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단 7
"트위드는 절제된 세련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귀족, 신사, 대학 교수, 뉴욕 지식인의 지적인 우아함을 은밀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전달한다. [대중 매체 속] 트위드는 캐릭터의 첫 대사 전에 그의 인격을 고백한다." (Gentleman's Clothier)
클래식 남성복 마니아들의 트위드 사랑은 유별나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높은 번수/캐시미어 혼방 우스티드 수트는 '틀린 선택', 묵직하게 점잖은 플라넬과 트위드는 '올바른 선택'이라는 #멘즈웨어의 교리 앞에서 트위드를 즐겨 입지 않는 이들조차 "트위드는 옳다"는 통설에 감히 이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나이가 지긋한 교수, 동네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트위드가 겪고 있는 ‘이미지 문제’ 역시 애호가들에게는 힘을 잃은 듯하다. 테일러링과 원단에 대한 이해 수준의 향상과 함께 트위드에 대한 선입견 역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오늘의 남성들은 트위드의 상징성을 소비하기 위해 트위드 자켓, 트위드 코트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머릿속에 구상한 착장을 구현하기 위해 300/400/500그램, 그린/브라운/네이비 쉐트랜드/해리스/도네갈 트위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손에 쥔 원단의 착용감, 그것이 요구하는 스타일의 테일러링(알맞은 테일러), 완성된 트위드 재킷이 요구하는 착장을 미리 그려볼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언급돼야 할 것은 지난 십여 년간 남성복 시장의 유행을 주도한 나폴레탄 테일러링이다. 빳빳하고 거친 트위드 원단을 특유의 가벼운 부자재, 둥근 실루엣, 마니카 카미치아를 통해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나폴레탄 테일러링은 8-90년대 미국식 착장의 기본과도 같은 트위드 재킷 + 청바지 조합을 훨씬 더 우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녹지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서울의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점점 트위드를 오더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에게 ‘트위드’의 기호는 거부감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 아저씨들이 입는 ‘아저씨 옷’이라는 거대한 범주에 막연히 포함돼 있었을 뿐. 여성복 시장에서 트위드가 가지는 이미지가 완벽하게 상반된다는 점이 이 사실을 증언한다. 물론 대표적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의 스테디셀러가 여성 트위드 재킷의 이미지를 결정지어 버린 덕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난 서울이 옷을 입기에 나쁘지 않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허용되지 않는 옷이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특성상 수트를 입는 직장인들이 여전히 행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 도시에선 트랙 팬츠와 운동화에서부터 수트와 타이까지, 허용되는 착장의 스펙트럼이 무한에 가깝다. 차 문화가 지배적인 (동부와 남부의 소수의 도시들을 제외한) 미국, 365일, 24시간 운동복/등산복 차림이 강요되는 캐나다/호주에 비하면 상황은 한결 나은 편이다. 모든 생활양식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가 만연한 문화의 불모지에 살아가는 일에도 장점은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스팔트와 기괴한 시멘트 건물 사이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일이 트위드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서울, 도쿄, 홍콩의 도심에서 생활하는 애호가들에게 워드로브에 트위드의 자리를 마련할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인가의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달린 선택으로 남고 만다 (우리는 낚시, 스키, 등산을 즐기기 위해 트위드를 필요로 해본 적이 없기에). 반면 가을의 귀환과 함께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수풀이 말라가고, 발밑의 코블 스톤이 차가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서유럽의 소도시들에서 트위드는 그곳의 남성들에게 자신이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때가 되면 꺼내 입어야만 하는 옷'임을 강하게 피력한다 (물론 유럽에서도 트위드의 다급한 부름에 응답하는 남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전수되어 온 옷에 대한 감각을 아직 상실하지 않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근래 영화 중에서 드물게 트위드의 매력을 매우 멋지게 담아내 준 영화, Phantom Thread의 몇 장면을 캡처해 보았다. 영화 속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의상은 새빌로의 앤더슨 앤 쉐퍼드(Anderson and Sheppard), 구두는 런던의 George Cleverly가 제작했다. 영화 의상의 전체적 그림을 구상해 낸 코스튬 디자이너, 마크 브릿지스에게 대부분의 공이 돌아가야 할 테지만, 앤더슨 앤 쉐퍼드의 고객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찍부터 클래식 착장을 익힌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역시 의상과 구두의 선택에 십분 일조했다고 전해진다.
포스트에 필요한 정보 중 상당 부분을 Clan by Scotweb (Clan.com)으로부터 인용-번역했음을 밝혀 둔다.
