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쌓은 벽, 그 안에 우리 집은 없다
초록빛 언덕과 백파이프 소리가 깃든 낭만적인 켈트 신화의 땅.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뒤에, 사람이 살 집이 없어 고통받는 ‘주택난’과 주인이 없어 썩어가는 ‘빈집’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역시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사는 Meins(가명)를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목가적인 이미지 너머, 우리가 몰랐던 아일랜드의 진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에요. 살 곳이 턱없이 부족하죠."
인구는 계속 늘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살 집은 부족하다. 더 이상한 점은, 나라 곳곳에 10년 넘게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들이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빠르게 낡아간다. 그녀는 이 기이한 현상의 주범으로 아일랜드의 복잡한 관료주의를 꼽았다.
“집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상속자를 찾지 못하면 그 집은 법적으로 팔 수가 없어요. 문서로 소유권을 증명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상속인들은 미국에 있을 수도, 영국에 있을 수도 있죠. 심지어 법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수십 년간 이어진 이 문제에 지친 지방 의회는 최근 칼을 빼 들었다. 3년 이상 비어있고 소유권자가 나타나지 않는 집을 정부가 인수해 수리한 뒤,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주택(social housing)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긍정적인 변화지만, 그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팬데믹을 거치며 멈춰버린 건설과 물류 시스템의 회복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주택난의 또 다른 이유는, 공급의 문제를 넘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Meins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농부로 살았던 시절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너른 땅에 자리한 자신만의 집을 선호하죠.”
18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더블린 시내에는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거의 없다. 과거 도시 외곽에 사회 실험처럼 지어졌던 고층 아파트 단지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 모두 철거되었다. 넉넉한 마당이 딸린 집에서 이웃과 거리를 두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은 넓지만, 그 땅의 대부분은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이거나, 이제 막 시작된 재조림(reforesting) 프로젝트를 위해 보존되어야 할 숲이다. 집을 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강하지만, 막상 집을 지을 곳도, 살 집도 마땅치 않은 현실. 이 모순은 젊은 세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주택 부족 문제를 심화시킨 또 다른 요인은 외부에서 왔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온 난민들이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결정이었지만, 이는 가뜩이나 부족했던 주택 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호텔과 호스텔에 비용을 지불하며 난민들의 거처를 마련했고, 주인이 없던 사회주택은 아일랜드 저소득층 대신 그들에게 우선 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도 가속화되었다. 도심의 특정 구역이 부유층에게 인기를 끌면서, 몇 세대에 걸쳐 그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선한 의도가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는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에요. 많은 이들이 몇 년간 해외에 나가 일하는 걸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기게 되었거든요."
아일랜드 청년들이 마주한 암담한 현실. 그들에게 ‘아일랜드를 떠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자,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초록빛 언덕 위에 홀로 서서, 창문이 굳게 닫힌 채 썩어가는 텅 빈 집. 평화로운 나라의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늘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물리적 환경은 개선되지만,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여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이 비자발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