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에 검은 롱패딩을 이불처럼 감싸고 교습소와 집만 오고 가다가
둘째 녀석 고등학교 졸업식이라 갑자기 뭘 입어야 할지 난감했다.
몇 년 전 아웃렛에서 매대에 펼쳐놓고 파는 코트를 하나 샀던 게 있었는데
그때도 그 코트는 희한하게 팔 기장도 딱 나한테 맞고 품은 좁지 않고 넓었고,
무엇보다 브랜드 제품이었는데도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어서
거의 득템 했다며 샀던 것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땐 역시 그 코트가 제일 괜찮은 것 같아 입게 된다.
오늘은 그렇게 한껏 신경 써서 블라우스도 입고 코트도 걸치고 구두까지 신었다.
둘째 녀석은
내가 꼭 자연분만하겠다고 고집하며 노력해 자연분만으로 나은 아들이다.
그 아이 가졌을 때 내가 엄청 심한 우울증세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 기질을 그대로 받았다.
작은 일에 민감하고, 대가 약하다.
그래서인지 아빠를 잃고 이 아이가 2년 가까이 우울증세와 해리 증상으로 고생을 했다.
꾸역꾸역 시간은 갔고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되는 중이다.
학교에서 보니 역시 우리 아들이 내가 보기엔 제일 잘생겼다.
마음이 흐뭇하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 아들.
이제
철만 들면 된다 허허허.
울지 않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하고 갔다.
졸업식장이고, 남편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또 실수하고 주책을 떨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감기는 잔뜩 걸려서 콧물에 기침에 수시로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하는 판인데
울기까지 하면 진짜 이건 사고다.
그런데 감정이 올라올 만하면 누군가 웃겨주더라.
졸업생들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져서
졸업장 받는 아이들이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엄마 아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치질 않나
셀카를 찍는 흉내를 내며 나와서는 멋진 포즈를 취하고 전체 친구들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선생님께 휴대전화를 내미는 아이도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 사복을 입은 아이
어떤 친구는 양복을 맞춰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나와 선을 보인다.
너무 귀엽다 아이들.
게다가 졸업 축하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데
선창 하는 아이들이 박자를 틀리고, 음정도 왔다 갔다
웃겨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휴~ 다행.
우리 둘째는.....
목사 아빠에 바쁜 엄마에 공부 잘하는 형을 두는 바람에
같이 놀 사람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시절 친구들과 놀았던 것을 제일 좋은 시절로 기억한다.
집에서는 늘 조금씩 소외된 채 지냈던 것 같다.
이 아들은
어리광을 부리느라 형에게도 깐족거리고 치대고
엄마에게도 아이처럼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지만
마음이 여리고 순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다 표현도 못하고 자라온 것 같다.
그 모든 걸 그나마도 많이 받아준 건 아빠였다.
아직 아이로만 있고 싶어 하는 막내가
어리광 부릴 데가 없는 상황이 되어
우리 중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오늘도 어딘지 우울해 보여 마음이 쓰인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내 일터를 지켜야 하니
형에게 오늘 특별한 날이니 좀 잘 챙겨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랑한다 아들아.
형이랑 엄마랑 우리 셋이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