트위드의 정의
보편적 인식과는 달리 트위드 원단은 원료, 패턴, 색상의 제한을 가지지 않는다. 사실 ‘트위드’는 특유의 원단 제작 공정 방식을 의미한다.
엄격히 말해 트위드는 섬유 상태에서 염색된 (fibre-dyed) 원단을 가리킨다. 즉 실, 혹은 원단 단계에서 염색되는 것이 아니라, 양으로부터 깎여 나와 세척된 후, 섬유 상태에서 염색돼, 방적(spinning), 직조(weaving) 과정을 거친 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Clan by Scotweb)
이는 트위드의 점잖으면서도 풍부한 색감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섬유 단계에서의 염색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염색된 양모 섬유는 ‘레시피’에 따라 우선 색상별로 배합되고, 이렇게 섞인 양모 섬유는
Carding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한번 색상 별로 잘 섞인 상태로 Spinning 작업을 통해 실로 뽑히게 된다.
이렇게 뽑혀 나온 실들이 다시 한번 색상별로 조합돼 (최대 12 색상의 원사가 원단 속으로 배합된다) 직조를 통해 트위드 원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트위드의 풍부하면서도 은은하게 깊이 있는 색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상의 배합이 연출하는 절묘한 배색의 결과인 것이다.
트위드의 소재- 최초의 기능성 원단
상기한 바처럼 트위드의 정의는 그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는 섬유-염색 공정을 통해 제작된 캐시미어, 혹은 실크 또한 엄연히 트위드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전 상의 정의와 업계의 인식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테일러들과 대부분의 고객들에게 있어서 트위드는 어디까지나 내구성이 좋은 빳빳한 질감의 평직 또는 능직 양모 원단을 의미한다. 내구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실크 트위드, 캐시미어 트위드는 트위드의 본 기능에서 양모 만큼의 탁월함을 보여주지 못하기에, 고객 입장에서 트위드는 그저 양모 트위드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테다.
(반대로 스코틀랜드산 양이 아닌 지나치게 소프트한 메리노 양모로 만들어진 트위드 역시 진짜 트위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순수 주의자들도 존재하지만, 이
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인 듯하다 (Clan by
Scotweb))
결국 견고한 내구성, 확실한 보온성, 방모사 특유의 부드러움, 특유의 보풀이 연출하는 은은한 색감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양모보다 더 좋은 소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트위드의 역사
트위드는 원단사 직원의 실수 덕분에 그 이름을 얻게 됐다. 1826년 런던의 원단 상인 James Locke은 스코틀랜드 하윅(Hawick)의 양모 회사 Watson’s에게 원단을 주문했고, Watson‘s 사의 직원은 Tweel이라 적은 (Twill(능직)의 스코틀랜드식 스펠링) 주문서를 원단과 동봉한다. 주문서를 받은 런던 직원은 휘갈겨 쓴 Tweel의 스펠링을 Tweed로 잘못 읽어버렸고,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산 방모사 원단은 그 후로 계속해서 트위드(Tweed)로 불리게 된다. 이것이 트위드가 Tweed의 이름을 갖게 된 사건이었다(아무튼 가장 신빙성 있는 전설이다).
스코틀랜드산 양모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 군단이 브리타니아에 처음 상륙했을 당시에도 스코틀랜드 원주민들은 양모 옷을 입고 있었다고 전해진다(B. 보이어). 오랜 세월 동안 트위드는 산악 지방의 거친 기후 속에서 농사일을 해야 했던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추위와 습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기능성 원단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최초 판매용 트위드 제작이 기록된 것은 14세기의 일이었고,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양모 원단은 스코틀랜드 내 섬 주민들의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섬 내 소작지 중 대부분에는 방적 공장이 들어섰고, 이곳에서 생산된 원단은 강한 내구성을 앞세워 스코틀랜드 본토와 그 외 국가들로 수출되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 산지 주민들의 전유품이었던 이 견고한 옷감이 런던 사회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의 영주들은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잉글랜드의 젠트리 계급에게 지방의 영지들을 판매하거나 임대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산업혁명의 최고 수혜자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젠트리 계급은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에 별장을 짓고 사냥, 낚시 등의 야외 활동을 즐기는 그들만의 컨트리-별장 문화를 구축했다.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의 자연을 마음껏 향유하고자 했던 젠트리에게 있어서 방수와 보온 기능이 탁월한 트위드 수트는 필수 스포츠 용품이었다. 새로 구매/임대한 영지를 주말마다 방문하던 잉글랜드 젠트리의 등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Estate Tweed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Estate Tweed란 영지의 지방 특유 트위드를 가리킨다. 