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단 8
어느덧 겨울이다. 우스티드 수트와 셔츠만으로 찬바람을 이겨내기가 어려워졌다. 드디어 겨울 워드로브의 모든 자원이 총동원돼야 할 때가 왔다.
트렌드를 부정하는 클래식 남성복 시장에서 지난 몇 년간 두드러졌던 가을/겨울 트렌드를 굳이 꼽아보자면, 어렵지 않게 캐주얼한 소재의 강세를 들 수 있을 테다. 트위드, 코버트, 폭스 플라넬, 코도반 등의 유행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세계적인 흐름에 굉장히 민감한 우리나라 애호가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이들이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음은 당연한 현상일 테다. 최근 방문한 사르토 준, 전병하 사르토의 사르토리아에서도 걸려있는 가봉복 중 여럿이 트위드 소재의 코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편집샵들 역시 이번 겨울 트위드 소재의 코트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갈수록 캐주얼해져 가는 남성복식의 추세를 고려했을 때 해리스 트위드, 폭스 플라넬, 생지 데님과 같은 특별한 관리 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거듭 입을수록 멋져지는- 옷들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도쿄 브라이스랜즈(Bryceland's)의 Ethan Newton의 말마따나 폭스 플라넬과 해리스 트위드의 빳빳함은 여전히 많은 남성들에게 있어서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의 훌륭함을 주변인들에게 거듭 피력하는 나 역시도 막상 트위드/헤비 플라넬 재킷/코트를 걸쳐봤을 때 느껴지는 투박함에 구매를 머뭇거려본 기억이 상당하다 (옷의 가격이 비싸다면 망설임은 더 심해진다).
몸에 안착하기까지 절대적인 ‘수고/시간’이 요구되는 이 소재들은 첫 만남의 순간에는 ‘몸과 따로 노는 뭉툭한 옷’이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사실상 풍부한 경험을 통해 빳빳한 트위드, 플라넬로부터 아름답게 잘 길들여진 부드러운 질감을 미리 투시해낼 수 있을 정도의 심미안을 갖추게 된 소수 남성들이 아니고선 세월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미리 감각하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반면 생지 데님 청바지의 경우는 '에이징 과정'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된 듯하다).
반면, 이번 포스트의 주인공 캐시미어는 이와 같은 설움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존재다. 첫 만남의 순간부터 특유의 발색과 감촉으로 우릴 매혹하는 캐시미어는, 남성의 몸이 근육질이건, 둥글둥글하건, 작대기 같이 말랐건, 그 굴곡 위에서 특유의 드레이프를 그리며 그의 흔들리는 팔과 함께 겨울밤 찬 공기 속을 우아하게 헤엄친다.
견고한 원단을 선호하기에 캐시미어의 연약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성들도 있을 테다. 그러나 캐시미어의 가벼우면서 뛰어난 보온력(그것은 같은 무게 양모의 3배에 달한다)과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업계 내에선 hand라 불리는)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리슨 사의 캐시미어 수팅 원단 번치를 (Multi Millionaire) 평가하며, 어느 미국인 블로거가 캐시미어 재킷 위에 손을 올린 여성은 영원히 그 손을 다시 내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역시 우리 모두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착용자가 실감하는 캐시미어의 이점을 제쳐두고서도, 캐시미어 = 고급 상품이라는 인식이 굳게 자리 잡은 오늘, 원단 설명에 기재된 캐시미어 함량이 높아질수록 지갑이 쉽게 열리는 현상 역시 인지상정(?)일 테다. 우리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확실한 기호로서의 상품을 원한다.
“학교 어디 다녀?”의 질문에는
“하버드 다녀요”가 깔끔하고,
“뭘 산거야?”라는 질문에는
“해리스 트위드 자켓이야. 지금은 좀 뻣뻣한데 많이 입으면 예뻐져, 코도반 신고서 입으려고” 보다는
“캐시미어”, 또는 “로로 피아나”가 한결 편리하다.
물론 캐시미어=고급이라는 인식에는 역시 그것이 고가품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트위드와 플라넬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우리 몸에 안착하기 위해 우리의 ‘노동’을 요구한다면, 최고의 모습으로 우릴 맞이하는 캐시미어는 내몽골의 고산지역에서부터 유럽 최고의 원단사들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거쳐야 했던 긴 여정의 비용(노동)을 우리에게 일찌감치 청구하는 셈이다.
