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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14> 관계의 목적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나요?

by 모블랙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비가 많이 오는 탓에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했다. 여행이 2주가 넘어가니 체력적으로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거기에 나와 아내, 동생과 여자친구 모두 일을 해야 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니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루미큐브를 다운로드하여 세 판 중 합계 등수가 가장 낮은 사람이 커피를 사 오기로 했다. 지고 말았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며 끝까지 주장을 펼쳐 보았으나, 승부는 냉정했다.


아내가 같이 가자며 길을 나섰다. 동생커플이 일러준 벌링게임 역 앞에 Backhaus라는 카페의 아몬드 크루아상이 맛있다고 해서, 목적지를 그리로 찍었다. 걸어서도 금방 가는 거리였다. 차를 몰고 나간 것은 단순히 비를 피하고, 커피와 빵을 싣고 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차를 댈 자리가 없었다. 아침 10시 밖에 안 됐는데 길가의 주차구역은 빈틈없이 차로 빽뺵하게 메워져 있었다. 빙빙 돌다가 조금 먼 곳에 가까스로 주차를 했다. 마침 그곳이 다른 카페 앞이어서 여기서 사면 딱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글맵으로 재빨리 스캔해 보니, 평이 원래 가려던 곳과 거의 비슷비슷했다. 여기도 좋은 카페였다.

그런데 아내가 아까 본 카페로 가자고 했다. 원래 목적지인 Backhaus는 사람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내는 ’ 미국에서도 아침부터 줄 서서 먹네?‘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내 표정에 아내는 “짜증 내지 않을 거면 거기 가. 아니면 여기서 사도 나는 진짜 괜찮아”라며 내 선택을 기다렸다. 나는 마음씨 넓은 남편으로 변신해 “그래 네가 먹고 싶다는데 거기 가자, 좀 기다리면 되지 뭐“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짜증이 몰려왔다. 일단 차를 가지고 나와서 비를 맞을 줄 몰라 대충 걸치고 나와서 비를 맞으니 추웠다. 표정이 굳어졌다. 카페까지 걸어가니 줄이 그새 더 길어졌다. 아무리 못해도 삼십 분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를 피하는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짜증 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도대체 이렇게 비 오고 기다리는데 여길 왜 오자고 해서..”라며 맘씨 넓은 남편은 어딘가 사라진 채 중얼거렸다.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왔으니 여기서 사고 가는 거라는 입장을 굳혔다. 나는 기다리는 내내 입술을 삐죽거렸다.


실제 커피까지 다 받은 시간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카 빵과 커피를 사 오면 동생이 거기에 시간을 맞추어 짜장라면을 함께 끓이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린 탓에 라면은 거의 떡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고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추운 데서 비를 맞으며 기다린 탓에 몸이 약간 으슬으슬했다. 동생은 식사를 마치고 조용한 데서 강의 준비를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몸이 풀리니 졸음이 몰려와, 해야 할 일은 미뤄둔 채 낮잠을 잤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네시가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오늘은 저녁에 동생이 버클리에서 일할 당시에 친해진 대만인 커플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그들은 동생의 미국생활에서 사귀게 된 첫 번째 친구였다. 동생이 여자친구를 처음 사귀기로 한 날, 동생은 그녀를 그들에게 소개해줬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여서 내셔널파크도 넷이 함께 다닌 각별한 사이였다. 동생의 귀국길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또 모교의 교수가 되었음을 축하하는 김에 겸사겸사 우리 부부까지 여섯 이서 저녁약속을 잡았다.


가는 길에 동생이 첫 미국생활을 시작하고, 동생 여자친구가 로스쿨을 졸업한 버클리에 방문했다. 아내의 세 번째 캠퍼스 투어였다. 일요일에도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조용히 학업에 몰두해 있었다. 어려서 <러브스토리 in 하버드>라는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 자유로운 캠퍼스 분위기에 한 때 나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버클리 스토어에서는 동생이 아내의 버클리 스웻셔츠(맨투맨)를 사주었고, 동생 여자친구가 나에게 버클리 후리스를 사주었다. 이제는 그들도 더 이상 버클리 소속이 아니지만, 여전히 학교를 아끼는 마음을 담은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캠퍼스투어를 마치고는 식사장소로 향했다. Hongkong Seafood Restaurant라는 아주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식당이었다. 해변가에 위치해 알카트라즈가 보이는 이 레스토랑은 전형적인 ‘좋은 중국식당’처럼 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은 온통 중국인 가족들로 들어차 있었다. 모두가 좋은 날인 듯 표정이 밝아보였다.