물론 그에 앞서 훨씬 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 씨족(clan) 사회 고유의 (문중의 혈족들에게만 사용이 허락된) 타탄체크가 존재했다. 그러나 씨족의 일원이 아닌 잉글랜드의 젠트리는 영지를 구매했지만, 지역의 타탄을 입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체크-트위드를 입기 위해 지역 타탄과 차별화된 그들만의 체크 패턴을 고안해야 했고, 이것이 잉글랜드 젠트리들이 그들 영지 고유의 트위드로 규정한 Estate Tweed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첫 Estate Tweed를 고안한 것은 1835년 Glenfeshie 영지를 임대한 Balbrin의 Balfour 장군 가족이었다. 스코틀랜드 산지에는 씨족(Clan)의 우두머리가 그의 하인들에게 클랜 특유의 타탄을 하사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씨족의 혈통이 아니었던 Balfour 장군과 그 하인들은 지역 특유의 타탄을 착용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딸들이 어느새 애착을 가지게 된 체크 트위드를 입기 위해 흑백 쉐퍼드 체크 타르탄에 진홍 오버체크를 추가해 넣은 패턴을 그녀의 종자들과 사냥터 관리인들에게 입게 했고, 이것을 그들의 타탄이라 선언했다. 물론, 그것은 타탄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Estate Tweed(영지 트위드)의 전통을 탄생시킨 사건이었다. (Clan by Scotweb)
초기의 Estate-tweed의 패턴은 클래식 스코틀랜드 클랜 체크 문양에 약간의 변형을 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트위드의 주된 용도 중 하나는 사냥이었고, 따라서 트위드 체크는 잘 눈에 띄지 않는 보호색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이는 트위드의 패턴이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 자연의 색상을 모티프로 따와야 함을 의미했다. 따라서 패턴 위에 자리하는 화려한 색상들을 포함한 모든 색상은 지방의 나무, 계곡, 바위, 수풀에서 발견되는 색상과 유사해야만 했다. (Clan by Scotweb)
오늘날 발견되는 Estate Tweed 패턴들 역시 이러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패턴을 모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는 1845년 로밧 영지의 로밧(Lovat) 트위드가 있다. 황색과 청색을 배합시켜 만든 로밧 지방 녹지의 색상인 은은한 녹색을 띤 이 원단은 남성복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클래식 패턴으로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이처럼 젠트리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트위드의 유행이 잉글랜드 전국으로 퍼져나간 데에는 역시 로열패밀리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1842년 스코틀랜드의 발모랄 영지를 방문한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 알버트 왕자는 산지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1848년 발모랄 영지를 매입한 알버트는 그가 살게 될 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발모랄 체크를 직접 디자인하여 트위드를 착용하기 시작한다. (영국 귀족 작위를 가진 왕족의 일원인 그가 클랜 타르탄을 입는 일은 스코틀랜드 인들과 잉글랜드 인들의 심기를 건드릴 우려가 있었기에, 사실상 이 ‘발명’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회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이 체크 문양은 여전히 로열패밀리만이 입을 수 있는 체크 패턴으로 알려져 있다- (B. 보이어)
스스로 고안한 트위드 패턴을 각별하게 아꼈던 그는 평소에도 그의 프록코트 아래 트위드 바지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트위드 사랑은 대표적 로열 댄디인 (그의 아들)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에드워드 7세의 아들) 에드워드 8세(알버트의 증손자, 윈저 공작) 에게까지 전수되고, 이는 트위드의 전국적인 유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B. 보이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트위드가 가지는 부유한 상류층의 이미지는 이와 같은 젠트리의 별장 생활과의 연관성에서 유래한다. "No Brown in Town"의 규율 역시 스코틀랜드 산지에서 트위드 차림으로 여가 생활을 즐기던 젠트리가 트위드 차림으로 런던으로 돌아와 스스로가 런던을 벗어나 별장 생활을 즐기는 부유층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 해리스 트위드
트위드의 대명사와 다름없는 Orb 모양의 해리스 트위드 상표를 달기 위해선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스코틀랜드산 순수 양모로 만들어져야 하고, 오로지 자연 식물 염료만으로 염색돼야 하며 해리스 섬 주민의 집에서 직접 직조돼야 한다(handwoven). 염색, 방적, 직조, 마무리 과정이 모두 헤브리디스 제도 (Outer Hebrides)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규정 역시 지켜
져야 한다.(B. 보이어)
이와 같은 상표 관리 덕에 해리스 트위드의 품질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스코틀랜드 양모 특유의 거친 질감, 탄탄한 내구성, 비교적 듬성듬성한 직조 구조, 마지막으로 여러 색상이 한 데 뒤섞인 풍부한 색감을 자랑하는 해리스 트위드는 다른 지역 트위드에 비해서도 더 풍부한 색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 특유의 브라운 색상을 위해서 12가지 종류 색상의 실이 사용되기도 한다.
