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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Sep 02. 2020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2

Sartoria Napoletana 2


나폴레탄 테일러링의 탄생 배경, 즉 나폴리라는 도시가 나폴레탄 수트, 나폴레탄 컷, 나폴레탄 스타일의 탄생에 기여한 바에 대해서 하나 정도의 글을 더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2011년 Put This On에서 진행한 O‘mast의 감독 지안루카 밀리아로티와의 인터뷰를 번역해 봤다.


이미 수십 번을 꺼내 보았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O’mast의 출시 이후 나폴레탄 수트는 우리와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2010년 당시 대다수 한국인 애호가들에게 나폴리의 저명한 마에스트로들은 상상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딴 세계’의 존재들이었으나, 2020년 현재 (Covid-19 이전까지) 한국의 애호가들은 서울을 방문하는 나폴레탄 사르토들 중 한 명을 고르는 일에 골머리를 쌓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마 이 팬데믹이 진정되는 대로 그들은 한국의 손님들을 위해 다시금 이곳을 방문하게 될 테다).



나폴레탄 컷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故) 제나로 루비나찌의 아들이자 나폴리 대표 하우스인 런던하우스/루비나찌의 수장  마리아노 루비나찌

전 세계적으로도 나폴레탄 수트에 대한 인식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재미있는 점은 오랜만에 접하게 된(어느덧 9년이나 된) 이 인터뷰가 최근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게 어필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환상의 오브제가 아닌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나폴리의 수미주라 수트 앞에서 오늘의 남성복 애호가들은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의 아우라에 매료되기보단 ‘손해 보기 싫다!’는 빤한 계산 속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찾아 헤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 난 나폴리 사르토들과 그들이 제작하는 수트를 향한 찬사로 가득한 글의 번역본을 소개했다. 짐작컨대 글쓴이 역시 2020년 오늘, 같은 내용의 글을 영어권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게시판에 포스팅하지 못할 것이다. ‘메이드 인 나폴리’의 프리미엄을 악용한 몇몇 ‘사기꾼 사르토’와 나폴리 특유의 ‘느긋함’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세계 각지의 고객들은 ‘나폴레탄 사르토’와의 조우가 그들이 꿈꿔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O'mast에도 어김없이 출연하여 무게 있는 존재감을 과시한 이탈리아 패션계의 대부 벱 모데네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에 관한 ‘낡은’ 이야기들을 번역하여 포스팅하는 이유인즉 (물론 직접 글을 써내는 것보다 약간 수월하기도 하다) 멋에 대한 우리만의 주관을 주장하기엔 그 문화적 기반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한국의 상황에 서, 나는 우리가 조금 더 철저하게 그들이 생각하는 우아함(elegance)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사르토들이 되려 그들의 전통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 역시 우리가 나폴레탄 테일러링 본연의 아름다움에 등을 돌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O’mast에 등장하는 테일러 중 하나인 (故) 마에스트로 파스꽐레 사비노는,

“가봉은 심리 테스트와 같다”


라고 말한다. 가봉복을 착용한 고객을 앞에 두고서 재킷의 결점을 찾아내는 일은 웬만한 사르토라면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가봉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남성이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 그 자신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그의 꿈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사르토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올해 2월 우리 곁을 떠난 마에스트로 사비노. 그는 마라도나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마에스트로의 말에 감히 첨언하자면, 거리에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에 익숙한 이탈리안이 아닌 중국, 미국, 캐나다, 대한민국의 도시 속에서 매일 같이 천박함의 공습 아래 놓여있는 세계 각지의 애호가들은 스스로의 눈이 아닌 마에스트로의 눈이 보는 ‘멋’을 탐하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꿈이 아닌 나폴레탄 사르토인 그의 관점을, 세계관을, 취향을 향유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아름다운 이탈리아’에서 사르토리아 이탈리아나의 찬란한 과거를 경험한 마에스트로는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80세를 훌쩍 넘긴  안토니오 리베라노(피렌체), 눈지오 피로찌, 마리오 카라체니(밀라노)‘에게 ‘스타일 어드바이스’를 구하는 이유다. 우리는 우리의 꿈이 아닌 그들의 꿈을 향유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약간은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들의 수트에 따라붙는 ‘프리미엄’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이고 (유학파 사르토들에게도 해당된다), 수많은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이탈리아로 공예를 배우기 위해 떠나는 이유이며, 꼼꼼하지 못한 마감처리에 실망하면서도 애호가들이 다시 한번 또 다른 나폴레탄 마에스트로를 찾아 소셜 미디어의 바다를 헤매는 이유다. 몇 백 년의 역사를 공짜로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수십 년간 서양 복식을 공부한 야수토 카모시타가 “일본인은 아직 수트를 자연스럽게 입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겸손 역시 이와 같은 ‘절대적인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다고 나는 믿는다.



