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독서 지도를 하다 보면 학부모님들께서 토로하시는 고민거리는 “ 우리 아이는 소설만 읽으려 해요. 비문학은 도통 관심이 없네요.”, “ 문학을 전혀 안 봐요. 과학책만 좋아하고요...”, “이번 주 수업 할 책만 간신히 읽어요. 그것도 제대로 읽는 건지 모르겠고요.”, “ 만화책만 읽어요. 마법 천자문, WHY, WHO 같은 책들만 좋아하네요.”, “판타지 소설만 좋아하는데 괜찮을까요? ” 라는 고민을 토로하신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괜찮습니다.” 너무 뻔한 대답이라 실망하실 수도 있겠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깊이 읽기를 바란다. 물론 그러면 제일 좋겠지만 너무 완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가.
편독이 안 좋다는 통념이 있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편독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관심사가 한 군데 멈춰 있지 않고 다른 분야로 옮겨가거나 확장되는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클래식만 듣던 아이가 어느 날 이문세 노래를 듣고 가요에 눈을 뜨게 되고, 맥심커피만 마시던 사람이 과일향이 나는 커피를 마시고 커피 맛에 눈을 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모두 내 얘기다.) 여러분들도 새로운 것을 접하고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실컷 읽게 해도 괜찮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변화되는 아이들을 수 없이 봐왔다. 좋아하는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사고력을 키웠다면 새로운 책을 만나고 흥미를 느낄 가능성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없었던 친구들보다 훨씬 높다. 또한 지적 호기심이 더 커질 가능성도 보다 높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읽었던 친구들이 폭발적 성장을 이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민희(가명)가 생각난다. 민희는 초등학교 시절 판타지 소설만 좋아하는 친구였고,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자기가 만든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판타지 만화를 그리고 쓰는 게 그 민희의 취미였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날 때마다 거의 연습장 10장 이상 씩을 써서 보여주곤 했다. 그럼 나는 민희가 글쓰기를 하는 동안 열심히 읽어줬다. 때론 개연성이 떨어져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환호를 해주었고, 민희는 늘 자신감에 충만해져 돌아가곤 했었다. 수업할 책은 늘 ‘읽긴 읽었는데요..’하는 수준으로 읽어왔다. 그저 의무감에 읽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민희는 흥미로운 분야의 책을 즐겁게 읽었고, 부모님도 선생님도 자유롭게 허용했으므로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키워나갈 수 있었고, 지금은 치과의사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다. 물론 중학교 3학년 때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책도 깊이 읽고 독서토론을 할 만큼 독서수준도 올라갔었다.
WHY 책은 대부분 아이들이 흥미롭게 본다. 하지만 집착적으로 과학분야의 WHY 책만 보던 석찬(가명)이는 어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셔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나도 때때로 석찬이를 보며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데 저렇게 두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였다. 서간이의 WHY 사랑은 대단했었다. 그러다보니 잡다한 지식은 많아서 “선생님, 그거 알아요? 이거 알아요?” 하며 온갖 잡지식을 자랑했었는데, 어떤 건 정말 나도 모르는 것이어서 “와. 대단하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하며 칭찬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석찬이가 모르는 어려운 지식을 마구마구 읊어 주는 식으로 WHY책만 읽어서는 안된다는 걸 넌지시 알렸다. 석찬이는 서서히 선생님과 토론을 하기 위해서라도 줄글로 된 책을 읽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선생님이 존중해 주고 칭찬해 주자 선생님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과학 토론 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운 책을 읽고 감상문이나 서평을 써야 할 경우에도 잘 해 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열심히 읽는 아이들은 또다른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그것도 몰입할 수 있다. 석찬이의 경우 문학은 어떻게 읽히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학을 즐기는 아이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잘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읽고 토론하기 시작하면 글은 걱정 안해도 실력이 늘 수 밖에 없다. 토론이라하니 학원을 꼭 보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실 수 있겠다. 집에서도 조금만 시간을 낸다면 가능하다. 아이와 함께 같은 책을 읽었다면 서로 대화할 거리가 생긴다. 그와 마찬가지로 같은 신문기사를 보았다면 의견을 나눠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토론의 시작이다.
