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능의 욕망 Aug 10. 2020

60년대 새빌로

새빌로의 탄생 13

이번 포스트를 위해 Thomas Girtin의 저서, Makers of Distinction의 일부를 번역해 보았다. 


최고 품질의 수트, 셔츠, 모자, 구두를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영국 장인들을 향한 예찬으로 가득한 이 책은 60년대 런던 메이페어 하우스들의 실상을 실감나게 재연해주고 있다. 사진으로 가득한 쇼핑 가이드가 아닌 저자가 품고 있는 장인들을 향한 경의를 담백하게 담아낸 이와 같은 책에는 번역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1960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 Girtin은 진정한 장인정신이 소멸돼가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핸드 메이드' 신사용품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내던 진정한 장인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던 1960년, '사라질 공예'의 장인들에 대한 추모사로서 이 책을 집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Covid-19이 가져온 충격 속에서 저명한 새빌로의 하우스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오늘,  우리는 진정 최고 품질의 비스포크 수트를 더 이상 새빌로에서 만날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직면하게 됐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날, 진정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스포크 테일러링을 다루는 한 챕터를 통째로 올릴 계획이었지만, 분량상 두 차례에 걸쳐서 포스팅하기로 결정했다. )


오늘날의 헨리 풀



Makers of Distinction 


God Makes and the Tailor Shapes 


Part 1/2



 “훌륭한 테일러링은 정확한 체촌에 달려있는 거야 “


위대한 장인 에릭 길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테일러와 손님이 만나야 하지.” 


따라서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테일러링의 공예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기 마련이다. 장인을 추적하는 탐색의 시작을 위해 우리가 새빌로로 향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이유다. 



... 구두장인, 혹은 모자 장인의 가게에서는 손님을 만나보기 전에 제작된 기성품의 구두나 모자를 사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저명한 테일러링 하우스에서  이와 같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완성된 상태의 의복은 오로지 – 가봉을 앞둔 옷들을 제외한다면- 벽면의 유리 케이스에 담겨 있거나 제복용 검과 함께 걸려 있는, 하우스 내 최고령의 장인보다도 오래된, 19세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시대의 제복들 뿐이다. 


몇 가지 종류의 넥타이들이 전시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새 수트에 60기니 (약 60파운드)를 지불한 남성이 새 타이로 그것을 기념하고 싶어 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테일러링 하우스의 잡화점(haberdashery)으로의 확장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손님들을 위한 부가적인 서비스의 성격이 더 짙다. 이와 같은 하우스 내에서는 천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상업적인 행위는 그 무엇도 용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헨리 풀 1944


헨리 풀 하우스는 좋은 예시가 돼준다. 전통적 디자인, 견고한 건축 양식, 전적으로 영국적인 분위기. 그것은 최고의 장인을 위한 이상적인 환경을 의미한다. 새빌로 거리에서부터 유리 자동문(swinging door)을 지나면, 마호가니 나무 패널과 금 액자로 둘러싸인 헨리 풀의 긴 현관으로 이어진다. 현관의 분위기는 마치 본드가에서 열리던 초기 영국식 수채화 전시회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벽에 걸린 수많은 액자들에는 헨리 풀에 하사된 선임장들이 걸려있다. 헨리 풀 하우스가 기나긴 역사를 거치며 받아온 수많은 ‘위임장’(warrant)들이다.


헨리 풀은 이와 같은 신임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하우스다. 이곳의 내부장식은 하우스의 품격을 말해주는 동시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치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 내부의 구조는 조금 더 아늑한 Holkham Hall의 ante-room, 혹은 새빌로 근처의 저명한 런던 클럽의 구조를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엷은 핑크색 대리석 기둥이 이 거대한 하우스의 내부를 주거용 공간과 사무용 공간으로 나누고 있고, Coved 천장에는 Top light가 설치돼 있다. 런던 클럽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물건이 이곳에도 구비돼 있는 것이다. 커다란 마호가니 집무 책상, 편안한 가죽 안락의자... 한 직원이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가져온 맨틀피스 장식품 - 이 시계는 영웅적 전투에 임하는 기마병을 묘사하고 있다. 북유럽 민족의 전사들이 7개의 가지가 달린 나뭇가지 모양의 촛대를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 아래로는 장작이 타오르는 빅토리아식 벽난로가 있으며, 마호가니 스탠드 안에는 고급 잡지들과 상업신문들이 놓여 있다. 두꺼운 카펫, 장식용 가스등과 더불어 점화용 심지 역시 준비돼 있어, 손님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그들의 시가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청동 독수리를 가운데에 세워놓은 마호가니 책상도 있었다. - 이 역시 파리 전시회에서 온 것이었다. 수년 동안 이 새는 가게 장부용 스탠드로 쓰이고 있었다. 또한 클럽 안락의자-체중계(club arm-chair weighing machine)와 가죽 제본된 기록지까지 준비돼 있어, 손님의 몸무게의 증가와 감소가 기록되고 있었다. 벽에는 빅토리아식 시계 - 멋진 wind dial을 갖춘 시계였다-가 액자에 걸린 위임장들과 함께 걸려 있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마호가니 스탠드 위 필채로 쌓여 있는 원단들이 혼자만의 섬을 이루고 있었다. 이 소모사와 트위드 원단으로 쌓인 벽들과 대리석 기둥 너머로 우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테일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헨리 풀 1944

