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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8> 쉬어가기

반신욕, 음악, 별

by 모블랙
…1점 차로 지고 있던 차 명식이가 나에게 공을 주었다. 풋워크로 수비를 제치고 종료를 3초 남겨두고 점퍼를 뛰었다. 백보드를 노리고 쏜 슛은 그대로 림으로 빨려 들어갔다. 꿈같은 역전승이었다. 지난여름, 친구들과의 특훈이 빛이 발하던 순간이었다. 위닝샷을 성공시킨 나는 친구들과 부둥켜안았다. 우승이었다.
요즘 ChatGPT랑 노는 재미에 심취했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꾸었던 꿈. 인생의 갈림길에서 승자와 패자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라도 그 이후의 결과는 극명하다. 중학교 시절 농구대회에서 1점 차이로 준우승을 한 순간은 내 꿈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한 끝 차이로 결승에서 패배를 한 뒤로 농구에 대한 열정이 점점 식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레이커스의 경기를 본 후에 유튜브로 온갖 농구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 어딘가 깊이 묻어놓은 장난감을 다시 꺼내어 재밌게 가지고 노는 기분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면 기초부터 다시 해봐야겠다. 오히려 예전에는 기초를 체계적으로 다진 적이 없어서 처음부터 해본다는 생각에 설렌다.


오늘은 엔틸롭캐년을 가는 날이다. 엔틸롭캐년은 윈도우 화면보호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 이름은 몰라도 아마 사진을 보면 누구나 “아 이거 본적 있어”라며 알아챌만한 곳이다. 명성에 걸맞게 앤틸롭캐년 투어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오전 첫 타임인 7:30 빼고는 전부 매진이었다. 그렇게 된 김에 오늘은 아예 오전에 투어를 다 끝내고 다음 행선지로 일찌감치 넘어가서 쉬는 날을 갖기로 했다. 마침 묵게 될 숙소는 캐년 투어 일정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숙소 근처에서 출발하는 투어트럭을 타고 20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 앤틸롭캐년에 도착했다. 우리를 이끌어 줄 가이드는 나바호부족 출신의 아메리카원주민이었다. 길지는 않은 협곡이었지만 동생은 과학자답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지형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신기하게도 가이드가 지질학자처럼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알고 보니 그도 이곳에 방문한 지질학교수에게 물어가며 배운 것이란다.

누가 과학자 아니랄까봐 죄다 과학적인 질문만 하는 교수님.. 동생덕에 덩달아 나도 배웠다.

문득, 예전에 모로코에서 사하라사막을 횡단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며칠 동안 낙타를 타며 사막투어를 했는데, 우리를 이끌어준 가이드는 조상 대대로 사하라를 오가며 무역을 했던 베르베르인의 후손이었다. 그는 이슬람어는 당연하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며 대화를 했었다. 그의 언어 능력이 신기해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잘하느냐고 물어봤는데, 투어를 온 여행객들과 이야기하며 한 문장, 두 문장씩 평생에 걸쳐 배운 것이란다. 그때도 가장 효율적인 학습은 텍스트가 아니고 인터렉션에 있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냥 아무 설명 없이 협곡을 지나쳤으면 5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통과하니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이드는 이전에는 아무 규제가 없어서 누구나 드나드는 것이었는데, 주 정부에서 이곳을 허가를 받아야 관광할 수 있는 지역으로 바꾸었고, 투어회사를 통해서만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바호 인디언보호구역 안에 있는 동네(페이지)인 만큼 관광업체나 식당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메리카원주민들이었다. 팁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그들은 선택받은 소수였다.

투어를 마치고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Ranch House Grille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아침식사 메뉴 중 Country Fried Steak라는 메뉴가 있었고, 피닉스 매거진 선정 Top50안에 드는 디쉬라는 설명이 달려있었다. 한껏 기대를 하고 시켰는데.. 그저 그런 소고기로 만든 비후까스(옛날 경양식집 스타일)였다. 재밌는 것은 종업원, 손님 대부분 인디언들로 보였다. 식사를 하며 나바호인디언보호구역에 있는 인디언들에 삶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이렇게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상위층의 원주민들이었고, 50%가 넘는 보호구역 내 인디언들이 극빈층에 속하였고 절반이상의 거주구역에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이 건국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지만, 이 땅의 원래 주인들은 전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듯했다. 철저한 패배자의 입장에서 후손들도 빈곤과 마약과 질병에 시달리며 비참한 선조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차를 몰아 홀스슈벤드라는 유명한 관광지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말굽의 편자 모양으로 생긴 신기한 지형이었는데, 굉장히 많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20대의 한국 여행객들로 보였는데, 사진이 잘 나오는 스폿을 골라잡아 일 인당 적어도 100장씩은 찍는 듯했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인스타에 올리겠지. 하나같이 똑같았다. 아름다운 여행지를 찾는 이유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스타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주객이 전도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단 그게 그들이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대한민국이 남에게 보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겠지. 나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아니고 남이 봤을 때 부러워할 만한 삶이 정답처럼 여겨진다는 것. 바쁘게 살고 있을 때는 잘 인지하지 못하다가 해외를 나와서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극명하게 보인다. 물질적으론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론 피폐한 삶. 그게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 생각을 뒤로한 채, 다음 숙소인 KANAB이란 마을로 향했다. 여기서부턴 애리조나에서 유타로 넘어갔는데, 유타주에 사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몰몬교를 믿는다고 했다. 동생은 그들을 두고 “대화를 하다 보면 눈을 크게 뜨고 내 내면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런지 진짜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 백인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사람들이었다..

각자 짐을 정리하고는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잤다. 저녁은 동네에서 스테이크와 맥주 한 잔을 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곤히 자고 있어서 아내와 나가서 BBQ를 사 왔다. 저녁을 먹고는 이 숙소의 하이라이트인 야외 Hot Tub에 들어갔다. 시골답게 주위에 불빛은 하나도 없었고, 별은 쏟아질 듯 하늘을 메웠다. 오만 별자리와 성단도 보였고, 심지어는 별마다 깊이가 다른 것도 느껴질 정도로 선명했다. 이때를 위해 한국에서부터 모셔온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어 Radiohead의 ‘No Surprises’를 틀었다. 이 노래는 내가 사하라에서 별을 보며 듣다가 눈물을 흘린 노래인데, 그때의 감격을 아내와 동생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아내는 황홀한 경험이라 표현했다. 그녀의 말처럼 경이로운 밤이었다.

황홀 그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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