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수업 시간이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이 화려한 아파트 단지 옆, 개발이 덜 된 달동네에 살고 있었고, 자신이 그 동네에 산다는 것을 반친구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아이는 일부러 멀리 돌아서 등하교를 하며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
수업 시간에 들어온 한 친구가 들어오면서부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도대체 왜 걔는 그렇게 그걸 숨기려 하는 거예요? 이해가 안돼요."
나는 물었다.
“왜 숨겼을까?”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 말하면 되지 않아요?”
나는 다시 물었다.
“숨기고 싶을 때 어떤 기분일까?”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있나요?”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슬슬 올라왔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어떤 책을 읽어도 계속 그런 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먼저 번에는 <마지막 레벨 업>이라는 책을 수업했었는데, 그때 비운의 주인공 원지의 아버지는 자율주행차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딸 원지마저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원지는 극적으로 뇌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는 자신이 만든 계임 세계 안에 딸을 살게 만든다. 결국 왜곡된 아버지의 사랑으로 원지는 힘들어하다가 그 세계를 파괴하고 떠나게 되는데, 그 수업 때도
"이 사람 왜 이래요? 그냥 보내주면 되지 않아요?"
이랬다.
그때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아버지는 왜 딸을 보내지 못했을까?”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몰라요. 죽은 거 아니에요? 죽었는데 보내야죠.”
무심히 던지는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답답해졌었다.
예전에 수업했던 한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은 그 아이가 고3이 되었을 텐데, 당시에 5명의 친구들이 모여 수업을 했었다. 그때는 친구들의 집을 한 집씩 돌아가며 모여 수업을 했고, 모일 때마다 어머님들이 간식을 이것저것 준비해 주셨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간식을 보면 혼자 다 먹어 버리는 행동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으니까 뭘 몰라서 그런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더구나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외동으로 귀하게 자라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공감능력 제로였었다. 책을 읽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는 걸 못 봤다. 설상가상으로 그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의사가 꿈인 친구였다.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런 친구가 의사가 되면 나는 그 병원엔 못 가겠다. 무서워서.....
기시감이 드는 요즘.
과연 저렇게 공감을 못하는 아이들이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엘 가고 유망 직업을 갖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아이들에게 공감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은
“숨길 필요 없다.” “죽었으면 보내야 한다.”
모든 것을 단순하게 A는 B다,라는 식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놀라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질문하지도 않는다.
최대한 나는 그와 비슷한 어떤 상황이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황을 설정해서 예를 들어보고 그렇다면 어떻겠냐고 다시 묻는다. 하지만 여전히 아니란다. 넘어가는 수밖에.
공감능력은 비단 문학에서 뿐만이 아니다. 비문학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아!' 하고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감이다. 그래야 질문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공감이 안되니 질문도 없다. 아무런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 때문일까?
스레드에 이런 고민을 올렸더니 어떤 분들은 공감도 훈련으로 어느 정도는 키울 수 있다고 하시더라.
<아몬드>의 윤재 엄마처럼 그렇게 감정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암기하도록 교육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 여전히 맑고 천진한 아이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니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다음번엔 꼭 공감하도록 더 좋은 책으로 더 좋은 발문을 던져 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