장인들이 비스포크 수트의 제작을 시작하기 전에 그 사전 준비는 이미 수트의 기본 품질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수트에 사용될 원단 중 다수는 테일러의 요청, 혹은 손님의 요청에 따라 특별히 제작된 것들이다. 몇몇 가문들은, 스코틀랜드의 가문들의 타르탄 문양처럼, 그들만의 트위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원단의 대부분은 West of England의 방직사들에서 생산된다. 테일러뿐만 아니라, 원단을 짜내는 이들 역시 장인정신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직공들이다. 어느 날 새빌로의 헌츠맨에서 오랜 세월 잊혀졌던 아름다운 낡은 옷감이 발견됐을 때, 우리는 그들의 자부심의 진가를 체험할 수 있었다. 


헌츠맨에서는 이 원단을 제작사에 보내고선 같은 패턴의 옷감을 추가로 주문했다. 옷감을 만드는 데 사용됐던 사항과 조제법은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지만, 방직사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거듭해서 새로운 장애물을 맞닥뜨려야 했다– 원단은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기계의 구조까지도 수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끝내 몇 달이나 걸린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원단을 재생산해낼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에게 그와 같은 원단을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그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회사가 50년 전 제작한 옷감을 눈앞에 두고선, 그곳의 장인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해낸 일을 그들이 해내지 못한다고 말하는 일을 거부했다.  


테일러를 위해 특별 제작됐건, 아니면 보편적인 방식으로 - 테일러들을 찾는 세계 각국의 손님들에게 알맞은 모든 무게와 종류의 소재를 취급하는 원단사로부터- 구입됐건, 원단은 약간의 숙성 기간을 가짐으로써 품질을 향상 시키게 된다. 싸구려 옷감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없는 반면, 멜턴 옷감과 같은 원단은 직조된 후 6개월 동안은 사용될 수조차 없다. 양모 섬유는 까끌까끌하기에, (양모와 실 포스트 참고) 마무리 과정에서 그것을 강하게 두드릴 때, 섬유들이 일어나게 되고, 일어난 섬유들이 다시 제자리에 안착하기 전까지는 옷감은 쉽게 길이 들지 않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옷감의 숙성 과정을 대체시켜 줄 인공적인 방법은 개발되지 못했기에, 원단은 헌츠맨과 같은 새빌로 하우스들의 습한 지하실에 보관된다. 원단은 그곳에서 숙성되며, 무게와 함께 향상된 품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습한 지하실이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이점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숙성’ 과정에 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적인 일화가 있다. 국제 전시회를 몇 달 앞두고 탁월한 품질의 원단으로 유명한 West of England 원단사에게 영국 장인의 명성을 위해 그들이 평소 제작하는 원단보다 더 훌륭한 품질의 원단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 있게, 그들이 제작하는 원단은 존재하는 최고의 품질의 옷감이며, 그보다 더 훌륭한 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뢰측은 그들을 닦달했고, 그들은 결국 그것을 시도해보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이라곤 사원 중 한 명이 옷감 한 필을 물레방아 밑 습한 지하실에 가져다 놓은 것뿐이었다. 전시회가 열렸을 때, 그 옷감은 해당 분야의 모든 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저명한 테일러 하우스에서 손님들의 선택을 위해 전시된 원단들은 이와 같은 최고의 원단들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손님들이 이러한 전시품에 감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몇몇은 원단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서 아예 무지하다. 새빌로의 전통 하우스 중 하나에서는 신입 판매 직원이 오랜 단골손님을 맞이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어서 오십시오 My Lord"

"블루 서지 수트가 필요해."