2. 도네갈 트위드
스코틀랜드에 해리스 트위드가 있다면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원단은 역시 도네갈 트위드다. 아일랜드 도네갈 주의 이름을 따온 도네갈 트위드는 nep 혹은 slub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점들이 골고루 박힌 구조(Flecked)가 그 특징이다. 무지, 헤링본, 체크, 혹은 다른 패턴들이 이러한 점들의 배경이 되는 구조의 도네갈 트위드는 비교적 캐주얼한 원단에 속한다. Holland & Sherry, W. Bill, Porter & Harding 등, 대표적인 트위드 번치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있는 원단이며, 원칙상으로는 도네갈 주에서 생산된 제품만이 도네갈 트위드라 불려야 하지만, 해리스 트위드에 비해 품질 관리가 잘 되고 있지는 않기
에 (도네갈 트위드는 공장에서 자동-직조 된다), 현재 도네갈 특유의 패턴을 가진 트위드 원단은 모두 도네갈 트위드라 불리고 있다. (따라서 잘 알려진 원단 브랜드의 도네갈 트위드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3. 체비엇 트위드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의 Northumberland의 Cheviot Hill에서 전통적으로 사육되던 흰 얼굴의 양들의 양모로부터 만들어진 트위드를 가리킨다. 체비엇 트위드는 트위드 중 ㅣ비교적 두껍고, 거칠며, 무거운 쪽에 속하는 트위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이 트위드는 여전히 많은 테일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4. 색슨 트위드
색슨 주의 양에서 나온 트위드를 가리킨다. 1765년 스페인 국왕이 그의 사촌 색슨 대공에게 보낸 메리노 양 무리가 번식돼 지역 특유의 양모 생산 산업을 탄생시키게 된 역사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색스니 트위드는 짧은 양모 섬유와 미세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유명한데, 도네갈 트위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독일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제작된다. 때때로 방모사뿐만이 아니라 소모사가 섞여 들어가는 구성을 보여주는데, 특유의 부드러움 덕분에 재킷/코트뿐만이 아닌, 트위드 수트감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5. 아일라 트위드 (Islay Tweed)
16세기부터 스코틀랜드의 아일라 지방에서는 아일라 트위드가 지역 주민들에 의해 제작되고 있었다. 해리스 트위드처럼 그만의 전통을 가진 아일라 트위드는 이제 단 하나의 직조공만이 남아서, 그 방적소를 운영하고 있다. 1883년에 시작된 Islay Tweed 산업은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직조 기계를 사용하여 트위드를 만들고 있다.
아일라 트위드의 가장 큰 고객은 새빌로의 헌츠맨이다. 헌츠맨의 아일라 트위드 재킷은 1926년 첫 모델을 선보인 이후, 그들의 클래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아일라 트위드는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의 타탄체크 트위드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전통적 생산 방식은 치솟고 있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주문을 받는 일을 제한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6. Thorn proof Tweed
패턴, 혹은 원산지가 아닌 원단 소재의 특징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1870년 Red River 반란에 투입된 캐나다의 병사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원단으로 처음 생산된 이 트위드는, Red River 지역을 뒤덮고 있던 가시들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디자인됐다. 원사를 여러 번 꼬아 만든 원단으로, 특별히 단단하게 짜인다. 그 이름 그대로 대부분의 경우 찢어지거나 구멍이 뚫리더라도, 손상 입은 부분 주위의 원단을 서로 비비는 것만으로도 원단을 원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다.
7. 쉐트랜드 트위드 – 전통적으로 스코틀랜드 Shetland 섬의 양들에게서 나온 양모로 만들어진 트위드를 가리킨다. Shetland 원사는 얇지 않지만, 촉감이 매우 부드러우며, 체비엇 등의 트위드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더 섬세하고 탄력 있는 구성을 보여준
다. 내구성에 있어서는 다른 트위드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만, 부드러운 착용감이 장점이다. 특유의 부드러움 덕분에 애호가들 중 굉장히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트위드이기도 하다.
8. 건 클럽 체크–1874년 뉴욕 건 클럽(New York Gun Club)이 그들만의 트위드 패턴을 고안한 것이 클래식 원단의 반열에 들게 된 패턴이다. 쉐퍼트 체크 (작은 상반되는 색상의 하운즈 투스 패턴이 반복되는 패턴) 위에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색상의 윈도우 페인 체크가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색상에는 제한이 없다.