블루 더블브레스트 수트 차림(버튼의 색상이 보면 그가 재킷이 아닌 수트를 입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의 지안루카 밀리아로띠. 출처: The Armoury



Interview With Gianluca Migliarotti: Director Of O’Mast


출처: Put This On



데릭: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보죠.



지안루카: 

비스포크를 향한 제 열정은 어릴 적에 시작됐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테일러에게 수트와 셔츠를 주문하는 전통이 있죠. 사실 이런 전통은 나폴리에서는 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죠. 테일러를 찾는 사람들이 귀족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일곱 살 때부터 사르토리아를 방문하곤 했죠. 아버지가 가봉을 보는 동안 저는 원단들을 가지고 놀 수 있었어요. 때때로 그곳의 남자들은 제 의견을 묻곤 했죠. - “이 옷감 어때 보여?, 네 수트라면 어떤 걸 선택할래?”라는 식으로요. 저는 이와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자랐고, 언제나 매료돼 있었죠.


그렇기에 제가 영화감독이 됐을 때 전 저를 매료시켰던 사르토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올바른 방식으로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어요. 저는 오늘날 업계의 상황이 불만족스러워요. 많은 대형 브랜드들이 그들이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대형 브랜드들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불가능해요. 저는 테일러들이 그들 공예의 마스터로 거듭나기 위해 쏟아야 했던 노력을 알고 있어요. 나는 이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예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많은 지식이 요구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싶었어요. 누구든지 수트를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수트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죠.  


데릭: 

다시 말해서 메이드-투-메져(MTM)와 비스포크의 차이를 말씀하고 계신 거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메이드-투-매져(MTM)와 비스포크를 혼동한다는 말씀이신 거고요.


지안루카:

맞아요. 정확합니다.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데릭:  

둘은 서로 굉장히 다른 공정을 의미하기에, 이 차이는 분명히 중요한 기술적인 차이를 뜻하죠. [MTM에는 우선 가봉이 없죠] 보통 스토어에 들어가서, 체촌을 한 뒤, 그 치수가 공장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패턴이 수정되죠. MTM으로서는 수트의 핏에 있어서 비스포크와 같은 품질을 얻을 수 없죠.  


지안루카: 

맞습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의 사이즈를 재조정하는 거죠.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몇 가지 디테일을 추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죠. 비스포크 테일러링은 다릅니다. 비스포크 테일러를 찾아간 고객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죠. 진정한 장인정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비스포크 테일러링에는 ‘결점’이 발견된다는 문제가 있죠. 이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완벽함’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완벽함은 산업적(industrial)이죠. 테일러가 제작한 진정한 수트에는 결함이 발견됩니다. 아름다움이란 완벽을 향한 추구죠,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춰야 합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수트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데릭: 

말씀하신 이야기는 제가 제 친구와 니나 시몬의 음악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결점이 많죠. 하지만 그 결점들이 그녀의 음악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주죠. 그녀의 목소리를 기계에 넣어서 결점들을 전부 제거해버린다면, 기술적으로는 완벽해질 테지만, 그녀의 음악은 영혼과 그 특성을 잃게 되겠죠. 더 이상 여운을 남기지 못할 거예요.


지안루카:

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겁니다. 우리는 뮤지션이 연주하는 음악과 컴퓨터가 연주하는 음악의 차이를 감각해낼 수 있죠. 디지털 음악은 기술적으로 완벽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연극에서 제가 사랑하는 것은 완벽한 연기를 구현하려 노력하는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점들이야말로 그 작품의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죠.