"물론입니다, My Lord. 저를 따라 이쪽으로 오시면 패턴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젠장, 블루 서지라면 블루 서지 아니겠나?"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돌아서서 가게를 떠나버렸다. 


또 한 명의 테일러 역시 옛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가게를 방문해서는 20필 정도의 각각 다른 종류의 원단들이 놓여 있는 테이블을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거닐며, 경멸 섞인 표정을 지은 채, 


“이런... 이걸 뭐라고 부르지? ... 이런 걸 입고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간... 그리고 이것... 이런 원단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야만적이야.... 추잡한 디자인이 따로 없군.... 이것 좀 봐... 좀 보라고.... 이럴 수가!”라며 중얼거린 후,  


테이블의 끝에 다다르자 돌아서서는 


‘원단 하나에 수트 한 벌씩 전부 주문하겠어’라고 외쳤다.  



헌츠맨에서 가봉을 보고 있는 그레고리 펙



이에 비해 오늘의 손님들은 더 예의 바르고, 더 만족시키기 쉬운 편이다. 그가 옷감을 선택하면, 재단사가 그의 사이즈를 체촌한다. 코트(상의)를 위해 20가지 사이즈가 필요하고, 바지를 위해 여섯 가지가 필요하다. 손님의 체형에 대한 수치스러운 세부사항은 비밀코드의 형태로 기록지에 추가된다. 이런 식으로 재단사는 손님 체형의 특이점에 관한 그의 무자비한 의견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남자를 좀 봐,”


목을 비틀면서 그는 말한다. 체촌 카드의 비밀 문자를 가리키며,


‘이건 이 남자의 자세가 마치 닭이 병의 목을 바라보듯이 옆으로 기울었다는 뜻이야’ 


존 몰간 & Company의 J King 씨는 업계에 입문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가봉을 보는 사람의 역할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피팅룸 안에서 모든 이는 평등해진다. 폭군처럼 굴던 손님도 바지를 벗고 서 있을 때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 어떤 인물도 그의 집사의 눈에 영웅으로 남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테일러와 손님 사이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의 사소한 결점과 소심한 자격지심이 그의 테일러에게는 모두 들통나게 되는 것이다. 


손님은, 물론, 언제나 옳다. 그러나 항상 예의를 다하되, 단호함이 요구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손님이 체촌 중 자꾸 움직인다면, 테일러는 강압적이지 않은 ‘공격’을 통해 그를 굴복시켜야만 한다. 킹 윌슨 씨는, [테일러들을 위한 충고 중에서] 그가 만약 말을 너무 많이 한다면,  ‘지금 당신은 그의 유머보다는 그의 옷을 가봉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정중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알려주라’고 충고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손님의 아내가 피팅룸에 함께 들어오는 일이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피팅룸 역시 패턴에 따라 재단된/설계된 공간이다. 예를 들어, 재단사에게 ‘총체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선 거울로부터의 충분한 거리가 필요하다. 테일러는 이러한 [조금 떨어진] 관점이 손님을 정면으로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피팅룸에는 보통 저명한 손님들의 Spy 만화 초상화와 함께, 승마용 의복의 피팅을 위한 통으로 만들어진 말과 안장이 준비돼 있다. 


앤더슨 앤 쉐퍼드 Anderson & Sheppard의 패턴 룸


필째로 쌓인 원단들 뒤로는 갈색 종이 원통이 커다란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 있다. 체촌된 사이즈와 손님의 부끄러운 비밀들은 재단사에 의해서 ‘커팅’이라는 과정을 통해 갈색 종이 패턴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 있어서 재단사는 손님의 입체적 체형을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어야 한다. Peral Binder가 주장하듯, 유능한 재단사는 ‘자연이 자비를 선사하지 못한 난제들을 신사적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혹은 킹 윌슨 씨가 말하듯, 

  ‘ 40인치 가슴과 40인치 허리가 아름답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40인치 허리 위에 44인치 가슴의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이 종이 패턴 위의 문자들이 말해주는 비밀들이다.


 이러한 패턴들은 마치 건조 중인 토바코 잎처럼 먼지 쌓인 가게의 지하실에서 줄을 세운 채로 보관된다. 손님의 사이즈에 변화가 생긴다면, 수정사항은 본래의 패턴 위에 기록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비스포크-커팅과 기존의 샘플 패턴을 각각의 손님에게 맞춰서 수정할 뿐인 큰 회사에서 제공하는 Made-to-measure - ‘기성-비스포크’ 사이의 차이다.


