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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Oct 09. 2024

게임으로 배우는 인생철학

전략적 팀 전투(TFT)와 삶

내가 게임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 네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가, 일본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SEGA'게임기를 사다 주셨다.

당시에는 컴퓨터도 이제 막 가정용으로 보급되고, 게임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하던 시대였다.

방송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게임기에서 칭얼거리지도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아이들에게 게임기를 사주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어 학습능력을 키워준다"며 게임을 마치 새로운 학습도구인 것처럼 다뤘다.

학구열이 높았던 우리 부모님도 그 말을 믿고 게임기를 사주었으며, 그때부터 나의 게이머 인생은 시작됐다.


훗날 게임은 온갖 악명을 뒤집어쓰며 '사회악'으로서 통칭되던 시기도 있었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폭력성을 높이고, 사회성을 망가뜨리고 등등.. 나의 학창 시절도 이때를 함께 지나고 있어서 공부와 게임 사이에서 부모님, 특히 어머니와 지속적인 마찰을 빚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게임은 하나의 스포츠 장르로서 점점 더 인정을 받게 되었고, 실제로 아시안게임에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머지않아 올림픽에서도 우리는 프로게이머들이 대한민국 국기를 시상대에서 들어 올리며 국위 선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내 게임의 역사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길다. 어림잡아도 30년. 게임을 통해 그럼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이 글에서는 내가 요즘 빠져서 하고 있는 전략적 팀 전투(TFT)라는 게임에서 느낀 바를 써보고자 한다.


가운데 있는 전설이가 아주 귀엽다


전략적 팀 전투(Team Fight Tactics, 줄여서 TFT)는 라이엇게임즈의 롤 IP 기반의 게임이다. 라이엇게임즈가 구축해 놓은 리그오브레전드 세계관은 2009년 미국의 작은 게임회사에서 시작해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IP 중 하나로 성장했다. 축구에 메시가 있다면 롤에는 FAKER(이상혁)이 십 년 넘게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글로벌 아이돌그룹 팬 못지않게 팬덤도 어마어마하다. 롤 IP를 기반으로 하는 아케인이라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은 공개한 이후 50여 개국에서 1위를 탈환, 그 어마어마한 오징어게임을 제쳤다. 아케인은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일반 시청자에게도 매력적인 스토리로 다가와 게임의 기반을 넓혔다.

(관련기사 :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24061195211&category=&sns=y)


전략적 팀 전투는 '롤토체스'라는 별명이 있다. 이름에 체스가 들어가듯, 말 그대로 기물(장기에서 쓰는 기물과 용어가 같다)을 활용해 전투를 하는 체스와 장기의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체스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은 판단력이다. 준비단계와 전투단계를 매 라운드마다 모든 플레이어가 동일한 시간제약을 거치며 점점 더 자신의 필드(보드)를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필드를 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골드'라는 재화를 통해 소비하게 된다. 모든 방법들은 '골드'의 가치로 환산되어 판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운도 꽤나 따라줘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지만 그 운을 높이는 의사결정, 그리고 모든 상황과 상대방과의 전투구도에 따른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는 경험등이 이 게임 실력의 본질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매 라운드를 거치며 8명의 상대와 돌아가며 전투를 하게 되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이다. 1~8등까지 보상은 차등되며, 1~4등은 점수가 올라가고 5~8등은 점수가 떨어진다. 1등은 많이 올라가고 4등은 조금 올라가며, 5등은 조금 떨어지고 8등은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준비단계
전투화면


재밌는 것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얻어지게 되는 상황판단 능력이,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의사결정의 기준과 놀랍게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첫째, 돈을 초기에 잘 모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돈을 잘 관리하는 것. 이 게임에도 복리 시스템이 있어서 초기에 빠르게 모은 골드가 나중에 훨씬 더 많은 골드를 창출한다. 다만 돈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돈을 사용한 상대보다 필연적으로 필드가 약해서 패배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렇게 모은 돈을 사용해서 필드를 강화시키면 돈을 모으지 않으면서 플레이를 하지 않은 상대보다 훨씬 강해지고, 그 이후부터는 대부분 승리해 나갈 수 있다. 초반에 돈을 잘 모을수록 평균 등수도 높게 가져갈 수 있다. 고진감래. 다시 말해 우리 인생에서 '돈'이라는 수단은 매우 중요하며, 돈을 모으는 순간은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고, 이를 잘 견뎌내야 과실이 떨어질 수 있다.


