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13> 애플본사 탐방기

Vision Pro의 기억법

by 모블랙

California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주이다. 거주인구는 4000만 가량으로 대한민국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문화적으로는 할리우드가 있고, 기술적으로는 실리콘밸리에 세계를 주름잡는 Tech기업들이 몰려있다. 상당히 개방적인 지역으로 버클리에서는 히피문화가 태동했고 온갖 성 정체성이 인정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연 중 거의 대부분이 구름 한 점 없는 20도 내외의 기온을 유지한다. GDP는 연간 약 3.5조 달러 수준으로 미국 내 50개의 주 중 가장 높다. 캘리포니아 단일 주의 GDP가 세계 5위의 경제국가 수준이다. 정치적으론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고, 개방적인 주인만큼 민주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도시로는 우리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Los Angeles, 그 아래에 있는 San Diego가 있다. 위로 올라오면 Bay를 따라 San Francisco와 San Jose가, 내륙으로 들어가면 주도인 Sacramento가 위치해 있다.


이번 미국 서부여행은 베가스와 캐년투어가 있는(네바다->애리조나->유타->네바다)의 5박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는 일정으로 구성됐다. LA에서 처음 6일간을 보내며 샌디에이고도 잠시 다녀왔다. 캐년 투어를 마치고는, 동생 집이 있는 Davis캠퍼스 타운에 머물며 새크라멘토도 잠깐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의 중간에 위치한 벌링게임에 머물며 위아래의 도시를 다녀오는 코스다. 캘리포니아 내 큰 도시는 모두 둘러보는 셈이다.


주말을 맞이해 오늘은 우리 부부와 동생커플이 산호세를 놀러 가기로 했다. 마침 토요일 오전에 동생 여자친구가 산호세의 병원예약이 있었는데, 가는 김에 그 근처에 있는 Westfield를 구경하고 실리콘밸리에 애플과 구글 본사에 들러 구경해 보기로 했다. 하남과 삼송 등지에 위치해, 주말이면 주차하기도 어려운 우리나라의 스타필드가 산호세의 Westfield를 모방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웨스트필드의 내부는 스타필드와 비슷했다.

축제 기간이었다.

점심으로는 10 Butchers라는 한국식 BBQ집에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인근에 위치한 한식집들 중에서도 가장 고급이고 인기가 많은 곳으로, 조금만 시간이 늦으면 길게 웨이팅이 있는 집이라고 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고 착석을 하고 메뉴판을 보니 가격대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주 메뉴로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파는데, 지난번에 동생 커플이 삼겹살을 먹었을 때는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고 하여 소고기를 먹기로 했다.

등심, 꽃살, 살치살, 갈빗살 등 부위별로 별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각 부위별로도 어떤 소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어, 등심은 가장 좋은 고기는 일본산 와규로 우리 기준 1인분에 약 22만 원 정도였고 가장 낮은 등급은 보통등급의 미국 소로 우리 기준 2인분에 약 13만 원 정도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좋은 숙성 소고기집에서 2인분을 먹는 가격이 여기서 가장 낮은 등급의 소고기를 먹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동생과 상의 끝에 등심은 보통등급으로 2인분, 양념소갈비 2인분, 육회 그리고 사이드 몇 개를 시켰다. 아무래도 고기가 보통 등급인 탓에 우리나라 1등급에서 1+ 사이정도 되는 고기가 나왔고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 자주 가는 소고기집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받은 채로 먹었다. 그리고 팁과 세금포함 50만 원 가까이 지출했다. 네 명이서 이 돈 내고 이 정도 퀄리티에 소고기를 먹으니 다시 한번 지금 소득으로는 미국에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가장 좋은 등급의 소고기를 먹었으면 ‘맛있다’는 생각은 했을 수 있겠지만 100만 원은 훌쩍 넘었을 테지.

