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천 아래 숨겨진 다채로운 취향의 세계
한국이 34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한창일 때, 서늘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Elmona(가명). 계절의 간극만큼 그녀에게 느껴졌던 막연한 거리감. 그것은 그녀가 머리에 두른 검은색 스카프, 히잡(Hijab) 때문이었다.
나에게 히잡이란, 온몸을 가리는 엄격한 문화, 개성을 지우는 획일적인 의복이라는 인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Elmona의 대화는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한 장의 스카프 뒤에 숨어 있던 패션과 취향, 그리고 자유에 대해.
대화의 시작은 히잡의 색깔에 대한 것이었다. "히잡은 색깔별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나요?"
나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색을 선택하는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죠. 어떤 것도 상징하지 않아요."
Elmona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봄이나 여름이면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의 히잡을 즐겨 착용하고, 겨울에는 검은색이나 회색, 갈색처럼 차분한 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녀처럼 계절과 상관없이 검은색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 모임에서 찍었다며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그녀의 딸들은 밝은 파란색과 강렬한 빨간색 히잡을 두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컬러풀'한 사람이라는 그녀의 사촌은 주황색 히잡을 두르고 있었다. 한 가족 안에서도 히잡의 색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히잡이 개성을 억누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한 오해였다.
그녀가 말한 검은색에 대한 선호는 비단 히잡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히잡과 함께 입는 긴 원피스 형태의 옷인 아바야(Abaya)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왜 그토록 수많은 색 중에 검은색을 가장 아끼는지를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어떤 상황에도 준비가 된 셈이죠. 하지만 아주 밝은 색이나 커다란 꽃무늬가 있는 옷은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잖아요.”
화려한 패턴의 옷은 한번 입으면 모두가 기억하지만, 심플한 검은색 아바야는 어떤 스카프를 매치하느냐에 따라 매일 다른 옷처럼 연출할 수 있다는 그녀의 설명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명하게 들렸다. 결국 그녀에게 검은색 아바야는 나를 감추는 색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가장 나답고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만능의 색이었다.
Elmona의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했던 거대한 산업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아바야 시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고 역동적인 패션의 세계였다. 몇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스타일과 소재의 아바야가 쏟아져 나오고, 특히 파키스탄이나 이집트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보인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남성 디자이너도 많고, 심지어 비무슬림 디자이너가 만든 옷도 있다고 했다. Elmona는 기성복을 사 입는 편이지만, 많은 여성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아주 심플한 검은색 아바야에 소매 끝이나 옷깃에 색깔 있는 자수가 들어간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했다.
아바야와 히잡은 더 이상 단순한 종교적 의복이 아니었다. 국적과 성별, 종교를 넘어선 디자이너들이 뛰어들어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모디스트 패션(Modest Fashion)'의 세계였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Elmona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스카프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긴 직사각형의 천이 그녀의 손에서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는 모습은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그녀는 겨울에는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려 목을 감싸는 방식으로 따뜻하게 연출하고, 더운 여름에는 머리에 딱 맞게 감아올리는 터번(Turban) 스타일로 시원함을 확보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터번 스타일의 히잡은 귀걸이를 드러내고 앞머리를 살짝 보이게 연출하여 훨씬 더 현대적이고 경쾌해 보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스카프를 두르는 방식은 수십 가지가 넘고, 스타일에 따라 스카프의 크기나 모양, 재질도 천차만별이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게 안쪽에 쓰는 언더캡(undercap)도 있지만, 필수는 아닌 선택 사항이다. 히잡을 쓰는 방식 하나에도 이토록 섬세한 취향과 계절에 대한 고려,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은 더 이상 종교적 의무의 영역이 아니라, 한 개인이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자기표현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이미지로 세상을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검은 히잡을 보며 내가 떠올렸던 수많은 편견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카프를 풀고 다시 매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그 천 너머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고유한 삶과 취향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보내는 타인의 모습 속에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숨 쉬고 있을지.
1. 히잡(Hijab)
히잡은 무슬림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스카프이다. 그 어원은 '가리다' 또는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랍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 율법이 정한 가려야 할 신체 부위인 '아우라'를 덮어 정숙함을 지키려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종교적 상징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드러내는 패션의 일부로도 기능한다.
2. 아바야(Abaya)
아바야는 주로 중동 지역의 무슬림 여성들이 외출 시 옷 위에 덧입는 길고 헐렁한 겉옷이다. 이는 히잡과 함께 신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 이슬람의 정숙함에 대한 규정을 따르기 위한 의복이다. 전통적으로 검은색이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색상과 소재, 화려한 장식이 더해지고 있다. 이제 아바야는 종교적 복식을 넘어, 디자이너 브랜드가 존재할 만큼 하나의 독립된 패션 분야로 자리 잡기도 했다.
3. 모디스트 패션(Modest Fashion)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하지 않는 겸손한 옷차림을 특징으로 하는 패션 스타일의 총칭이다. 이는 이슬람, 유대교 등 특정 종교적 신념을 넘어 개인의 가치관이나 미적 취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이다. 2010년대 이후 수천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했으며, 럭셔리 브랜드부터 중저가 브랜드까지 주요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모디스트 패션의 핵심은 단순히 신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노출 없이도 자신을 세련되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기표현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