우선 양이 아닌 몽골/내몽골(중국)의 고지에서 서식되는 염소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캐시미어는 양모와 구별된다(그외 지역에서도 캐시미어는 생산되지만, 캐시미어 생산량의 70%이상, 고급 캐시미어의 거의 전부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한 마리의 염소에게서 1년에 고작 150g을 얻을 수 있을 뿐인 캐시미어는 염소의 외피를 구성하는 길고 거친 털이 아닌, 염소의 속살 위로(주로 복부 주위) 자라나는 부드러운 솜털을 가리킨다. 한 벌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위해선 캐시미어 염소 3마리, 캐시미어 재킷을 위해선 5-6마리의 1년 총생산량이 요구된다. 바로 이 희소성이 (고급) 캐시미어의 잔인한 가격을 설명한다. (세척-분류 끝에 시장에 공급되는 순수 캐시미어의 연간 생산량은 고작 6500톤에 밖에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은 고가의 상품이 왜 그토록 소량으로만 생산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테다. 2천 년 이상 사치품으로서 대륙을 횡단하며 유통, 판매됐던 캐시미어(고대 로마 시대부터 카슈미르 지역에서 생산되던 캐시미어 스카프는 부유층이 애용하던 사치품이었다)의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산지대가 아닌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평지에서 염소들을 방목하는 시도는 수차례 이루어졌다. 1823년 잉글랜드 Sussex의 지주 한 명이 큰 비용을 감수하고 캐시미어 염소 한 무리를 그의 고장인 Weald Hall로 운송해 방목한 것이 그 대표적 예시다. 그의 염소들은 Weald Hall의 풀밭을 활기차게 뛰놀며, 아무 무리 없이 현지 적응에 성공해, 그를 기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염소들은 본래의 목적인 부드러운 솜털을 길러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B. 보이어). 이와 같은 시간과 비용의 허비가 몇 번이나 반복된 끝에서야 인류는 캐시미어가 영하 50도를 밑도는 끔찍한 추위 속에서 스스로의 체온을 보존하려는 염소의 생존본능이 탄생시킨 기적의 산물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염소에게서 자라난 고운 결의 털은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보통 5-6월)에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하고, 이때가 바로 1년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캐시미어 ‘수확철’인 셈이다. 목동들은 쇠빗을 사용하여 캐시미어를 빗어내고(캐시미어는 양모와 달리 shearing- 깎여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캐시미어는 먼 유럽으로의 여정에 오르게 된다.
스코틀랜드와 북 이탈리아 등지에 도착한 캐시미어는 이제 원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공정을 거친다. 불가피하게 섞여 나온 거친 털을 한 차례 더 제거한 뒤, 캐시미어는 세정(Scouring)-소면 (carding) - 방적(spinning) – 직조(weaving) 과정 후 마무리 처리(finishing)를 통과하게 된다. 이처럼 캐시미어 원단 공정은 양모 원단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지만, 캐시미어 특유의 질감을 완성하는 단계인 마무리 작업은 매우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을 요하는 매우 특수한 과정이다. 거듭 반복되는 빗질과 다림질을 통해 윤기와 부드러운 촉감을 완성하는 이 마무리 처리에는 무려 삼 주 이상의 시간이 요구된다.
캐시미어 원단 공정은 오로지 대대로 그 노하우를 전수받은 소수의 기술자들에 의해 완수되고, 이와 같은 기술자들은 50년 이상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전해진다(B. 보이어). 따라서 최고급 캐시미어 원단 공정은 스코틀랜드의 Johnstons of Elgin, 이탈리아의 Loro Piana 등, 캐시미어 관리의 오랜 역사를 가진 원단사들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염소의 솜털인 만큼, 캐시미어 섬유의 길이는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고, 그것이 원단 관리가 어려운 이유, 올바른 방식의 공정을 거치지 않은 캐시미어 원단에 쉽게 보풀이 일어나는 이유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캐시미어 원단사는 단연 로로 피아나다. 1970년대부터 몽골과 내몽고의 캐시미어를 대량으로 수입해 온 로로피아나는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목민들과의 계약을 체결해 캐시미어 공급을 확보함으로써 최고급 캐시미어의 대명사로 거듭난 바 있다. (로로 피아나는 페루 정부로부터 일정 국토를 그들의 소유로 매입하여 멸종 위기에 있던 비큐나를 보호-방목하는 데 성공한 회사이기도 하다 –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로로 피아나는 페루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을 받기까지 한다)
로로 피아나는 베이비 캐시미어를 처음 상품화시킨 회사이기도 하다. 그들은 무려 10년에 걸친 설득 끝에 유목민들로 하여금 아기 염소에서 나오는 캐시미어를 어른 염소의 캐시미어와 분리하여 판매하게 하는 데 성공했고, 생후 약 6개월 된 새끼 염소에게서 단 30 gram을 얻어낼 수 있을 뿐인(염소의 생에 단 한 번 채취될 수 있는) 베이비 캐시미어로 제작된 초고가 제품들을 판매한 최초의 회사가 됐다. 설득이 이루어지는 10년 동안 일찌감치 베이비 캐시미어의 가공- 제작- 관리 시스템의 노하우를 확립한, 최고급 소재를 향한 그들의 열정이 이룬 쾌거였다. 로로 피아나의 캐시미어 제품들은 평균 14.5 마이크론, 베이비 캐시미어는 13-13.5 마이크론의 캐시미어 섬유를 사용하고, 이는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상품에 해당된다.