장인정신이 가미된 모든 작품에 있어서 우리는 이 고찰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장인이 직접 손으로 제작한 신발의 경우에도 어떤 곳에서 “결점”들이 발견될 수 있고, 그것은 그 신발이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발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테일러들 중 한 명이 이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사르토리아 차르디의 레나토 차르디는 '실수'에도 각각 다른 종류의 ”실수“가 있다고 주장하죠. 그에게 있어서 완성된 [비스포크] 재킷에 가로 주름이 생긴다면 그것은 진짜 실수고, 세로 주름은 실수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구분은 소프트한 구성이라는 근본적인 정체성을 가진 나폴레탄 테일러링의 특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소프트한 구성상 세로 주름들을 모두 제어하는 일은 불가능하죠. 따라서 이와 같은 작은 디테일들이야말로 재킷을 아름답고, 특별한 옷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지안루카는 몇 년 전부터 전 루비나찌 바지 테일러 리노 포멜라(우)와 함께 포멜라 나폴리라는 이름 아래 비스포크 바지 사업을 시작했다.


데릭:

조금 전에 사르토리아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다면 감독님은 언제 첫 나폴레탄 수트를 경험하셨나요? 그리고 어디에서 수트를 주문하셨죠?


지안루카:

제가 열여덟 살 때, 오랜 세월 저희 가족의 테일러였던 치로 팔레르모를 찾았습니다. 아마 나폴리 최고의 테일러 중 하나였던 빈첸조 아톨리니와 그가 클래식 나폴레탄 스타일을 발명한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굉장히 딱딱했던 영국식 재킷을 가볍고 부드럽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아는 나폴레탄 스타일을 탄생시켰죠. 치로 팔레르모는 그의 오른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가족의 테일러죠.


데릭:

영화에도 그가 등장하죠, 아닌가요?


O'mast의 한 장면. 반팔 셔츠(!)에 줄자를 목에 걸친 마에스트로 팔레르모다. 그 역시 2015년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공방은 Ciro Zizolfi가 운영하고 있다.


지안루카:

예, 물론이죠. 제게 영감을 준 것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야말로 O’mast, 마에스트로죠. 그는 빈첸조 아톨리니의 아들 중 하나였던 클라우디오와 함께 사르토리아를 50년간 운영했죠. 클라우디오 아톨리니 역시 영화에 등장합니다. 10년 전 그의 조카 중 한 명이 체사레 아톨리니라는 브랜드를 시작했죠 – 공장을 연 거죠 – 이 조카가 클라우디오에게

“이 가게를 전통 워크숍이 아닌 체사레 아톨리니 스토어로 만드는 게 어때요? ”

라고 제안했고, 클라우디오는 이에 동의했죠. 결국 그는 조카와 함께 비즈니스를 시작했죠. 하지만 치로는 비스포크 테일러의 일을 계속했고,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됐죠. 결국 치로는 사르토리아 팔레르모를 열었지만, 그전까지 가게의 이름은 사르토리아 아톨리니였어요. 50년 동안 사람들은 치로가 아톨리니인 줄 알았죠. 공방에 있었던 것은 치로였으니까요.  


클라우디오 아톨리니. 비스포크 테일러링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 그렇다면 왜 사르토리아 아톨리니의 문을 닫았던 것인가...


데릭:

그러면 본래의 아톨리니 사르토리아는 문을 닫은 건가요?



지안루카: 

사실상 그렇죠. 문을 닫았습니다. 몇 년을 버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운영이 되지 않았어요. 지금 그곳은 나폴리 축구팀의 가게가 됐죠.


데릭:

계속해서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감독님은 이미 나폴레탄 컷을 탄생시킨 아톨리니의 업적에 대해서 말해주셨는데, 아톨리니의 시대에는 또 한 명의 저명한 테일러가 있었죠 – 안토니오 블라시 (안젤로 블라시의 이름을 잘못 말한 듯: 역주). 저는 나폴레탄 테일러링의 역사는 블라시와 아톨리니의 유산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블라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지안루카: 

