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의 책상이 사라진 아침 | AI가 인간을 덮칠 때

책상이 사라진 사무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남아야 하는가

by morasafon

인자한 인상의 미국인 Fiorel(가명)는 자신을 은퇴한 인사(HR)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의 채용과 퇴직을 지켜봤을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가벼운 안부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나는 그 끝에서 서늘한 미래의 풍경을 마주해야 했다.



“은퇴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나는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라는 제도가 생기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등의 한국 직장 문화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Fiorel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가 은퇴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일해야 했다면... 아마 끔찍했을 거예요.”


그의 말에는 단순한 회고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안도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곧이어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 인공지능(AI) 때문이었다.


“요즘 제 주변에서는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들려와요. 불과 2주 전에도 중국에 사는 사람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죠.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그의 친구들 중 몇몇이 해고당했다는 거예요. 그들 역시 뛰어난 개발자였지만, 인공지능이 그들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기술 전문가마저 기술에 의해 대체되는 현실. 그는 이어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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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분을 위해 사라진 90%의 일자리


Fiorel는 예전에 읽은 인도 기업가에 대한 기사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의 한 사업가가 단 이틀 만에 개발한 AI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자기 회사 직원의 90%를 해고했다는 기사였어요. 그가 내세운 이유는 ‘효율성’이었습니다. 기존의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이 고객의 문의에 응답하는 데 평균 1분 30초가 걸렸는데, AI는 그 일을 단 30초 만에 해냈다는 거죠.”


고작 1분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계와 청구 업무를 보던 직원들의 90%가 자신의 책상을 비워야 했다. 그들이 수년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는 단 1분의 효율성 앞에서 무력했다. 6명이든 100명이든, 90%라는 숫자가 가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Fiorel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점의 웨이트리스나 단순 노동직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봇이 음식을 나르는 식당은 이미 현실이 되었죠. 문제는, 이런 변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중산층이 사라진 미래,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의 이야기는 더 깊은 질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미래 세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직업이 극소수의 최상위 기술직과 다수의 저임금 육체노동으로 양극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견고했던 중산층이 사라지고, 그 중간은 텅 비어버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거예요. 기업들은 비싼 인건비를 줄여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AI를 도입하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직업을 잃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벌지 못하면 소비를 할 수 없게 돼요. 인공지능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자전거를 사지는 않잖아요? 결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해 주던 소비자들을 스스로 없애고 있는 셈이에요. 이건 정말 근시안적인 판단 아닌가요?


그의 지적했다. 단기적인 효율성과 비용 절감에만 매몰된 채, 사회 전체의 경제 생태계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소비의 주체인 인간이 사라진 시장에서 기업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정말 더 나은 삶으로 이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Fiorel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정말이지, 은퇴해서 다행이에요." 그의 안도 섞인 한숨이 나에게 서늘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일의 의미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다가올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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