 첫인상은 ‘더러운 거리와 끔찍한 교통체증’ 그 자체였다. 미국식 기준과 질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동안, 그는 인도네시아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다. 극심한 문화 충격에 시달렸던 첫 1년은 그에게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마음가짐의 문제였어요. 미국의 기준을 인도네시아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했으니까요.”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그는 영어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교실을 만났다. 다섯 살부터 열 살까지, 무려 마흔 명의 아이들이 있던 반이었다. ‘내 말을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 시작된 수업. 하지만 수업이 끝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동안 제가 쌓아 올린 벽들을 아이들이 순식간에 무너뜨렸죠. 그때 깨달았어요. 만약 인도네시아를 부정적인 것, 더러운 것으로만 본다면, 이 사람들과 이 나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절대 볼 수 없을 거라고요.”


아이들의 눈에는 편견이 없었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과 배우고 싶다는 열망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순수한 존재 그 자체로 Samiel이 수십 년간 쌓아온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들로부터 자신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꿨고, 20년째 교사라는 한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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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눈을 뜨자, 비로소 인도네시아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inquisitive), 독립적인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스스로 한다.”라는 마음가짐이 깊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특히 외국인이 자신을 돕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그들의 마음은 도움을 받기보다 ‘당신을 돕고 싶다, 당신을 챙겨주고 싶다’는 쪽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들은 자신을 더 높은 곳에 두고 현지인들을 내려다봐요. 하지만 그 벽을 허물고 동등한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들은 마음을 활짝 열죠. 그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오히려 미안해하고, 먼저 당신을 돕고 싶어 해요.”


또한 그들은 ‘연결’을 갈망하는 이들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영어로 말을 걸어오고, 그가 영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면 언제 수업을 들을 수 있냐고 스스럼없이 물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배우고 싶어 하고, 세상과 이어지고 싶어 한다. 돈이 없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어떻게든 길을 찾아낸다.


“만약 한 나라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나라의 일부로 당신을 끌어당길 겁니다.”


그는 이 말을 믿는다. 인도네시아는 그를 그렇게 끌어당겼다. 많은 현지인들이 그에게 “혹시 OO 출신이세요? 당신은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보이고, 그렇게 행동해요.”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진정으로 어떻게 사는지 배우고 싶다면, 인도네시아에 와야 합니다.”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물론 이곳의 삶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소박함(modesty)이야말로 이곳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이 삶의 중심이 아닌 곳. 친구, 가족, 그리고 사람 사이의 ‘연결’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삶. 가장 풍요로운 삶이란 가장 많이 가진 삶이 아니라, 가장 깊이 연결된 삶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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