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1. 긴 밤을 보냈다. 사파리는 낭만적이었지만 바람막이가 없는 차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리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모처럼 가져온 보드게임을 밤에 하려 했으나, 씻고 식사를 마치니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2. 자기 전에 우리 숙소동 전체를 경비하는 친구가, 요리를 하는데 무가 없다면서, 혹시 요리하다 남은 무가 있으면 달라며 방문을 두드렸다.
우린 파스타를 해 먹어서 무는 없었다. 대신에 계란 6알과 빵, 과일 등을 주었다. 배가 고 파보였다. 너무 고맙다며 연신 밝은 웃음으로 인사했다.
우리나라에서 펜션에 숙박했는데, 펜션지기가 구워 먹고 남은 고기 좀 달라고 하면 어땠을까.
아마 화제가 되어 지역 인터넷 언론쯤엔 오를 법 할 것이고, 네이버 펜션 리뷰는 테러를, 온갖 모욕적인 언사들로 앞으로의 영업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3. 그러나 아프리카는(몇몇 잘 사는 국가를 제하곤) 아직도 생계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편이다. 특히 빅토리아 폭포를 두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잠비아, 보츠나와, 짐바브웨에선 수많은 보따리상들이 큰 박스를 머리에 이고 국경을 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유인즉, 시기에 따라 빵, 쌀 등 기초적인 식량이 부족한 나라와 잉여가 생기는 나라가 달라지기 때문에, 남는 나라에서 정해진 제한 범위 내에서 빵을 사다가 본국에 가져와 파는 것이다. 아주 기초적인 무역의 형태가 2020년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과 저 먼땅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4. 국경에는 역시 수많은 간이음식점과, 보따리상들이 즐비했는데 우리를 태운 택시기사는 그들을 못마땅해했다. follow 1~2 coins라며, 행인들을 상대로 겨우 푼돈이나 벌며 먹고산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름 잠비아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은퇴 전까지 선생님을 했던 인물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당히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기회와 기대가 있겠으며, 또 나름대로 지식인인 그에게는 고국의 경제나 문화상황이 얼마나 암담하겠는가.
5. 못 먹어 죽는 기아들, 오염된 물에 고통받는 수인성 질병들, 낯선 외국인들의 팁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경제상황. 불안정한 화폐정책으로 휴지 쪼가리보다 가치가 낮았던 통화, 또 그 1조짜리 통화를 관광품이라며 팔고 있는 국민들.
꿈도 빵 없이는 의미가 없고, 행복도 건강 없이는 사치일 뿐이다. 맨발로 매일 수키로의 달궈지는 아스팔트를 큰 물통을 이고 걸어 다니는 그들을 보며,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동정도 아니고, 그들보다 훨씬 잘 산다는 우월감은 더더욱 아니었다.
압도적인 슬픔.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조차 지켜지기 힘든 그들의 삶, 그와 대조적으로 장엄한 자연 속에서 또 얼마나 인간은 작아지는가.
6. 계속해서 그런 기분이었다. 완벽한 자연과, 완전한 가난. 밝은 미소와 해맑은 심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딘가 곧 무너질 것 같은 눈동자. 삶은 얇은 줄을 올라탄 것처럼 위태롭지만, 그들은 또 그 불안 속에서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나간다.
7. 짐바브웨를 출국하고 잠비아를 입국하기 전,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무국적인 영토(두 땅을 이어주는 다리)에서 처음으로 번지점프를 했다. 공포는 점점 발끝부터 머리까지 올라와서, 몸에 안전로프를 감을 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으며, 카운트를 세고 뛰어내릴 때는 그저 심장마비만 오지 않기를 바랐다. 겁이 없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겁이 많아진다. 세월 따라 변하는 어른을 욕했는데(특히 민주화운동 투사들의 변절을 제일 경멸했다), 그도 나름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면 일부분은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 뚱딴지같은 생각이 자유낙하를 하는 도중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8. 누군가 떨어져서 죽기 전에는, 시간이 느려지며 지난 세월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길래, 나름 그런 경험을 해보길 원했지만. 뛰고 난 결론이 ‘사람은 나이 먹으면 변해’라니..
9. 아 물론 너무 무서웠고, 거의 한 번 죽은 것과 다름없는 기분을 느꼈으며, 다시 하라면 반드시 피할 것이다.
10. 훌륭한 가이드 evaristo덕에 남아공으로 돌아가는 오전 일정이 차질 없이 마무리되었다. 경유지의 비행 편이 한 시간 일찍 당겨져서 경유를 못할까 걱정했지만, 그마저도 성공적으로 탑승했다.
11. 다시 돌아온 케이프타운은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기대했던 포르투갈 전문점의 요리는 많이 짰다. 리스본에서 먹었던 생선요리를 기대했는데.. 점원은 케이팝, 그중에서도 트와이스의 팬이었다. 아이돌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와는 별개로 한국의 음악산업은 정말로 대단하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잘 모르는 나라->위대한 bts 및 엔터테이너, 그리고 손흥민의 나라로 바뀌고 있다. 어쨌든 낯선 땅에서 고국의 칭찬을 듣는 것은 매우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