물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 시장 개방은 내몽골의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현지에서 부드러운-금(solft gold)이란 별명을 가진 캐시미어 사업의 확장에 열을 올린 중국-몽고인들 덕에 90년대 이후 몽골/내몽골 고지에서 서식하는 캐시미어 염소의 수는 급증했고, 양과 달리 풀을 뿌리째 뽑아먹고, 발굽으로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염소 수의 폭발적 증가는 몽골리아 산지의 신속한 사막화로 이어졌다. 결국 방목할 풀이 부족해진 땅에서 자라난 염소들은 집단 영양 부족의 위험에 노출됐고, 이는 캐시미어 품질의 저하를 가져왔다.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을 막기 위해 로로 피아나는 본격적으로 작은 규모의 염소 무리를 방목하는 유목민들과 높은 품질의 캐시미어 공급을 전제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고, Cashmere of the Year Award를 창설하여, 섬유의 길이-부드러움-내구성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캐시미어를 생산한 목동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작은 무리의 염소가 더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 생산을 의미하고, 그것이 더 높은 이윤을 가져다주며, 이것이 생태계의 보전을 돕는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장 신속하게 실현 가능한 환경 보호의 논리를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피에르 루이지 로로 피아나는 그들의 비큐나 사업에 관한 인터뷰에서, “비큐나는 매우 비쌉니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남게 된 이유입니다”라 고백한 바 있다)
역시 캐시미어의 이미지가 연상시키는 것은 부드러운 방모사 원단이다. 강한 압력을 견뎌야 하는 바지에는 적합하지 않기에 순 캐시미어 100% 수트를 주문하는 일은 남다른 용기를 요구하지만, 캐시미어 스포츠 코트/재킷은 겨울철 남성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사치품 중 하나다.
물론 내구성에 대한 걱정이 따르지만, 양모와 마찬가지로 2ply, 3ply, 등 캐시미어 실을 꼬아 만든 비교적 좋은 내구력을 보여주는 하이-트위스트 캐시미어 원단이 존재하므로, 이와 같은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재킷 수명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섬유 길이가 짧은 솜털인 캐시미어의 특성상 양모 원단과 같은 단단한 내구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Permanent Style의 사이먼 크롬턴이 지적하듯, 이러한 구조상의 특징이 원단 설명에 잘 명시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캐시미어 원단의 선택에 있어서도 플라넬과 마찬가지로 무게가 높은 쪽을 선택하는 편이 캐시미어 재킷을 오래 즐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11-12oz, 혹은 그 이상의 무게를 가진 캐시미어 재킷감은 이보다 가벼운 캐시미어보다 더 좋은 내구성을 보여줄 확률이 높다.
부드럽게 흐르는 드레이프가 특징인 방모사 캐시미어 재킷은 남성 복식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존재다. 네이비 캐시미어 재킷은 울 소재의 네이비 플라넬 재킷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색감과 착용감을 보여준다. 가끔 마주치는 피아첸차, 로로 피아나, 제냐 등의 빈티지 원단들의 발색은 가히 황홀할 정도다. 트위드와 플라넬의 거친 질감을 같은 색상의 캐시미어로 대체할 수 없듯이, 캐시미어 특유의 멋을 트위드와 플라넬로 대체할 수도 없는 것이다(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고르자면 사실 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양모 원단을 더 선호하는 쪽이다. 그러나 캐시미어 원단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유혹 앞에서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은 매우 어려워지고 만다)
패턴이 없는 솔리드 원단의 캐시미어 재킷 역시 기모가 짧은 방모사의 특성상 그레이 플라넬 외에도 캐주얼한 바지들과 좋은 조화를 보여주지만, 캐시미어의 발색과 부드러운 착용감을 즐기면서도 조금 더 좋은 범용성을 가지는 캐시미어 재킷을 원한다면(청바지, 코튼 바지 등과 더 잘 어울리는 재킷을 원한다면), 헤링본, 트윌 등의 확실한 직조감이 가미된 캐시미어 재킷을 추천한다.
