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 1
직접 번역한 알란 플러서의 스타일 앤 더 맨 한국어 판이 출간됐다. 클래식 남성복 애호가라면 그의 이름이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짐작건대 입문서로 널리 알려진 그의 책을 더 이상 자주 접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350077
'멋진 옷'이기에 앞서 '격식에 맞는 옷'을 표방하며 호응을 얻기 시작한 클래식 남성복의 부활에 있어서 그 규율을 확립한 알란 플러서의 기여는 핵심적인 것이었다. 그의 저서들이 아니었다면 #멘즈웨어라는 움직임 역시 그처럼 신속한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소견이다(가끔 플러서와 함께 거론되는 Bernhard Roetzel의 저서들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남성복의 아름다움을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데 있어서 다소 아쉬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책이 스타일 앤 더 맨과 드레싱 더 맨에 비해 드물게만 언급되는 이유다.)
클래식 남성복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수많은 양복점들과 편집샵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의 책이 단 한 권도 번역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해하던 기억이 있다(유키오 아카미네를 비롯한 일본 업계 인사들에 의해 알란 플러서의 저서들, 특히 드레싱 더 맨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일본어로도 역시 번역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결국 남성 복식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그의 책들 중 한 권을 직접 번역하게 됐고 애호가들에게 스타일 앤 더 맨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1945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알란 플러서는 분명 시대의 수혜자다. 그에겐 남성복식사의 황금기, 1930-50년대가 멀지 않다. 몇몇 인플루언서/편집 스토어/사르토리아 등을 통해 정보를 구하며 소수 문화에 머물러 있던 클래식 복식을 답습해야 했던 오늘의 애호가들과 그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복식 문화를 습득한 것이다(그의 아버지 역시 브룩스 브라더스 셔츠를 즐겨 입던 유명한 댄디였다). 거의 모든 남성들이 몸에 잘 맞는 맞춤 수트를 입고 생활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양새의 맞춤 수트가 거리를 빼곡히 채우던, 올바른 수트차림과 재킷 차림이 성인 남성의 기본예절이었던 당시의 복식 문화와 오늘날 그것 사이의 간극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10대 시절부터 맞춤 수트만을 고집할 정도로 옷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그는 일찌감치 남성복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86년에 문을 연 알란 플러서 커스텀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Making the Man, Clothes and the Man, Style and the Man, Dressing the Man은 스타일 작가로서도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자신감 있게 남성복의 규율을 '감히' 선언하는 그의 저서에는 늘 일관된 전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남성 복식의 양식이 1930년대에 모두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 타당함은 "요새 누가 수트를 입는가"라고 클래식 남성복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일 년 내내 재킷 한 번 걸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만, '캐주얼 착장 바이블'을 설득력 있게 집필해 낼 인물은 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넥타이를 풀어버리자라고 외칠 수는 있어도 넥타이를 대체할 제품을 탄생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것과 같이 클래식 수트는 복식의 세계 내에서 역사가 증명하는 권위를 독점하는 존재다.
번역 작업에 앞서서 스타일 앤 더 맨을 몇 차례에 걸쳐 속독했다. 애호가 모두가 소장하고서 오랜 시간에 걸쳐 틈틈이 꺼내볼 가치가 있는 안내서임을 확신하고서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의 애호가들에게 알란 플러서의 베스트셀러 드레싱 더 맨(Dressing the Man)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올드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진과 에스콰이어/어패럴 아츠의 일러스트를 십분 동원한 드레싱 더 맨은 분명 매력적인 복식의 바이블이다. 반면 그보다 조금 일찍 출판된 플러서의 세 번째 책, 스타일 앤 더 맨은 재킷 주머니에도 들어갈만한 작은 사이즈, 클래식 복식 내 존재하는 모든 범주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광범위한 내용, 논리적으로 복식의 규율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또 다른 매력을 갖춘 입문서다.
비교하자면 드레싱 더 맨이 자료사진을 통해 조금 더 직관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다면, 스타일 앤 더 맨은 텍스트와 심플한 일러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클래식 복식의 규율을 차분하게 타이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구두, 넥타이, 디너웨어, 옷장 관리 등에 관한 내용 역시 흥미롭다.
오직 스타일 앤 더 맨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알란 플러서의 맞춤 수트에 관한 설명 역시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일부만 발췌해 보았다.
오늘날 “맞춤-제작”이라는 단어가 클래식 남성복에 사용될 때, 그 사용은 … 너무나 범용적이다. 현재 이 용어는 기성복이 아닌 모든 종류의 옷을 가리키기에 이르렀으마 남성의 수트가 진정 맞춤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20세기 초기 이후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수트가 이러한 기호(맞춤)를 정당하게 앞세우기 위해선 네 가지 조건이 올바르게 충족돼야만 한다.