실제로 샌프란이나 산호세 시내에서 파인다이닝을 즐기려면 인당 기본 10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이 우리나라 물가에 3배 정도를 셈하면 딱 맞았다. 좋은 현지 레스토랑에서 아주 잘 갖춰진 음식을 한 번쯤을 먹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탓에, 근 10년 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반드시 파인다이닝을 일정에 포함시켰다. 미쉐린 쓰리스타까진 아니어도 투스타 레스토랑이나 그에 준하는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것이 내 일반적인 여행 패턴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차마 두 눈 딱 감고도 그 엄두가 나질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는 근처에 있는 애플본사를 방문했다. 뭔가 엄청난 것이 있을 줄 알았으나 작은 Visitor Center만이 우리를 맞이할 뿐이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애플 본사의 그 넓은 부지를 축소해 놓은 모형이 있는데, 거기서 렌트해 주는 아이패드를 그 조감도 모형에 가져다 되면 아이패드 내 화면에선 갑자기 모형이 살아 움직이며 건물 구조도 보여주고, 뚜껑도 열고, 사람 움직이는 모습도 보고 하는 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심플한 비지터센터나 아이패드를 통한 투어프로그램 모두 애플스럽다고 느꼈다.

다시 웨스트 필드로 돌아가서는 애플샵에 들어가서 비전프로 체험을 예약했다. 비가 오는 탓에 주말임에도 평소보다 사람이 적다고 동생 커플은 말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되어 비전프로 체험관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작년에 동생 커플은 별 기대 없이 비전프로를 한 번 해봤는데, 큰 충격을 받고는 둘 다 하루종일 그 얘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솔직히 해보기 전 까지는 별 기대가 없었다. 이전에 해봤던 VR체험의 일부겠거니 하며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을 하니 직원들이 사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내 눈동자는 마우스가 되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응시할 때마다, 내 초점을 따라 작은 점이 움직였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꼬집듯이 맞대자 Click버튼의 효과를 내었다. 사용법은 애플기기를 사용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손사래를 슬쩍 치면 화면이 넘어갔다. 양손을 꼬집은 채로 손을 멀어지게 하거나 가깝게 하면 화면이 확대되고 축소되었다.


사용법이 끝나자 사진첩으로 순서가 넘어갔다. 아이폰의 최신 버전부터는 사진 기능에 <공간> 기능이 있는데, 나는 16 Pro를 쓰면서도 단순히 ‘풍경사진이 잘 담기는 모드인가?‘ 싶었다. 그런데 비전프로를 통해 <공간> 기능으로 찍힌 사진을 보니 말 그대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VR은 비전프로에 비하면 그냥 아이들 장난감 수준이었다. 숨이 멎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도 생경하게 그 당시의 공간을 비전프로는 구현하고 있었다. 얼마나 화질이 좋냐를 얘기할 것이 아니고,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현실이라고 믿어질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파노라마 공간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마치 내가 그 공간에 ’ 지금‘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전프로는 카메라 렌즈에서 보는 <화면>을 담는 것이 아니라 촬영 당시의 <환경>을 그대로 들고 와서 사용자에게 현실처럼 보여주었다.


다음으로는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난 정말 눈물이 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일단 동영상 자체의 구성이 완벽했다. 외줄 타기 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시작한 영상은 반려동물들과 노는 아이들, 평범한 가족의 일상 속에서의 행복한 순간들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그다음에는 VIP석에서 관람하는 것처럼 AD의 패스를 받은 르브론이 덩크를 성공시켰고, 다음 장면에서는 팝스타가 스튜디오에서 앨범 녹음을 하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을 잇지 못한 채로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충격적이었다. 아내는 미래가 어떨지 너무 선명하다며 반드시 이것과 관련된 주식을 사야겠다고 감상평을 밝혔다. 나는 내 인생에서 이렇게 충격적인 새로운 경험을 한 적이 언제 있었나를 곱씹었다. 처음 스마트폰을 썼을 때 보다 더 혁신적인 기술로 느껴졌다.