"트위드는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라는 명제에 나 역시 제한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제대로 된 트위드 재킷을 매체에서 접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Phantom Thread와 같은 영화를 접하는 일은 남성들의 트위드를 향한 욕구를 활짝 개방해 버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벌 구비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차 오른다. 그러나 기백만 원의 돈을 들여 최고 레벨의 비스포크로 트위드 재킷을 하나 마련하는 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생(!?) 입을 옷'을 마련한다는 관점에서 최고의 내구성을 자랑하는 트위드 재킷을 최고의 장인에게 맡기는 일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옳은’ 선택이지만, ‘더 옳은’ 선택의 가능성이 눈앞을 가리는 것이다.
빳빳한 스코틀랜드산 양모로 만들어지는 트위드는 고급 원단이 아니다. 최초의 '기능성' 소재였던 만큼 구김이나 손상의 걱정이 적은, '잘 입어지는' 원단이긴 하지만, 그저 내구성이 좋고 구김이 가지 않는 재킷들을 찾는다면, 조금 더 포멀하고 깔끔한 플라넬, 코버트, 고중량의 우스티드 원단 역시 존재한다. 트위드의 가장 큰 장점인 풍부한 색상 역시 이제 캐시미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가의 고급 원단 캐시미어는 우리의 ‘기왕이면’의 심리를 정확하게 조준한다.
사실 동양인에게 있어서 트위드 재킷을 주문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점은, 짙은 흑발의 동양인들에겐 브라운, 그린, 엷은 황갈색 (Fawn) 등 트위드를 대표하는 색상들을 입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확연하게 밝은/맑은 빛의 피부를 가진 남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많은 경우 옅은 브라운과 그린 색상은 동양 남성의 흑발 머리-올리브 얼굴색의 조합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프레임이 돼주지 못한다. (남성은 여성처럼 화장으로 피부색을 보정하지 않는다는 점의 차이도 크게 작용할 테다)
그러나 애호가에게 있어서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수십 가지 자연의 색이 뒤엉킨 브라운, 그린, 베이지 트위드로 만들어진 트위드 재킷과 코트는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소프트한 구성, 이왕이면 트위드 재킷을 두툼한 카디건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줄 로핑이 전혀 없는 마니카 카미치아 어깨의 나폴레탄 트위드 재킷을 추천하고 싶다(물론 오픈심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굳이 캐주얼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트위드가 가지고 있는 ‘전원적’ 느낌과 최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재킷 원단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재킷용 원단은 수트 상의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기에, 투박한 직조감을 자랑하는 트위드 재킷은 이런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가을-겨울 재킷감이 돼준다. (오늘날 트위드 투 피스, 또는 쓰리 피스 수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찾기는 어렵기에)
수많은 색상이 한 데 섞여있는 트위드의 색상과 거친 질감은 바지의 선택에 있어서 상당히 넓은 폭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물론 아무래도 ‘컨트리/전원적’인 트위드의 질감을 고려해서 샤프한 ‘우스티드 그레이 팬츠’ 보다는 터틀넥 스웨터 + 트위드 재킷 + 청바지, 또는 트위드 재킷+ 그레이 플란넬 팬츠/코버트 팬츠 + 옥스퍼드 셔츠의 조합이 가장 보편적인 선택을 구성한다. 신발에 있어서도 카프 스킨 보다는 스웨이드, 또는 코르도반이 조금 더 좋은 짝이 돼준다.
플란넬 팬츠, 데님 팬츠, 코버트 팬츠, 코듀로이 팬츠 등과 함께 트위드 재킷은 가을-겨울 내내 정말로 ‘아무 데나 걸칠 수 있는 옷'의 역할을 아무 무리 없이 해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쉽게 걸칠 수 있는 트위드 재킷에 있어서 앞판에 들어가는 심지가 매우 얇은 나폴레탄/피오렌티나 스타일의 재킷을 선택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캐주얼한 바지들이 보통 청바지, 면 치노 등의 플릿이 없는 플랫 프런트의 ‘볼륨감’이 부족한 바지들이기 때문이다. 넓은 어깨, 풀-체스트(드레이프가 가미된 부풀어 오른 듯한 가슴), 긴 기장의 (거기다 티켓 포켓까지 가미 된다면) 영국식 트위드 재킷은 아무래도 슬림한 청바지, 또는 치노 팬츠와 매칭 하기에는 조금 까다로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위드의 매력을 맘껏 어필하는 사진을 두 장 소개하며, 포스트를 끝내고자 한다. 트위드 소재 코트에 대해서는 추후의 포스트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