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는 열정 | 포르투갈어를 배우러 브라질에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삶을 풍요로 이끈다

by morasafon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때 습관적으로 ‘쓸모’를 먼저 생각한다. 이 공부가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돈을 버는 데 유용할까? 시간을 투자한 만큼 확실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모든 배움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진다.


그 모든 효율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사람을 만났다. 미국인 Theron(가명)은 오직 하나의 언어,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위해 브라질로 떠났다. 특별한 직업적 목표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10년 전 마주친 그 언어의 소리가 좋아서,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궁금해서였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배움의 가장 순수한 목적과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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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게 도전이죠. 운전하고, 길을 묻고, 가게에서 물건을 찾는 모든 순간에 머릿속으로 포르투갈어 문장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브라질에 온 지 6개월이 되었다는 Theron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언어를 안다는 것과 그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는 언어에 완전히 잠기는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몇 년간 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계속 계획만 세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은퇴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죠. 그냥 ‘공을 굴리기 시작해야(get the ball rolling)’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떠나,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곳으로 향하는 일. 단지 ‘언어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문화권에서 자란 그가, 이 비효율적인 도전을 감행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질문에 Theron은 예상 밖의 답을 내놓았다.


이건 단순히 언어 학습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고, 다른 언어로 생각하며 세상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해, 미국인들은 좀 ‘버릇없이 자란(spoiled)’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라볼 필요가 있죠.”


그의 목표는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익힌 뒤, 대서양을 건너 포르투갈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또 다른 유럽 언어를 배우기 위함이다. 이것은 커리어를 위한 ‘스펙 쌓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삶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그는 유럽이 아닌 남미를 첫 목적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 문제 해결 방식이나 삶의 태도 면에서 남미가 북미와 훨씬 더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익숙한 세상에서 멀어질수록, 자신의 문화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그곳에 ‘Get’이라는 동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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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말은 종종 듣지만, Theron의 경험은 그 말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그는 포르투갈어를 배우며 겪었던 가장 큰 좌절이자 발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어에서는 ‘get’이라는 동사를 정말 많이 써요. 저녁을 ‘get’하고(get some dinner), 준비를 ‘get’하고(get ready), 공을 ‘get’하죠(get the ball). 그런데 포르투갈어에는 ‘get’에 해당하는 동사가 아예 없어요.”


처음에는 그저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이것이 단순한 단어의 부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개념 대신,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 ‘저녁을 먹는다(jantar)’는 동사가 따로 있고, ‘준비한다(preparar-se)’는 동사가 있을 뿐이다. ‘소유’나 ‘획득’의 개념인 ‘get’ 없이도 세상은 완벽하게 돌아갔다.


“그건 제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더라고요. 그 이상이었죠.”


그의 말을 듣자, 언어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예가 떠올랐다. 영어가 ‘You’라는 하나의 단어로 평평한(flat) 관계를 만드는 반면, 한국어나 프랑스어는 존칭과 반말(tu/vous)을 통해 관계의 거리와 깊이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식이다. Theron은 영어의 이런 ‘평평함’이 영국의 엄격한 격식과 위계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미국의 역사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언어는 한 사회의 역사와 철학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Theron은 언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오직 그 ‘비효율적인’ 도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성찰이었다.


Theron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What to get)’를 묻는 세상의 질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라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 떠났다. 그의 브라질에서의 삶은 어쩌면 언어 학습을 넘어, ‘get’이라는 동사 없이 살아보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유창한 포르투갈어 실력 외에는 아무런 ‘실용적’ 결과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이미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우리가 ‘get’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브라질 포르투갈어 (Brazilian Portuguese)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의 한 갈래로, 전 세계 포르투갈어 사용자 대다수가 사용한다. 어휘, 발음, 문법 등에서 유럽 포르투갈어와 차이를 보이며, 아프리카와 원주민 언어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특성을 발전시켰다. 브라질 포르투갈어는 부드럽고 개방적인 발음이 특징으로, 음악적인 언어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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