문학만 보던 윤주(가명)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시간 나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 물으면 백이면 백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책읽고 싶다는 아이였다. 윤주가 고르는 책은 다 동화책이다. 이야기책만 주구장창 읽어대고 공부는 안한다며 어머님은 하소연 하듯 털어놓으셨다. 수학 문제를 풀라고 내주면 설렁설렁 문제도 제대로 안 읽어보고 푼다고.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하는 건지,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셨다. 윤주의 경우는 우선 어머님께서 학습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으셨기에 윤주가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튕겨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어머님께 제발 윤주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편안히 쉬면서 책 읽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윤주는 잘 이겨냈다. 보통 학습 목표를 높게 잡고 아이를 다그치는 부모라면 아이들이 책 역시 물제 풀 듯이 하기 때문에 책을 잘 읽고 좋아하게 되기 힘들다. 책을 열심히 읽어왔던 윤주는 어휘력도 뛰어났고, 글쓰기는 시작하면 한 호흡에 주욱 써내려가는 유창성까지 보였다. 그러다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학과 공부에서도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책을 많이 본 윤주는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공부에 대해서는 성과가 확실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초등학생 때보다 중학생이 되어서 더 높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다만 호불호가 확실하다보니 비문학 책을 읽을 때 힘들어 한다. 잘 해야하기에 열심히 하긴 한다.
또 문학을 좋아하던 아이 중에 지희(가명)가 생각난다. 지희의 어머님께서는 지희가 책을 정말 많이 읽는다면서 단계를 좀 높여서 수업을 할 수 있는지 물어 오셨다. 그런데 막상 지희를 만나고 보니 문해력이 높지 않았다. 지희 역시 도서관에 가면 무아지경의 상태로 종일 책을 읽는다는 것인데 이상했다. 정말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다면 어떻게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까? 빈칸 추론이 이렇게까지 안된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지희의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부모님의 불화가 그것이었는데, 책을 제대로 읽었다기 보다는 숨어 있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을 잘 하지 못했고, 어휘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니 단계에 맞는 책을 줘도 토론하기는 쉽지 않았다. 팀에서 함께 수업하기 어려웠으므로 결국 1:1 수업을 하게 되었고, 지희와 눈을 맞추고 일상적인 대화를 해 나가며 친해지기를 시도했다. 서서히 지희가 마음의 문을 열었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느린 발전이나 점차 실력이 늘어감을 볼 수 있었다. 1년 반 정도 밖에 수업을 못했었기에 그 후 얼마나 성장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너무 자극적인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웹툰이나 웹소설도 종이책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내용이 많을 수 있다. 줄글로 된 책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보시길 바란다. 나의 경우에도 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두 아들이 어릴 때는 반 강제로 읽혔다. 초등 저학년때까지는 하교 후 무조건 책부터 읽고 한 줄 느낌을 남기도록 시켰다. 대신 다른 학습적인 부분은 자유를 많이 줬기 때문에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았고 어느새 두 아들은 잘 자라 잘 읽는 어른으로 성장 중이다. 다만 바쁘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책을 더 많이 읽어주지 못한 것은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어떤 분야든 괜찮다는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되는가? 그렇다면 양육자로서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것인가?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러니 먼저는 믿음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아이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두 번 째는 욕심내지 않기다. 책을 읽으라고 하고 숙제하듯이 체크하고 안했으면 벌 주는 식의 책읽기는 질리게 하기에 딱 좋다. 책을 읽고 함께 짧게라도 감상을 공유하거나 감상을 들어주는 정도면 족하다. 부모님들이 잘 하셔야 할 것은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다. 나는 칭찬과 격려가 양육의 70~80%는 차지한다고 본다. 나머지는 다양한 자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 주신다든가, 새로운 책을 볼 수 있는 곳에 함께 가신다거나,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긴 것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 좋다. 물론 부모의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한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발전을 위해 돕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