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말>이라는 책의 한 대목이다.
고통은 평소에 귀중하게 보였던 것들이 실은 부질없는
것이며, 부질없이 느꼈던 것들이 실은 무엇보다도 존귀한
것이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일상적인 것과는 다른 생의
내용을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슬픈 하나의
송화기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최근에 불경을 많이 읽는데 불교에서 4고四苦라고
합니다. 거기서 고 苦는 산스크리트어로, 고통이란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생로병사 生老病死가 거기 있죠. 그래서 인간의 의지로 자기
몸을 멋대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병 걸리고
안 걸리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늙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로 받아들이면 뭐가 없겠어요? 고가 없죠.
그런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고가 생기는 거예요.
고통이란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는 한 문장이
몸으로 이해가 된다.
어떻게든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볼 길이 보일 때는 고가 없다.
오히려 의욕이 불타오르며 전투력이 상승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는
두려움이 몰려와 쉬운 것도 더 어려워진다. 이 때는 고가 있다.
이어령교수님의 해법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걸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고가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 앞에 나는 또 두려움에 휩싸인다.
새 해를 맞이하고, 해가 지났으니 한 살 더 막으라해서 나이도 한 살 더 먹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이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받아들이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순리다.
그렇게.
그래야 고가 없어지고
내가 산다.
내가 살아야 내가 지키고 싶은 이들을 지킬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은
'아~~~ 그렇게 되었구나.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받아들이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