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교실,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행은 우리를 낯선 풍경에 데려다 놓는다. 때로는 낭만적이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현재 카리브해의 한 섬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Samion(가명)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Samion은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맛있는 페이스트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여러번의 파리 여행 속에서 그녀는 늘 미묘한 문화적 벽을 느꼈다. 존중을 담아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것은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 빠른 속도의 프랑스어였다.
“친절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녀는 훗날에야 그 차가운 벽의 정체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악의가 아니라,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엄격히 나누는 그들의 문화적 규칙이었다. 모르는 이에게까지 미소를 짓는 대신 거리를 지키는 것이 그들식의 예의였고, 그녀가 느낀 무관심은 어쩌면 무시가 아닌,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만의 질서였을지 모른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세상의 '다름'을 마주하게 한 성찰의 시작이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슬람 문화에 매료된 그녀는,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녀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로 날아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다 같이 손뼉을 치고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했죠.”
그녀가 꺼내 든 비장의 무기는 ‘호키포키’ 노래였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햇살 좋은 뜰에서, 그녀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을 동그랗게 세우고 손을 맞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안에 넣고, 오른손을 밖에 빼고..."
아이들이 금세 까르르 웃으며 따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신나는 율동 대신, 멀뚱멀뚱 선 채 그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뜰 한편에서 지켜보던 부모들의 조용한 시선 아래, 그녀의 활기찬 노랫소리는 어색한 침묵 속으로 서서히 잦아들었다. 즐거움으로 가득 차야 할 시간은 어색한 침묵으로 흘러갔다. Samion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춤과 노래가 왜 그들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는지를.
그날 밤, 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현지인 가족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Samion,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지 않아요. 그리고… 여자아이가 일정 나이를 넘으면, 남자아이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거나 손을 잡지 않는답니다.”
그날 밤, 그녀는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것이 익숙지 않은 문화, 그리고 일정 나이가 된 남녀가 스스럼없이 손을 잡지 않는다는 관습. 아이들을 웃게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이곳에서는 문화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모로코의 침묵은 그녀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의 다름이 이제는 깊은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춤과 노래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믿음.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속한 문화의 기준이었을 뿐, 세상의 유일한 정답은 아니었다.
이후 그녀는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상대의 문화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왜 특정한 표현을 쓰고,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교실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배우는 문화 상대주의의 실험실이 되었다.
그녀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비교하며 어느 한쪽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노인을 요양 시설에 보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반면, 많은 문화권에서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더 ‘나은’ 방식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연결은 나의 ‘호키포키’를 함께 추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왜 춤을 추지 않는지를 먼저 묻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