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화면은 백운 김영민 화백의 작품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딸들 이름을 기가 막히게 지으셨다.
첫째는 바다 둘째는 모래 셋째는 소라. 맏며느리가 딸만 내리 낳는 바람에 시어른들께 눈총 꽤나 받았다는 이야길 엄마한테 들었던 적이 있는데, 정작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런 문제로 서운케 한 적 없었다고.
우리들 키우시면서도 여성차별적 언사는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여자라고 못할 게 없다.
주눅 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표현 방법이 좀 서툴고 거칠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피아노 콩쿠르에 입을 드레스를 입고 선보였더니 여자라고 치마를 꼭 입어야 하냐며 양복을 입히라고 하여 엄마와 옥신각신하셨고, 나는 내가 입은 모습이 별론가 보다 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벌레를 보고 꺅꺅거리다 혼난 적도 많다. '아니, 내가 일부러 놀라는 척 약해 보이는 척하는 게 아닌데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억울했었다.
이십 대가 되니 추궁하듯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물으셨고, 내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그 모습에 미치는 놈이 나타나는 거라고(아버지 표현대로), 억지로 꾸미고 다니면서 남자랑 연애나 하고 그럴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남녀평등 의식은 완벽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게 더욱 씩씩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니 더 주눅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나는 서른셋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인데도 '빨리 결혼해야지.' 하는 식의 잔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그런 양육 태도도 힘들었지만 한없이 딸들을 집안에만 묶어두려 하시는 엄마한테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교회 수련회 한 번을 안 보내주셨으니......
이러한 양육 방식에서 나타난 부작용이 나한테 있었던 것 같다. 남자들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적 기질이 다분했었으니까 말이다.
다시 이름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면 우리 아버지는 딸들을 줄줄이 세상에 내놓으려 작정하신 것처럼 언니 이름을 지을 때 이미 그 밑에 모래가 자라고 그 밑에 소라가 자란다는 서사를 만드셨고, 아버지의 스토리대로 우리는 바다 밑에 모래, 모래 밑에 소라로 세 자매가 되었다.
70년대 초에는 그런 이름이 개성 있는 한글이름이 아니라 이상하고 튀는 이름일 뿐이었다.
바다, 소라 같은 이름은 요즘은 특별할 것도 없는 무난한 한글이름이 되었으니 우리 아버지는 확실히 감각이 앞선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직도 모래는 특이한 이름 축에 속하는 듯.)
엄마는 아빠가 지은 이름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놀림당할 이름이고 커서 사회생활할 때도 무시당할 이름이라고 생각하셨고, 결국 엄마 고집이 이겨 언니는 학교 입학 전 **으로 개명을 했다.
나는 **로 개명을 했고. 하지만 동생은 나와 3년 터울인데도 벌써 많이 인식이 바뀌어 그냥 소라로 두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68년 생 언니의 '바다'라는 이름은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힘들었던지 집에서도 더 이상 바다라는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언니의 이름은 **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나는 집안의 모든 가족들이 모래라고 불렀다. 학교에 가면 선아지만 집에서는 모래였고,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름이 두 개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가족들은 나를 모래라고 부른다.
짓궂었던 우리 이모부가 '금모래 금모래 ' 하면 너무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왜 사람 이름을 발에 밟히는 흙으로 지어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나 원망도 했다.
동생은 소라라고 그나마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나만 왜 이런 이름을 지어줬냐고 따지기도 했다.
나는 내 이름 모래를 어디 가서 잘 이야기도 안 했다.
간혹 아버지의 전시회나 무슨 행사 때 우리 가족과 내 친구들이 만나면 내가 '모래 언니, 모래야, 모래 누나' 뭐 이런 식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고, 내가 내 이름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면 신기해하고 멋지다고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 모래라고 계속 쓰지 그랬냐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듣지 싫지 않고 어쩐지 으쓱해지기도 했다.
한글이름이 점점 더 많이 쓰이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보다는 나만의 어떤 것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세대가 되다 보니 내 이름도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았고, 그다지 튀는 이름도 아니게 된 지금은 모래라는 이름을 사용하면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름의 의미를 새기다 보니 삶이 이름대로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닥에 깔려 끝없이 밟히기도 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하고 소라를 품어 키우기도 하는 모래, 예쁘게 베풀라는 뜻의 선아라는 이름대로 그렇게 살아야 했던 운명이었던 것인가?
그런 삶이 싫지는 않다.
내 이름들도 모두 소중하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한 게 더 있다.
두려움이 없어지면 좋겠다.
혼자서도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벌레도 만나도 소리 지르지 않고 퇴치할 용기가 필요하다.
남편이 떠나기 전과 지금의 세상은 내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1막이 끝나고 우당탕탕 무대 장치를 다 바꿔 2 막을 시작한 연극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얼떨떨할 새가 없다. 극이 시작 되었으니 나는 연기를 잘 해내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더 심한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울지 않고 늠름하게 서서 상황을 지휘하는 지휘관처럼 그렇게 서고 싶다.
그러면서도 늘 기쁨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환하게 웃는 미소를 장착하고,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 상태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존경하는 생물, 나무 중에서 두려움도 없고, 강한 존재하면 소나무가 생각나곤 하는데,
소나무처럼 강하고 변함없는 모습에다 늘 기쁨을 잃지 않는 웃음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송희(松喜) 어떨까? 너무 좋다. 이름을 한 번 더 바꿔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