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을 떠나 멕시코로 | 중고 악기로 얻은 자유

타인의 회사 대신 나만의 시간을 조립하는 삶, 진정한 노마드의 조건

by morasafon

거창한 청사진을 품고 떠난 길은 아니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사무실의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팍팍한 월급봉투 너머의 삶을 꿈꿨을 뿐이다. 그렇게 Sawyer(가명)는 익숙한 미국을 떠나 멕시코의 낯선 해변에 짐을 풀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완벽한 낙원이 아니었다. 생경한 문화와 현실적인 생계의 문제를 마주해야 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이라는 궤도를 이탈한 그녀는 어떻게 낯선 땅에서 자신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회사를 나온 뒤, 비로소 시작된 진짜 일


Sawyer는 미국 대기업의 평범한 마케터였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소셜 미디어를 관리했지만, 정해진 장소와 급여에 묶인 삶은 그녀에게 맞지 않는 옷 같았다. 결국 그녀는 프리랜서 선언과 함께 멕시코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일종의 탈출이자 모험이었다.


그녀가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낯선 땅에서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악기 수리 장인인 남편은 부서진 악기를 고치는 탁월한 손기술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는 몰랐다. 반면 Sawyer에게는 지난 수십 년간 기업에서 익힌 마케팅 감각이 있었다.


"남편은 수리 기술은 좋은데 컴퓨터는 전혀 몰랐어요. 저는 반대였고요. 그때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가진 걸 합치면 어떨까? 남편이 고치고, 내가 알리는 거예요."


거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 부부의 생계를 위한 현실적인 고민이 악기 복원 및 온라인 판매라는 그들만의 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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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마리아치에게 트럼펫을 팔다


그들의 사업모델은 소박하지만 효과적이었다. 미국에서 낡거나 고장 난 악기를 싸게 들여와 남편이 새것처럼 복원하면, Sawyer가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식이다. 핵심은 바로 '어디에' 파느냐였다.


"미국에서는 회전율은 빠르지만 마진이 적어요. 반면 멕시코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수익률이 훨씬 높죠. 이곳 사람들에게 악기는 아주 특별한 의미거든요."


보통 미국의 물가가 멕시코보다 높다고 생각하지만, 특정 품목에서는 전혀 다른 시장이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Sawyer는 멕시코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멕시코에는 생일이나 축제 때 흥을 돋우는 악단 ‘마리아치(Mariachi)’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그들에게 반짝이는 트럼펫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다.


그녀는 미국의 저렴한 중고 물량과 멕시코의 문화적 수요를 연결했다.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의 문화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한 결과였고, 그녀가 말하는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는 법’이었다.



여러 개의 바구니에 삶을 나눠 담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온라인 거래에 대한 불신이 높은 멕시코에서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직접 찾아와 물건을 확인하고 나서야 거래가 성사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수입이 불안정한 달에는 온라인 부업이나, 소셜 미디어 마케팅 외주를 받으며 수입의 빈 곳을 채웠다.


이것이 바로 Sawyer가 강조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현실적인 생존법이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 그녀는 악기 판매업, 온라인 부업, 마케팅 외주라는 여러 개의 작은 바구니에 계란을 나눠 담으며 유연하게 리스크를 관리했다.


“사람들은 사업을 시작하면 당장 몇 개월 안에 큰돈을 벌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평판을 쌓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회사를 다니면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라고 조언해요.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꾸준히요.”


그녀는 ‘퇴사 후 대박’이라는 판타지가 아닌, 매일 마주하는 불확실성을 견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커리어 전환은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드는 도박이 아니라, 내가 가진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멕시코의 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단단한 내일을 조립해 나가고 있다. 스스로의 시간을 통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자신의 노동 가치를 온전히 누리는 진짜 ‘자유’를 맛보면서 말이다.



마리아치 (Mariachi)

마리아치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전통 음악 연주단이자 그 음악 스타일을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트럼펫, 바이올린, 다양한 크기의 기타(비올라, 기타론) 등으로 구성되며, 연주자들은 은 장식이 달린 화려한 차로(Charro) 의상을 입는 것이 특징이다. 생일, 결혼식, 축제 등 멕시코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주요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흥을 돋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독창적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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