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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Feb 06. 2019

낯설고 아름다운 땅, 쿠바 - 3

낯선 사람들, 친구라는 말의 의미.

눈을 떴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간밤에 꾼 꿈에 쿠바가 나왔던가. 아니다 의식은 기억의 편린을 헤집고, 익숙한 얼굴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몸이 무거웠다. 한국을 떠난 지 이틀 만에 긴 잠을 잤다. 어젯밤은 숙소 맞은편 집에서 그들의 가족끼리 파티를 한 것 같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아프로큐반과 화려한 살사. 쿠바 사람들은 모두가 춤에 일가견이 있는 듯 보였다.


해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서야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 아마 그것은 지난밤의 몽롱한 감정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해가 지는 풍경과 동이 트는 무렵은 매우 닮았다.

쿠바는 특색 있는 것들이 있다. 인터넷에 쿠바를 치면 나오는 정보들의 공통적인 것은. 시가, 올드카, 럼, 쿠바 전통음악, 춤, 말레콘 해변, 체 게바라, 그리고 커피쯤이 된다.


커피를 담은 주전자가 끓었다. 무니형은 그것이 무슨 방식이라며 설명해 주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작은 잔에 반쯤 커피를 채우고 나머지 반은 우유를 넣어 섞어마시니 정말 맛이 좋았다. 어쩐지 처음 맛보는 커피 맛이었을 수도 있다.


까사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 나라여서, 오프라인이어도 gps로 작동되는 앱을 들고 목적지를 향했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있는 주민들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를 아바나 대학교의 학생이라고 칭하는 남자가 우리에게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섰다. 헤어질 때는 팁을 주어야 하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의 그들

아바나 대학교 안을 들어가서 그는 쿠바의 역사와 쿠바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 대학 안의 유적과 동상들에 대해 유려하게 설명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외국인 여행객이 서울대 학생 가이드와 서울대 투어를 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과 같았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농담을 섞어가며 가이드를 이어갔고, 어떤 부분에서는 말로 전달되는 것의 깊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대학을 나와선 한 술집에서 우리 셋과 아바나 대학 학생 둘이서 쿠바의 전통 칵테일을 마셨다.

술집 벽화에는 흰색 술과 검은 술이 같이 그려진 유화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 그림이 쿠바의 레이시즘의 변천과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일행이 쿠바 혁명에 성공하고 바티스타의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후 한 일중 하나는 쿠바의 레이시즘을 없앤 일이다.

El Negro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쿠바역시 유색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였는데, 백인들만 기득권을 쥐고 있었다. 피델은 이를 없애고자 그전까지 흰 술(아마도 럼이겠지만) 콜라를 섞어 "el negro"이란 칵테일을 만들어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사회란 그 칵테일처럼 백인과 흑인 그리고 다른 인종들이 한대 섞여 어울려 사는 사회였던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때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외국을 여행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이런 순간들이다, 내가 전혀 하지 못했던 생각을 듣고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며 내 견문이 넓어지고 생각이 보다 유연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


그들은 자연스레 우리에게 기념품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코히바 시가(쿠바산 중 가장 품질이 좋은 시가)와 럼을 사다 주었다. 물론 직접 사는 것보다 싸지 않았지만 수업료겠거니 생각하고 돈을 지불했다. 그들은 하루에 한 끼의 양질의 식사쿠폰이 나오고 아침 점심은 보통 굶는다. 그들이 올려 받은 시가의 차액은 그들에겐 그대로 한 끼의 식사가 된다.


친구끼리 동정은 금물이지만, 우리는 입으로는 마이 프렌드를 말하며 서로가 일시적인 계약관계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점심까지 얻어먹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정오가 지나 햇볕은 타는 듯이 땅을 달구고 있었고, 그들에게 산 술과 시가가 무거워 어떻게든 잠깐 숙소에 들러 이것들을 놓고 나와야 할 것이다.


숙소에 들러 더위가 약간 사그라들 무렵에 다시 나와, 그 학생들이 추천해준 식당에 가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고 형편없는 식사를 했다. 나중에 다른 여행객에게 들은 말이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를 데리고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식당 주인은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무료 식사쿠폰을 준단다.

체 게바라님과

둘째 날의 점심 식사는 두고두고 우리의 기준이 되어, 쿠바에서 비싼 식사는 가치 없는 일이며, 나름대로의 식사 가격의 상한선을 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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