우리는 10분 정도 일찍 왔고, 대만친구들은 10분쯤 늦게 왔다. 기다리는 동안 그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미리 들었는데, 다른 건 다 꼼꼼하고 실력도 좋고 재밌고 단점이 없는 친구들인데 시간을 가끔 잘 늦는다고 동생이 말했다. 심할 때는 한 시간씩도 늦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없어진 코리안타임처럼 대만인들에게도 아직 그런 문화가 남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보고 있었는데, 동생은 아마 그들이 알아서 시킬 거라고 했다. 대신 이건 꼭 먹어보고 싶다는 메뉴만 하나 정해서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굴튀김을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맛없는 픽이었다. 다른 메뉴들은 매우 매우 훌륭했다.


그날따라 낮잠도 자고 기분이 좋았던 탓인지 말문이 트였다. 대만 친구들은 Kevin&지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커플이었다. 남자는 샌프란에서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로, 여자는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뉴욕에서 Moody’s에 근무했다. 전형적인 아시안 엘리트였다. Kevin은 원래 이름이 tsung이라는 중국 이름인데, 미국인들이 하도 이름을 제 멋대로 불러서 T-Pain마냥 T-sung이라고 불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그냥 미국 이름인 Kevin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윤은 이름만 한국적인 것이 아니고, 연세어학당에서 1년간 지내며 한국에 살았던 친구였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즐거운 저녁시간을 마치고 나서 지윤이 버클리 시내에 엄청 유명한 Boba Tea 프랜차이즈가 이틀 전에 오픈했다며 거기를 가보자고 했다. 오늘까지 Buy one, Get one free(원쁠원행사)를 하니까 줄이 좀 길지만, 어쨌든 이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아니, 오랜만에 만나서 어디 분위기 좋은 바 같은 데 가서 그냥 재밌게 이야기를 더 나누는 게 좋지 않나? 차 한잔 사러 시내까지 다시 운전해 나가서 고작 1+1 행사 때문에 저녁시간을 낭비해야 되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가보니 줄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줄을 서기 시작하며 지윤에게 ”이거 최소한 한 시간 이상 걸린다“며 말했다. 그녀는 ”삼십 분이면 될껄?“이라며 받아쳤다. 그렇게 여섯 이서 보바티 1+1 행사를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심지어는 이미 망고는 다 떨어져서 아무거나 대충 하나 사서 서로 바이바이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넷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데 솔직히 나는 그 찻집에서 두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결정 하는 게 이해가 도저히 안 된다. 뻔히 오래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리고 마지막 작별인사인데 시간 아깝게 거기서 도대체 뭐 한 건지 모르겠다. 예상보다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저녁에 가기로 한 맥주집도 못 가지 않았냐 “며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동생커플 그리고 심지어 아내까지도 전혀 오늘 저녁의 상황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동생은 ”나도 원래 절대 그런 거 안 기다린다. 내가 여자친구와 다니면서 이만큼 줄 서서 기다린 건, LA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기다릴 때 말곤 없었다 “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줄을 서서 티 1+1 행사를 참여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어디서든 그냥 대화를 서로 나눌 수 있으면 됐고, 대만 친구들이 먹고 싶다기에 그냥 같이 기다려준 것이다. 어쨌든 즐겁게 얘기를 나눴으니 된 것 아닌가? “며 생각을 밝혔다.


나는 뭔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 특성상 나는 사람들과 점심, 저녁 약속이 굉장히 많다. 심지어는 단체 행사도 많아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짜고, 좋은 식당을 성공적으로 예약하고 하는 것들도 내 업무실력의 일부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하는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보다 ‘얼마나 효율적인 스케줄과 동선을 소화하며, 괜찮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인가 ‘가 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대중을 상대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을 한다면서 어느 순간 나한테 ’ 대화‘그 자체는 뒷전이 돼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예민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자, 아내는 ”네가 오늘 점심에도 한 시간씩 기다리고, 저녁에 또 두 시간을 서서 기다려서 그래 “라며 착한 위로를 건네었다.


이번 여행은 두고두고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거의 10년 만에 동생과 이렇게 장기간 밀도 있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거기에 새로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친구, 또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많이 대화를 못했던 아내와 깊은 얘기를 나눈 것도 아주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리던 내 삶을 잠깐 멈춰 세우고,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찬찬히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게 처음 경험하는 미국땅에서였기에 나도 마음을 열고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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