그 후, 긴 작업대 위로 펼쳐진 원단의 표면 위에 재단사는 패턴의 형태를 쵸크로 그려낸다. 완성된 그림의 모양새는 마치 공학자의 설계도를 연상케 한다. 특히 옷감이 푸른색일 때 더욱 그러하다. 지그소 퍼즐과도 같은 패턴 조각들을 – 재킷에는 8개, 조끼에는 2개, 바지에는 4개의 조각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옷감만을 사용하여 표면 위로 끼워 넣는(그려 넣는) 공예는 실제로 공학자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패턴을 대고선 옷감을 오려내고 있는 Anderson & Sheppard의 재단사


 이제 원단이 큰 가위에 의해 잘려 나오게 된다. ‘striking/스트라이킹’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마치 그가 값비싼 원단을 자르고 있는 것이 아닌 신문에서 쿠폰을 오려내고 있듯이 무심해 보이는 완벽한 자신감 속에서 과감하게 행해진다. 


이 옷 조각들은 별도의 작은 작업실에 있는 ‘trimmer’들에게 전달된다. 이 작은 가게/공방들은 라이닝용 실크, 주머니 안감, 버튼, 캔버스, 칼라용 멜턴 옷감, 리넨 테이프 등 테일러에게 필요한 모든 부자재를 갖추고 있다. 그곳에서 트리머들은 수트에 사용될 안감 등의 부자재를 선택하여 하나의 꾸러미를 만들어 재봉 작업에 임하게 될 테일러들에게 전달한다. 


이와 같은 테일러들은 작은 공방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더 친근감 있고, 덜 공장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세 명의 테일러가 도제 하나와 ‘Kipper’ 한 명과 함께 일하게 된다. - Kipper란 매우 능숙한 솜씨로 원단 베스팅 과정, 버튼 홀 만들기, 등과 같은 작업을 담당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공방은 고전적인 공간이지만, 그것은 과거에 성행했던 스웻 샵과는 다르다. 나이 든 장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Kipper란 명칭은 그들이 과거에는 쌍을 지어 일감을 찾으러 다녔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 시절에는 물론 일감이 드물었다. 오늘날에는 솜씨 좋은 키퍼를 찾는 일이 어려워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jukxImvFdWQ

새빌로 수트를 만드는 과정을 어느 정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유투브 비디오다. 



테일러들은 캔버스(심지)를 옷감에 흰 실로 시침질한다. 그들은 주머니와 라펠 겉면을 ‘고정’시키고, 솔개들을 마무리한다. 이 바느질은 때론 기계로 완성될 수도 있다. 저명한 테일러들 역시 기계로 똑같이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손바느질할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선의 솔개의 대부분이 기계로 재봉된다. 다만 압력을 견뎌야 하는 곡선의 솔개는 언제나 손바느질로 재봉된다. 그것은 손바느질이 더 강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손바느질이 솔개에 탄성을 가미시키고, 옷이 압력을 받았을 때 터지거나 끊어지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재봉의 모든 과정에서 테일러는 다리미를 사용하여 원단과 심지의 형태를 수정한다. 모든 솔개를 재봉한 후, 테일러는 착용자의 육체의 입체적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다시 한번 수트를 다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비스포크 수트와 기성복 수트의 차이다. 손 다리미질로 형태를 잡은 수트와 호프맨 프레스의 자동 다림질로 다려진 수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60년 혹은 더 오래전에는,... 테일러들은 14살에 일을 시작했다. 테일러들은 다리를 꼬고 공방의 바닥에 앉아서 일을 했다. 그들은 소매 보드(팔 소매 다림질용 다리미판)를 무릎 위에 걸친 채로 다리미질을 하곤 했다. 다리미의 무게는 무려 8킬로 혹은 그 이상이었고, 가게의 지하실에서 달궈져야 했다. 이러한 자세로 무거운 다리미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일은 테일러의 체형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누구라도 테일러와 보통 사람을 걸음걸이로 구분할 수 있었다. 훗날 작업대가 등장했고, 테일러는 일어서서 다림질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작업대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일을 한다. 


헨리 풀 1944

...