예. 아톨리니의 커리어의 초기에 나폴리에서 블라시는 아톨리니보다도 더 유명한 테일러였습니다. 그는 굉장한 테일러였습니다 – 영국 스타일의 수트를 만들었죠. 전통적 영국식으로 만들어진 수트는 보형물과 패딩이 추가된 구성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마치 박스와 같은 핏을 보여준다고 말하죠. 재킷을 입는 게 아니라 재킷이 남자를 입어버리는 셈이죠.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재킷은 체형의 결점들을 은폐시켜주게 됩니다. 상당히 아름답죠. 하지만 착용자를 드러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톨리니는 블라시가 만들던 이러한 전통식 재킷을 ‘비워’ 버렸어요(emptied it). 겉 옷감에도 내부의 라이닝에도 굉장히 가벼운 옷감을 썼어요. 부드럽고 간소한 구성을 띠었죠. 어깨에 있어서는 아주 가벼운 패딩이 들어갔지만, 전통식 재킷에서 발견되는 아주 두꺼운 패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어요. 아톨리니가 이러한 나폴레탄 컷을 발명한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나폴레탄 재킷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죠. 블라시 역시 유럽 전역에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지만, 아톨리니의 재킷의 인기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현재 살아있는 저명한 테일러들 중 다수는 블라시의 공방에서 기술을 익혔고, 그곳에서 성장한 인물들이지만, 다들 아톨리니의 스타일로 그들의 재킷 구성을 바꿨어요. 이제 나폴리에서 전통 영국 스타일의 재킷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테일러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재킷을 만들지 않아요.


안젤로 블라시 (출처: Die Workwear)


데릭:

아톨리니와 블라시 외에 중요한 나폴레탄 사르토들은 또 누가 있을까요?


지안루카: 

De Nicola, Caggiula, Gallo,  Combattente가 이름 있는 테일러들에 속했죠. 하지만 블라시와 아톨리니가 이름을 남긴 테일러들이죠. 그 외의 유명 테일러들은 모두 사라졌어요.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데릭:

새빌로는 여러 차례 부흥과 몰락의 시기를 겪었고, 업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장애물들을 해결해야 했죠. 나폴리의 테일러링 업계에는 어떠한 위협이 있나요? 업계의 상태는 어떤가요?


지안루카: 

나폴리의 테일러링은 여전히 살아있어요. 하지만 고전 중이죠. 젊은 남성들은 더 이상 이 공예를 배우려 하지 않아요. 그것을 배우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죠. 현재 유명한 테일러들 중 대부분은 12-13살부터 공방에서 자랐어요. 테크닉을 마스터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테크닉을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일 역시 매우 어려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직장을 원하죠 – 은행원 이라던가. 그들은 그저 테일러가 되기 위해 그렇게 오랜 기간의 훈련 기간을 거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물론 그런 젊은 남자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제 다큐멘터리에서도 몇 명 볼 수 있을 거예요. 제 테일러는 52살이고 (Ciro Zizolfi를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역주), 사르토리아 팔레르모에서 그는 “젊은” 쪽에 속해요, 미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죠.


또 다른 문제는 비스포크 수트를 기다릴 참을성과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저는 지금 밀라노에 삽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폴리에서 수트를 주문하죠. 저는 며칠 전에 첫 가봉을 봤고, 15-20일 안에 두 번째 가봉을 위해서 나폴리를 방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세 번째 가봉을 보러 가야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열정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나폴리에는 테일러를 방문하는 것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제 아버지가 20대였던 시절 같지는 않죠. 그 당시에는 나폴리 어디에나 테일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테일러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죠. 밀라노와 같은 도시들에 비해서 나폴리에서 테일러링이 더 건강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밀라노의 비스포크 테일러링은 정말 고전하고 있죠. 너무나 많은 MTM 브랜드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브랜드들은 비스포크보다도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정도에 만족해버리죠.


나폴레탄 테일러링의 전통이 더 뿌리 깊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여전히 [기성복, 혹은 MTM보다는] 비스포크 수트를 더 선호하죠. 그게 더 ‘올바른 선택’이라고 인식돼 있고요.



밀라노의 대표 사르토리아 A. Caraceni의 (왼쪽에서부터) 손자 마시밀라노 카라체니, 할아버지 마리오 카라체니, 사위/아버지 칼로 안드레아끼오


데릭: 

화이트 칼라 직장인들이 여전히 MTM이나 기성복보다 비스포크 수트를 주문한다는 건가요?


