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버리고 얻은 것 | 영국 공무원의 퇴사 기록

황금으로 만든 새장도 결국은 새장일 뿐이다

by morasafon

한번 들어가면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 ‘공무원’. 그러나 Zarair(가명)는 최근 그 견고한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났다고 했다. 그는 왜 제 발로 그곳을 떠나 불확실한 세상으로 걸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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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직장, 그 단단한 울타리의 그림자


Zarair는 아버지를 따라 정부 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려 40여 년을 한 곳에서 근무했다. 대를 이어 선택한 직업. 그 역시 20년의 긴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속했던 부서는 이름부터 흥미로웠다. ‘혁신 부서’.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이미지의 정부 조직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저희 부서에서 그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자금을 지원해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를 했어요. 효과가 입증되면 전체로 확대 적용하는 일이었죠.”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상부에서는 그의 부서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 판단했고, 결국 부서 전체가 해체되었다. 그에게는 정부 내 다른 부서로 옮길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내부의 다른 일자리들을 살펴봤지만, 하나같이 다 지루했어요. 솔직히 말해, 일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었고요.”


엄격한 규칙과 위계질서,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된 문화 속에서 그를 포함한 동료들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직에 만연한 무력감은 그를 번아웃으로 이끌었다. 한때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였을 그곳이, 어느새 그의 숨을 조이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Zarair의 아버지가 일하던 시대의 정부와 지금의 정부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유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긱 워커'의 삶이었다. 그러나 자유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는 독립적인 삶의 현실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했다.


“유급 휴가도, 병가도 없어요.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죠. 연금도 더 이상 없고요.”


수입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각종 플랫폼 수수료에 환전 비용까지 생각하면, “약간 울고 싶어질 때도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안정적인 월급, 휴가, 연금. 직장인이 당연하게 누리던 모든 안전장치가 사라진 삶. 많은 이들이 퇴사를 꿈꾸면서도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Zarair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되었다.


잃어버린 월급과 되찾은 웃음


하지만 그는 이전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상사에게 보고할 필요도, 연례 평가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어요. 바보 같은 규칙들을 억지로 따르지 않아도 되고요.”


가장 큰 변화는 ‘연결’의 회복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하루 종일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지 않던 날도 있었던 이전 직장과 달리,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다양한 환경을 경험한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그는 오히려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가 끝났을 때, 예전 직장에서처럼 우울하지 않아요.” 그의 이 한마디에 20년차 공무원의 퇴사 이유가 모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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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줄어든 수입 대신 감정과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설계하고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Zarair가 찾은 새로운 형태의 ‘안정’이었다. 그는 아직 이 길이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때로는 익숙한 불행을 감수하는 것보다, 불확실하더라도 나를 웃게 하는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그의 선택이 모두를 위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오늘 당신의 ‘안정’은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지.



긱 이코노미 (Gig Economy)

긱 이코노미는 기업이 필요할 때 단기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경제 방식이다. ‘긱’은 원래 음악 공연을 뜻하는 속어에서 유래해,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임시 노동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우버 기사, 배달 라이더, 온라인 프리랜서 등 다양한 긱 워커가 등장했으며,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다. 그러나 고용 불안정, 사회보장 사각지대, 노동권 보호 부족 등 구조적 문제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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