나 역시 최근 미드나잇 색상의 헤링본 패턴 원단으로 캐시미어 더블브레스트 재킷/블레이저를 하나 오더한 바 있다. 포멀한 색상과 모델(더블 브레스트)이 재킷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굵은 헤링본 위브를 확인하고선 주문을 결심했다. 지난 겨울 내내 즐겨 입었던 폭스 브라더스의 헤비(19oz) 차콜 그레이 플라넬 바지, 드라퍼스/까노니코의 그레이 코버트 바지와 잘 어울릴 것이라 미리 상상해 본다.
내 계획을 고백하자면, 다음 재킷으로 오버코트용 캐시미어 원단을 고민하고 있다. 몸에 열이 많은 편인지라 큰 한파 없이 지나간 지난 겨울 내내, 19oz 폭스 플라넬 더블브레스트 수트, 캐시미어 터틀넥, 캐시미어 스카프 차림만으로도 특별히 한기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15oz 상당의 캐시미어 원단으로 재킷을 오더 한다면 - 플라넬 바지-스웨이드 더비/부츠와 함께 초겨울까지 아무 무런 무리없이 즐겨 입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캐시미어 재킷 차림으로 책상 위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인 나머지 팔꿈치의 원단이 해졌다면, 멋스러운 스웨이드 엘보 패치를 고민해 보자.
캐시미어 100% 원단은 오버코트류에서 가장 쉽게 발견된다. 착용자의 몸이 주는 압력, 열, 땀에 노출되기 쉬운 재킷과는 달리, 비교적 여유 있는 사이즈로 재단되며, 착용자의 몸과 최소 한 겹 이상의 옷을 추가적으로 그 사이에 두게 되는 오버코트는 캐시미어 원단을 즐기기에 가장 알맞은 옷이다.
캐시미어 특유의 질감, 색감 외에도 같은 무게 양모의 3배에 달하는 고급 캐시미어의 보온력 역시 캐시미어 오버코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는 수트 위에 한 겹의 옷을 더 걸쳐야 하는 남성들에게 있어서 입기에도, 또한 팔에 걸치기에도 편리한 겨울용 코트를 한 벌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캐시미어의 막강한 보온력은 고객들의 캐시미어 오버코트를 손바느질로 꿰매야 하는 테일러들에게 큰 고역을 선사한다. 작년 여름, 에어콘을 틀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캐시미어 가봉복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는 테일러의 메일을 받고선, 그가 만들어낼 캐시미어 오버코트에 대한 환상에 잠겨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전투용(Workhorse) 울 소재의 코트를 먼저 장만하고 캐시미어 소재의 코트를 구매할 것이 권장되지만, 관리만 잘 해준다면, 캐시미어 오버코트를 오랜 세월 즐기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양모보다 눈/비 등에 취약한 캐시미어이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Caccioppoli의 워터프루프 캐시미어, 로로피아나의 스톰 시스템 등, 방수 코팅이 가미된 캐시미어 원단들도 생산되고 있기에, 이들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비를 맞거나, 크로스백/백팩을 하루 종일 메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캐시미어 혼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서는 잘 손상되지 않는 고중량 울 방모사 제품과는 달리 중량과 무관하게 세심한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 고급 캐시미어다. 가지고 있는 그레이 헤링본 캐시미어 혼방 재킷의 기모가 납작하게 누워버려, 그 결을 되살리는 데 애를 쓴 기억이 있다. 납작하게 눌려버린 기모의 결을 되살리기 위해선 주전자에 물을 담아 스토브에 올린 후, 수증기 앞에서 손상된 부분을 잘 빗어주는 방법을 추천한다. 예방 차원에서 착용 후에는 자연 소재 (말/돼지 털)의 솔로 코트/재킷을 구석구석 잘 빗어주는 일 역시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