동생커플이 좋아하는 갈비탕 집에서 갈비찜과 갈비탕을 시켜 저녁을 먹고는 집에 들어왔다. 동생은 열흘 넘게 우리를 가이드해 주고, 데이비스에 돌아와서도 짐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피로가 쌓여 컨디션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서 구글본사는 패스하고 집에 들어와 앉아서 넷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 여자친구는 로스쿨 입학 전 한국에 있었을 때 영어교육 스타트업에서 원어민 튜터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나도 영어를 더 쓰고 싶은 마음에 그날 저녁은 모두 영어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듬더듬 진행되는 대화와 친절한 선생님의 교정 속에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다. 비전프로가 어땠냐는 질문에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는 대답을 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느새 일흔 가까이 되신 아버지와, 여기저기 편찮으신 어머니는 이제는 누가 봐도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떠올려보면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 간의 대화가 참 많은 집이었던 것 같다. 일단 대화의 궁합이 가족 구성원들이 잘 맞는 편이었다. 지금도 가족이 모이면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네다섯 시간도 거뜬히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부모님은 가족의 가장 큰 자산이 <함께하는 경험>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분의 철학 덕분에 나는 20대에 이미 서유럽, 북유럽, 동유럽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가족과 유럽여행을 했다. 나와 동생이 대학을 모두 들어가고 내가 전역한 다음 해부터 시작된 가족의 해외여행은 2022년까지 10년 넘게 이어졌다. 그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해가 지남에 따라 부모님은 50대에서 60대가 되었고, 흰머리도 하나 둘 늘어갔다. 2019년에는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시도했다. 나는 이미 당시에 친구들과 한참 배낭여행을 다니고 있었고, 거기서 느꼈던 그 자유와 외국인들과의 인터렉션을 다른 가족들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느끼고, 배낭여행은 앞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던 여행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인간은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 누군가의 품에서 태어난 인간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품고 ,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새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탄생과 죽음은 한 굴레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유한한 시간을 부여받아 생을 누린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의 어떤 한 순간순간의 집합일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많이 가질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감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행복한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기록한다. 이전에는 글로서 기억을 갈무리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은 그것을 카메라를 통해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발전한 현대에선 그 순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동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완벽하게 그 순간을 기억할 순 없다. 아무리 좋은 장비로 찍은 동영상이라도 그것은 그 공간의 파편에 불과하다. 영상에는 냄새도, 질감도 없다. 우리는 눈으로 봤던 것의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추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전프로는 적어도 그 순간의 시각적, 청각적 경험을 거의 현실에 가깝게 재현해 주었다. 이제 냄새와 촉감등을 담을 수 있다면 현실과 기술의 경계는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이 진보하여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때때로 ’기억의 왜곡‘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즐거운 기억도 희미해지는 반면, 괴로운 기억도 그만큼 옅어진다.


그런데 비전프로가 더 발달하고, 안경처럼 콤팩트해지고, 모두가 비전프로와 연동되는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된다면(지금의 스마트폰 보급처럼) 인간의 삶은 지금과 같을까? 나는 아닐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극도로 선명한 ‘행복한 순간’은 인간의 기억이 왜곡되기 어려운 수준까지 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잃은 자들과 함께 했던 시절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AI발달은 실제 촬영 없이도 쉽게 현실을 구현하고 있고(예전 사진을 복원하는 기술을 보면 명백하다) 실제 인간 간의 인터렉션이 주는 경험, 여행이 주는 경험 모두 어쩌면 기술에 대체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눈물이 났던 것은 어려서부터 경험했던 그 행복한 기억들을 비전프로에서 다시 온전히 재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왔다. 언제까지나 든든하고 건강한 부모 밑에서, 걱정 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은 성인이 돼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가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이 불과 15년도 안되어 세상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소셜미디어나 테크기업의 목표는 ‘우리가 만든 세상에 사용자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시간을 보내게 할지’ 고민하는 데에 있다. 당신의 스크린타임을 살펴보라. 꽤나 많은 시간을 유튜브, 인스타그램, 게임 등에 소모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싸이월드부터 시작한 SNS를 20년 만에 처음 끊기로 시도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다시 나 중심적인 시간으로 채우자는 다짐을 했다. 이미 동생과 동생여자친구는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기술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삶에서 탈피하자며 꽤 오랫동안 함께 다짐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12> 생존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