지안루카: 

물론 모두가 그런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여전히 비스포크 수트의 전통이 존재하죠.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굉장히 나폴리스러운 전통이고요. 우리는 전통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나폴리 사람들이 퓨전 레스토랑보다는 전통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이유죠. 셔츠에 있어서는 테일러를 찾는 일이 수트보다 오히려 더 보편화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맞춤 셔츠를 140달러면 제작할 수 있죠. 만약 대형 브랜드에서 MTM 셔츠를 구매한다면 아마 180달러쯤은 내야 할 겁니다. 따라서 MTM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거죠.


또한 만약 테일러와 친분이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죠. 공방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수다를 떨 수도 있으니까요.


데릭: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미국의 이발소 문화를 연상시키는군요. 미국의 이발소/바버샵 문화의 중심은 이발사와 손님 사이의 관계와 대화죠. 요즘은 Supercuts에 가서 머리를 깎는 사람들도 많지만, 미국의 몇몇 지역에는 여전히 이발사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자르는 전통이 살아있죠.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죠. 손님들과 이발사 사이에는 자연스레 친분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나폴리의 테일러들에게도 비슷한 전통이 살아있는 거겠죠?


지안루카: 

예.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제 테일러와 친구 사이입니다. 근처에 들릴 때면 저는 그의 공방을 찾곤 하죠. 가봉 때문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려고요. 제 테일러에 대해서 말하자면 – 이들은 굉장히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 공방에서 요리를 해서 일하는 테이블 위에서 식사를 하죠. 볼만한 모습이죠. 멋지거든요. 나폴리에 들릴 때면 저는 점심시간에 제 테일러를 찾곤 합니다. 그들과 같이 공방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 예전의 기억들, 정치, 무엇에 관해서든 말입니다. 제 테일러는 저희 할아버지도 알고 지냈었어요. 저희 가족에 대해서 제 테일러가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거죠.


데릭: 

무엇이 나폴리에서 이러한 문화를 살아남게 해 준 걸까요? 말씀해주신 관계는 오늘로서는 굉장히 드문 것일 텐데요.


지안루카: 

나폴리가 근대적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나 중부와는 굉장히 다릅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모두 그렇죠. 마치 남부 스페인과 비슷합니다. 세비야를 가면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죠. 세비야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플라멩코를 아낍니다. 일요일이면 꼭 입어야 하는 복장이 있고, 전 가족이 모두 같이 외출하죠. 근대화가 폭력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도시들에는 장점들이 존재합니다. 몇몇의 전통을 지켜낼 수 있는 거죠.  


나폴리에서 우리는 테일러링 전통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나폴리에서 테일러링의 전통은 그저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 중 하나인 셈이죠. 70세인 저희 아버지의 경우 대형 브랜드의 가게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걸 절대 고려하지 않아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마치 아버지에게 이발소가 아니라 미용실을 가라고 하는 것, 또는 Trattoria 대신 맥도널드를 가라고 권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죠. 저 역시 trattoria에서 잘 만들어진 파스타를 먹고 싶지, 맥도널드에서 형편없는 버거를 먹고 싶지 않습니다.


지안루카의 아버지 루치오 밀리아로띠. 셔츠-타이의 패턴과 색상이 솔리드 차콜 그레이 수트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들보다 훨씬 우아한 차림을 보여준다.


데릭: 

지금 살고 계신 밀라노는 맥도널드와 미용실 쪽에 가깝겠군요.


지안루카:

밀라노는 뉴욕과 비슷해요. 큰 공장들과 비즈니스들이 6-70년대부터 자리를 잡았죠. 밀라노는 이탈리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이죠. 따라서 패션이 인정받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되죠. 나폴리에서도 패션은 ‘인정’ 받지만 그 인정은 제한적입니다. 밀라노에서는 부르주아들이 프라다를 입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나폴리에서 그랬다간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볼 겁니다. 나폴리 사람들은 그 사람을 우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고요. 졸부라고 인식하겠죠.


데릭: 

굉장히 흥미롭군요. 남성복에 있어서 두 도시 사이에 또 다른 차이점은 없나요?