과거에는 부서의 책임자들은 신과도 같았고, 더 높은 권력에 기대지 않고서도 장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다. 오늘날, 규율은 더 이상 과거처럼 엄격하지 않고, 부서들 역시, 이전과 같이 완전한 독립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경영이사들은 스스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men-of-all-work’의 역할을 겸한다. 그들은 손님들을 맞이하고, 체촌하고, 장부를 기록하고, 그 외 잡일을 겸하여, 고용해야 하는 인원의 숫자를 줄이는데 최선을 다한다. 오늘날 헨리 풀은 과거에는 절대적으로 최소한의 숫자로 생각되던 수보다 적은 수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헨리 풀 1944



올해 여든 살인 Packer 씨는 헌츠맨의 디렉터다. 그가 이 업계에 종사한지도 무려 55년이 됐다. 그가 청년이던 시절, 장인들은 영리했지만, 문맹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작업한 일의 수당을 받기 위해 작업일지를 적어내야 했지만, 이러한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청년 패커 씨는 그들을 도와주곤 했다. 그가 회상하길, 그는 장인들이 그들의 일당을 받는 일을 도와주는 동시에, 사무실이 손해를 보는 일을 막아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장인들은 패커 씨가 확인해주지 않은 수당에 동의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상황은 패커 씨에게 있어서 적지 않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아직 일을 배우는 과정에 있었던 그는 장인들의 보호를 받게 됐고, 그가 수트를 만드는 도중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면, 나이 든 테일러들이 라이닝을 뜯어내고, 그 부분의 수트를 다시 만들어줌으로써 패커 씨를 구원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패커 씨는 회상한다. 


‘저는 업계 최고의 재단사가 될 수 있었죠.’


그는 장인들을 제어할 줄 아는 인물로 거듭나게 됐고, 당시의 장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제어가 필요햇다.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술고래들이었다. 수당을 받자마자 엄청난 양의 술을 들이키며 술독에 하염없이 빠져들기 일쑤였고, 수중의 돈을 전부 다 탕진하기 전까지, 그들을 술독으로부터 꾀어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패커 씨는 그들 대신 그들을 위해 물건들을 구매함으로써, - 피아노, 가구 등등 – 그들의 월급에서 돈이 할부로 빠져나가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은 오직 단기간의 성과만을 올릴 뿐이었다. 결국 매번 벌어지는 술 파티 중 피아노는 전당포에 맡겨지기 마련이었다. 


패커 씨는 이러한 술 취한 장인들을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루는, 점심 식사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그는 색빌가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가운데에서 경찰 두 명이 한 남성과 크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패커 씨는 그가 헌츠맨 최고의 장인- 셰익스피어를 읊어대며 술주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임을 알아보았다. 무엇인가를 읊어댈 단계를 이미 오래전에 넘어선 그는 인사불성으로 취해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빌리?” 


청년 패커 씨가 외쳤다. 


“이 사람을 압니까?” 


경찰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냐고요? 그럼요!” 


“그러면 데리고 가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소.” 


 패커 씨는 그를 집으로 이끌었다.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머리부터 고꾸라졌고, 무려 6미터나 되는 계단에 거듭 머리를 부딪쳤다. 그러나 그 시대의 장인들은 굳건한 남성들이었다. 돈이 떨어진 그는 곧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장인을 그의 술독에서부터 꺼내올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뿐이었다. 어느 날, 또다시 인사불성으로 취해버린 그는 플러시 브리치스를 물통에 빠뜨려버렸고, 그것을 완벽하게 버려놓았다. 게다가 바지의 주인 – 남미의 외교관- 은 그것을 다음날 궁중 행사를 위해 수령해갈 예정이었다. 


청년 패커 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거인을 흔들어 깨우고선, 브리치스를 가늘게 뜬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것 좀 봐, 빌리! 좀 보라고!’

 ‘제가 그런 건가요, 패커 씨?’ 

 ‘그래, 네가 그랬어.  이 바지는 당장 내일 필요한 바지란 말이야’ 

 ‘두 시간만 자게 해 줘요, 패커 씨. 바지는 금방 준비 될 거에요’ 


두 시간 후 그는 정신을 차렸고, 밤을 새워서 일한 결과 새 플러시 브리치시를 만들어냈다 – 헌츠맨이 만든 그 어떤 바지보다 완벽한 바지였다. 


 ‘좋은 시절이라고요?’ 


패커 씨는 말한다. 


 ‘좋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보장하죠.’ 


헨리 풀 1944






매거진의 이전글 재킷의 어깨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