-둘째, 돈을 잘 모으는 것만큼 돈을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게임을 이제 막 배우는 유저들이라면 돈을 다 소비하지 못한 채로 지는 경우가 많다. 돈을 모으는 것만큼이나 돈을 언제 쓰고, 얼마나쓰고 하는 의사결정을 잘 내릴 수 있는 것이 실력이다. 인생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고 그 수단을 잘 사용하는 것이 승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셋째, 기세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돈을 모으지 않고 초반부터 돈을 계속 써가면서 플레이하는 것도 승리전략 중 하나이다. 승리가 꼭 1등이 아니더라도 기세를 계속 잡아나갈 수 있으면 순위방어(1~4등)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후반의 승리가 초반의 승리보다 보상이 더 크지만, 초반에 벌어놓은 승리로 후반의 패배를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삶이 극단적으로 미래에 치중돼있는 삶이 아니라면 현실을 잘 살면서 적당히 소비도 하고 충분히 젊은 시절들을 즐기며 사는 것도 절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아주 나중으로 가게 되면 고진감래를 겪어낸 사람들이 순위가 더 높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은 등가교환은 아니지만 그 교환의 대가를 스스로 저울질하며 인생에 의사결정을 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이 게임의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매번 승리를 위한 플랜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내가 처한 운(환경)을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점을 보는 승리플랜(하이리턴을 노리는 플랜)은 그만큼 위험하다. 그러나 고수일수록 고점을 보는 판은 운이 따라줄 때 의사결정을 한다. 반대로 저점을 높이는 판(로우리스크를 추구)은 운이 없을 때 짜는 플랜이다. 잘해야 3~4등인 판에서 하이리턴을 노리는 플랜을 짜게 되면 그대로 7~8등이 된다. 인생도 투자도 유사하다. 잘 풀릴 때는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서 더 크게 키우고, 잘 안 풀릴 때는 위험요소를 제거해서 대미지를 줄이는 것이 평균적으로 유리한 의사결정이다. 게임처럼 정형화되진 않았지만, 크게 보면 사람 인생이라는 것도 좋은 시기 나쁜 시기를 번갈아가며 겪기 때문이다. 이걸 직업으로 확대하면 더욱 명징하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잘 풀리면 매우 크게 성공하지만, 잘 안 풀리면 정말 괴롭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경우 잘 풀려도 사업하는 사람만큼 여유롭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잘리지 않는 이상 크게 인생이 고통스러워질 일도 없다.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과 성향에 맞게 잘 판단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다섯째, 완벽한 사람은 없다. 

최상위권의 유저들조차도 매번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실수를 한다고 실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안다. 그리고 실력의 향상이라는 것이 실수를 통해 계속 배워나가면서 이뤄진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를 들어보면 훌륭한 인물일수록, 더 잘될 사람일수록 스스로 계속 배움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그들 역시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 고민과 실수와 실패를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으며 그것을 계속 자양분 삼아 멈춰있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는 점이다. 가장 실패한 인생은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는 순간에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 또한 발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 필수라는 것이다.


-여섯째, 좋은 멘토는 늘 필요하다.

나는 내 친구에게 TFT를 배웠다. 그는 이 게임이 출시된 이후 줄곧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가장 도움을 받을 때는 어딘가 막혔을 때이다. 뭔가 배우고 배우다가 오히려 계속 패배가 쌓이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 플레이에 대해 피드백을 받으면 막힌 혈자리가 뚫리는 것처럼 배움을 받고 실력이 한번 팍 튀어 오른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은 본인이 깨우치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고 스스로 배워가며, 그러나 좋은 스승(멘토)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면 내가 하는 고민들은 멘토도 똑같이 했던 고민이며, 그 고민에서 나름대로 해답을 갖고 깨치고 나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의 선구자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자주 배움을 청하는 것, 충분히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게 결국 나에게 다 돌아온다.


마치며..

TFT를 시작한 지 일 년여 돼 간다. 한국에서는 어림잡아 200만 명 내외가 TFT를 하고 있다. 특히 요즘 군인들이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서, 다 같이 생활관에 모여 TFT를 하는 것이 부대문화라고 한다. TFT가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빠져드는 이유는 어쩌면 인생이랑 굉장히 닮아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등수는 3천~5천 등을 왔다 갔다 한다. 상위 0.3% 수준에서 멈춰있다. 나아가기 위한 배움이 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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