첫째, 각각의 구성요소가 착용자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종이 패턴으로부터 재단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손님의 사이즈 체촌을 맡았던 재단사는 손님이 가게를 떠나자마자 종이 패턴을 재단하였다. 이는 재단을 하는 순간 착용자의 독특한 행동 거지, 자세, 제스처와 같이 옷의 성격을 결정하게 될 요소들이 재단사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남아있음을 뜻했다. 둘째, 맞춤 제작 수트는 실크 실, 밤베르크 레이온 혹은 고급 실크 라이닝, 진품 뿔, 혹은 식물성 자재의 버튼과 같이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 수트를 탄생시키기 위한 모든 작업이 사이즈가 채촌된 장소에서 모두 완성돼야 한다. 이것은 제품의 신빙성과, 미적 일관성을 보장하고, 품질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바지의 직선 솔기 이외 모든 재봉 과정이 완벽하게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옷이 완성되는 전체 과정은 최소 두 번, 혹은 세 번의 가봉을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트를 제작하는 일의 장기적 이점은 고객만을 위해 탄생한 종이 패턴을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일단 완성되면 이와 같은 종이 패턴은 다음 수트가 더 훌륭하게 제작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수정을 거치게 된다. 그 무엇도 특정한 고객만을 위해 재단된 패턴보다 다음 수트의 올바른 핏과 아름다운 실루엣을 정확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보장해줄 수는 없다.
많은 남성들이 맞춤 제작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금전적 가치 때문이 아니다. 비스포크의 세계는 모든 것이 고객의 만족을 위해 움직인다. 그의 체형, 자세, 피부/머리/눈동자 색상, 그리고 그의 취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맞춤복을 구매하는 일은 최고 경영자가 그의 일상에서 이루어내고자 하는 시간 소비의 집중과 효율성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과 함께 테일러와 그의 고객 사이 발전하게
되는 관계 역시 둘의 협업이 생산해내는 결과물을 훨씬 넘어서는 즐거움을 제공하게 된다. 이 과정이 제공하는 극히 사적이고 세심한 응대는 남성으로 하여금 테일러와의 가봉 중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고, 기력을 되찾은 상태로 고된 일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그는 맞춤 수트가 동반하는 위험을 언급하는 일 역시 잊지 않는다.
맞춤 제작이 불가피하게 내포하는 단점 중 하나는 제작 과정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큰 변경이 불가능하게 되기 전까지 완성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맞춤 수트의 많은 구성 요소들은 장인의 취향과 미적 감각에 의해 결정되고 만다. 그가 시간이 증명하는 맞춤-제작 전통의 과정을 존중하는 장인이라면, 그 과정에 동반되는 훌륭한 재료와 숙련도는 일반적으로 그가 완성하세 될 제품의 훌륭한 품질을 보증해주기 마련이다.
최고 수준의 제작 실력과 최고의 고객 서비스도 형편없이 디자인된 피크 라펠, 아름답지 못하게 재단된 드레스 셔츠의 칼라, 우아하지 못하게 깎여진 구두 앞 심을 상쇄시키지 못한다. 맞춤 제작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남성들의 대부분은 숙련된 장인들이지만, 그들의 취향은 그들의 노동자 계급 출신 배경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수의 성공적인 가게들은 오늘날 창업자의 은퇴, 이직 등에
의해 공방에서 나와 사업을 물려받게 된 직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기술을 단련하기 위해 그가 쏟은 수년간의 시간은 그에게 손님과의 협업에 있어 필요한 취향과 스타일의 기반인 사회적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맞춤복 외 기성복 구매에 있어서도 그가 제시하는 수트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흥미로운 것이다.
자동 생산된 옷에는 품질의 기준이 되어줄 최고급 핸드-메이드 수트의 손바느질이 결여되어 있다. 최신 공정의 높은 효율성은 생산업자들로 하여금 실제 제품보다 더 높은 품질의 수트들의 표식들만을 제품에 접목시키도록 유혹하고, 이러한 전략은 품질의 순위를 매기는 일을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허벅지 덧댐과 무릎 주변 라이닝은 더 이상 최고급 수트의 바지에만 찾을 수 있는 디테일이 아니며, 겨드랑이 땀막이와 손바느질처럼 보이는 기계 바느질 역시 자켓에 최상의 품질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최고 품질의 기성 수트는 소규모 공장처럼 생긴 작업장에서 제작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훌륭한 맞춤 테일러의 수트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수트와 자켓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손으로 재단되고, 가슴, 라펠, 칼라, 암홀, 버튼홀, 라이닝, 포켓, 소매 모두가 손재봉 되었으며, 빠짐없이 손으로 다려진 제품임을 의미한다. 이 정도 품질의 수트라면 자켓의 라펠과 칼라의 구성(construction/padding)조차 모두 손바느질로 완성된다, 싱글-브레스티드 자켓의 라펠에는 2000, 혹은 그 이상의 땀의 바느질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손바느질 솔기는 수트로 하여금 그 어떤 날씨에서도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좀처럼 보기 힘든 최고급 기성 수트를 구매하기 위해선 고객은 적어도 3000불 이상을 지불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직접 적어 넣은 역자의 서를 끝으로 이 포스트를 마치도록 하겠다.
