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낡은 깃발은 색을 잃는다
하나의 섬, 두 개의 나라. 지도 위에 그어진 선은 때로 현실 세계에서 견고한 벽이 된다. 아일랜드 섬이 그랬다. 영국의 오랜 지배 끝에 독립을 쟁취했지만, 북쪽의 땅은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았다.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갈등과 분쟁의 역사는 그 경계선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고, 쉽게 지워지거나 허물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일랜드 남부 작은 마을에 산다는 Ellam(가명). 그는 영국의 ‘브렉시트’라는 거대한 파도가 아일랜드에 어떤 예상치 못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리고 한 세기에 걸친 분단의 역사가 어떻게 조용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뉴스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오늘의 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에게 지배받은 기간은 800년이에요."
숫자의 무게가 현실감 없이 다가왔다. 한국이 35년간의 식민 지배에도 이토록 깊은 상흔을 안고 사는데, 800년의 세월은 대체 무엇을 남겼을까. Ellam은 영국의 오랜 지배 끝에 1922년 아일랜드가 독립했지만, 북쪽의 6개 주는 여전히 영국(UK)의 영토, 즉 북아일랜드로 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섬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끝나지 않은 역사의 시작이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잔류를 원하는 친영(親英)계 신교도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원하는 아일랜드계 구교도 사이의 갈등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 폭탄 테러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던 시기, Ellam은 그 시절을 ‘싸움(fighting)’이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했다. 1990년대 평화 협정 이후 국경의 검문소는 사라졌고 총성도 멎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계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은 정치적 구호나 민족적 열망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라고 Ellam은 말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북아일랜드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처럼 누가 영국인이고 누가 아일랜드인인지, 누가 신교도이고 누가 구교도인지에 관심이 없죠. 그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와 기회, 그리고 유럽연합(EU)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이동뿐이에요."
젊은 세대의 이런 현실적인 열망은 아일랜드의 극적인 경제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아일랜드는 유럽의 변방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며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라는 별명을 얻었다. Ellam은 그 배경에 두 가지 중요한 정책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유럽 경제 공동체(EEC, EU의 전신) 가입과, 외국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낮은 법인세 정책이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에 둔 이유죠. 영어를 사용하고, 교육 수준 높은 인력이 풍부한 데다 세금 혜택까지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이 정책은 아일랜드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림자도 있었다. GDP 순위는 세계 최상위권에 올랐지만, 그 수치에는 다국적 기업의 소득이 포함된 ‘착시 효과’가 있었다. Ellam은 이들 기업이 약속한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제는 아일랜드 경제가 더 이상 그런 ‘미끼’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상황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영국의 브렉시트였다. 2020년, 영국이 유럽연합을 공식적으로 탈퇴하면서 북아일랜드 역시 EU에서 함께 떨어져 나왔다. 문제는 정작 북아일랜드 주민 대다수는 EU 잔류를 원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EU에 남은 아일랜드는 꾸준히 성장했다.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제 상황과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런던이 아닌,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미래를 찾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Ellam의 말처럼, 그들에게 ‘영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 ‘EU 시민’이라는 실리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1990년대 평화 협정에는 중요한 조항이 하나 있어요. 만약 북아일랜드 주민 과반수가 투표를 통해 원한다면, 아일랜드와의 통일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이죠. 브렉시트 이전에는 통일이 먼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Ellam은 아마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통일에 관한 주민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정치인들은 말을 아끼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Ellam는 아일랜드가 겪어온 800년의 역사가 브렉시트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과거의 분쟁과 갈등이 아닌, 다음 세대의 경제적 열망과 현실적 선택이 아일랜드 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었다. 그것은 총성이나 투쟁이 아닌, 조용하고 점진적인 변화였다.
흔히 역사를 거대한 담론이나 이념의 충돌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욕망이 아닐까. 800년 묵은 상처로 갈라진 섬이 경제라는 현실적인 지렛대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아일랜드는 지금, 새로운 문을 조용히 열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1. 브렉시트(Brexit)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한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으며, 2020년 1월 31일 공식적으로 EU를 떠났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무역, 이민, 경제 정책 등에서 EU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EU 단일시장 접근성이 제한되면서 무역 장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켈틱 타이거(Celtic Tiger)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전까지 아일랜드 공화국이 경험한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일컫는 용어다. 낮은 법인세율을 통한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유럽연합 가입을 통한 시장 확대, 영어 사용 국가라는 이점 등이 주요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이 시기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난한 국가 중 하나에서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