지안루카: 

두 도시는 굉장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밀라노의 남성들을 보면 – 적어도 비스포크 테일러를 찾는 남자들을 보면 – 나폴리의 남자들에 비해 차림이 훨씬 포멀 합니다. 변호사인 제 아버지가 밀라노로 이직했을 때 무척이나 나폴리스러운 차림으로 다니셨었죠. 멋진 spezazato 재킷 (단품 재킷), 플라넬 바지, 다크 브라운 구두 차림으로 출근하곤 하셨었죠. 나폴리에서 이러한 차림은 매우 일반적인 것이죠. 하지만 밀라노에서 아버지의 친구들은 아버지에게 “너무 색깔이 튀어. 밀라노에서는 이렇게 옷을 입지 않아- 금요일이라면 모를까. 월요일에는 이렇게 입지 않아.”라고 말해주었다고 해요. 밀라노의 남성들은 런던의 남성들처럼 검은색 구두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나폴리에서 검은색 구두는 굉장히 포멀한 자리에서만 착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검은 구두를 우아하지 않다고까지 말하죠.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해야 한다면 네이비 수트에 다크 브라운 구두를 신는 것이 훨씬 우아한 선택이라고 인식돼 있습니다.


나폴리에서는 지나치게 포멀하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옷들은 항상 우아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블루 색상의 수트만을 입는 남성은 우아하지 않다고 말하죠. 그것은 마치 유니폼과 같으니까요 – 선택의 개입이 없는 것이죠, 그것은 우아함이 결여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도전적인 요소가 존재해야죠.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데릭:

그렇다면 나폴리의 스타일 문화에 있어서 또 어떤 특이점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재킷 구성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사르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먼에 의해서 유명세를 얻게 된 지 1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루카는 화려한 색상의 재킷/수트를 즐겨 입는다. (그 역시 밀라노에 사는 나폴레탄이다)

지안루카: 

아까 제가 컬러풀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올바른 표현이 아닐지 모릅니다. 컬러풀하다고 말한다면 마치 나폴리 사람들이 오렌지색 재킷에 녹색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 같이 들리니까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는 나폴리 남성들이 광대처럼 옷을 입는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데릭: 

무슨 말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이탈리안 스타일이 영국식 복식의 해석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빅토리안 시대의 도덕을 제외시켜버린 채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안 스타일은 “자신의 옷을 입고 편안해 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윈저 공작 역시 항상 편안해 보였죠. 저는 두 나라 사이에는 감성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서 영국 스타일은 영국식 도덕, 세계관, 감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빅토리아 시대에 생겨난 것들 말이죠. 굉장히 절제된, 윗입술을 꾹 다문 품위를 지키는 멋인 것이죠. 이탈리아 옷은 영국식 디자인을 가져왔지만, 빅토리아적인 억압을 벗어던진 듯합니다. 물론 그것이 오렌지색 재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덜 절제된 스타일인 것이죠.  


지안루카:  

예. 자기표현의 전통은 물론 존재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저는 저희 삼촌이 작은 디테일을 가지고 그의 개성을 확연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 예를 들면 어떤 날에 어떤 타이를 맬 것인가 하는 것 말이죠. 그 날 어떤 기분인지를 옷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데릭:

 맞습니다. 제가 이탈리안 스타일을 접할 때 – 밀라노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이탈리안 스타일 말입니다 – 그것은 자기표현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종류의 멋이죠. 영국식 스타일은 특정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돋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죠. 특정한 규율을 존중하고, 그것에 잘 녹아드는 것이죠, 개인으로서의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죠.


지안루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날씨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햇살이 쏟아지는 맑은 날이 아니라면 노란색 리넨 수트를 입고 거리로 나서는 일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죠. 그 날 그가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말입니다. 엄격한 룰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날의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특정한 감각이 필요한 것이죠. 만약 날씨와 자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면 옷을 잘 입을 수는 없을 겁니다. 우아함은 멋진 옷을 입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멋진 옷을 입는 일만으론 절대 충분하지 않죠.


좋은 예시가 바로 비토리오 데 시카입니다. 그는 정말 우아했던 남성 중 하나였죠. 그는 빈첸조 아톨리니의 손님이었고, 영화에서 아톨리니의 수트를 많이 입었었죠. 데 시카가 광대처럼 옷을 입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여러 명도의 그레이를 즐겨 입었지만 굉장한 감각이 있었고, 그것은 그를 굉장히 우아한 남자로 만들어 주었죠. 그는 존재 방식에 있어서 굉장히 능숙한 남자였습니다. 데 시카야말로 제게 있어서 나폴레탄 스타일과 영국 스타일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는 비토리오 데 시카. 그의 스타일에 대한 포스트 역시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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