<역자의 서문>
옷은 언제나 언어를 입고 있다. 무심히 걸친 낡은 티셔츠와 운동화는 거리로 나선 그가 옷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남자임을 알리고, 옷에 대한 무관심을 스스로에게 허락했음을 고백하며, 우리 사회가 나태한 복장을 묵인하는 곳이라고 판단한 그의 신념을 피력한다.
“언어의 주된 역할은 우리의 지각 작용을 일정한 수준에서 멈추도록 하는 데 있다”<<롤랑 바르트. 패션 시스템>>
오늘날 ‘옷을 못 입는 남자’는 언어의 폭정에 시달리는 남성을 가리킨다. 옷 쇼핑에 임하는 그는 눈을 뜨지 못한 채 브랜드와 가격의 부호만을 더듬는다. ‘유행하는’, ‘비싼’, ‘싸구려’ 등의 불투명한 기호들이 그의 오감을 멈춰 세운다. 그러나 두 눈만을 활짝 뜨는 일 역시 능사는 아니다. 옷은 절대 발가벗은 채로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사유를 멈추는 시도는 도리어 한층 더 투박한 언어를 등장시키고 만다.
옷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더욱 세밀한 언어다. 이는 마치 세계 축구의 언어에 익숙해진 이후로 대한민국 남자들이 더 이상 축구 경기 결과를 ‘정신력’, ‘결의’, ‘애국심’과 같은 두루뭉술한 단어들로 설명하지 않게 된 현상과 같다. 인식적 전환은 사유 없이 축구를 축구 '자체'로 '즐기는' 일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2006년 작고한 일본의 스타일 작가 오치아이 마사카츠는 “남자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쩐지 좀...이라는 풍조[는]...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변명에 가깝다 “고 지적한 바 있다. 남성들의 옷에 대한 무지는 의복에 관한 대화를 점잖지 못한 것으로 전락시켰고, 이는 차라리 옷을 향한 무관심이 남자다운 것이라는 편견을 탄생시켰다. (오치아이 마사카츠 인용)
“그는 옷이나 태도에 무관심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F. 스콧 피츠제럴드)
입은 옷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오역될 걱정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무관심’은 더없이 날카로운 감각의 소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반면 서울의 거리를 수놓는 옷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우리가 복식에 있어서 그 어떤 문화적 유산도 전수받지 못했음을 고발한다.
전 세계 수많은 남성들을 알란 플러서의 책으로 이끌었던 클래식 남성복 유행도 어느새 지나간 과거 이야기라는 평이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한 번 습득한 논리를 쉽게 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월드컵에서의 요행수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다). 클래식 복식의 기본 학습을 거친 이들은 양산된 접착식 기성 수트에 비스포크 수트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모순을 용납하지 못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어느새 파리와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이 쏘아대는 메시지를 무턱대고 뒤집어쓰는 역할을 지양한 것이다. 이것이 플러서의 책이 오늘까지 남성 복식의 바이블로서 소개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클래식 복식의 규율을 확립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더 세련되고 우아한 남성이 되는 꿈을 공유한다. 플러서는 “나는 탈의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더 멋져 보일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스타일 앤 더 맨)고 회술 한다. 이는 뭇 남성들의 옷에 대한 ‘무관심’이 위선 또는 체념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스타일의 개선을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올바른 논리의 학습이다. 그는 “남성 개인의 스타일에 있어 비율과 디자인에 관한 모든 쟁점들은 논리적 설명을 요한다”(스타일 앤 더 맨)고 주장한다.
클래식 남성복 유행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러서의 책이 여태껏 번역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것이다. 그간 한국의 마니아들이 이루어낸 발전은 놀라운 것이다. 그들은 정보력은 이제 세계적이다. 어느새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확신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난 서울의 거리를 관조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입어야(사야) 하는가’를 알려줄 팸플릿이 아닌 ‘(적어도) 무엇을 입지/사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임을 확신한다. 더 비싼, 더 유용한 더 관능적인 옷의 소비를 부추기는 책이 아닌, 불투명한 기호의 비호 아래서 유통되고 있는 형편없는 품질의 옷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최고의 제품만을 고집하는 장인들을 향한 경외심을 고양시키는, 무엇보다 “적어도 이런 옷은 입지 말자”라는 진정 남자다운 긍지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줄 책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