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마치며 - 1
마지막 이틀은 빠르게 지나갔다. 쿠바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마지막 날 정오쯤이고, 지금이 저녁 6시쯤이니 나는 쿠바의 마지막 날은 쿠바 여행 중에 쿠바를 미리 끝내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목요일 아침 까사에서 식사를 마치고 센트로 아바나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곳까진 이전 숙소보다 더 멀어져서 오늘은 최소한 10km 이상은 걸어야 할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 싸고 편하겠으나, 걷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는 뭉클한 장면을 올드 아바나 쪽에서 목격했다. 그것을 보기 위해 걷는 것이다.
학교라고도 할 수 없는 낡은 건물 1층에서 쿠바의 아이들은 수업을 듣고 건물 밖에서는 아스팔트 위에서 뛰놀았다. 그곳에는 모래도 없고, 최소한으로 아이들을 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골목 양쪽에 쳐 놓은 얇은 줄 두 개만이 뜨거운 아스팔트를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그저 아이들은 꼬리를 잡고 부둥켜안고, 깔깔거리며 뛰었다. 그들에게는 그 흔한 축구공도, 편한 신발도 없었지만 분명히 그 세상 어떤 것보다도 순수했다. 언제 가진 적이 있던 순수였던가.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나는 신을 생각했다. 만약 당신이 실제로 계시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가난이 가져가지 못할 행복을 내리소서. 그 누구도 앗아가지 못하도록 마음속의 깨끗함을 지켜주소서.
올드 아바나에 도착해서 저녁에 볼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 투어버스를 탔다. 우리가 오늘 돌아볼 곳들의 거리가 상당해서 버스를 타며 시간을 좀 아끼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탄 턱에, 투어버스는 하바나 외각을 향해갔고, 숙소 쪽도 지나고 말레꽁도 지나 한 시간 여를 허비하게 됐다.
버스에 내려서는 이층 버스에서 햇볕을 계속 받았던 터라, 바라데로에서 화상 입은 팔과 다리가 후끈거렸다.
마침 배고 고프고, 음악소리가 나는 곳에 자리를 잡고는 음식을 먹으며 밴드의 공연을 들었다. 여행의 끝무렵에 되어서야 처음으로 쿠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밴드는 훌륭했고, 그것보다 더 지나친 흥분으로 나는 그들의 cd를 사고 팁을 주고, 트럼페터에게 당신은 아스트로 산도발 못지않는다며 칭찬을 했다.
집에서 다시 들으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프로큐반 올스타즈 못지않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인사동 같은 거리에 들어서, 쿠바 작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러 갤러리도 들어갔다오고, 그토록 찾던 쿠바 국기 모양의 핀도 종문 이형은 살 수 있었다.
작년에 모로코 여행을 같이 하며도 그랬지만, 내 여행을 무엇인가로 남기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형의 가방은 다녔던 국가의 깃발이 그려진 핀들로 도배되어 있다. 나는 무엇으로 내 여행들을 남겼을까. 사진인가. 아니다 사진은 크게 의무적으로만 찍었을 뿐.
그렇다면 글이다. 글과 음악. 그 당시 들었던 음악. 머지않아 근 10년의 여행 사진과 글들을 정리한 블로그를 만들 계획이다. 어쩌면 너무 오래된 사진과 기억들은 희미하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야 덜 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