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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Mar 06. 2021

Secret Vice (은밀한 금기)- 리얼 버튼홀

By Tom Wolfe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허영의 불꽃"(Bonfire of the Vanities)으로 잘 알려진 미국 작가 톰 울프(1930-2018)가 1966년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다.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위시한 동부의 올드 머니를 겨냥한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그가 이 논설에선 60년대 미국 WASP 남성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금기'로 통하던 맞춤 수트 열병 현상을 보고하고 있다. 몇몇 구절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2000년대 #Menswear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허영의 불꽃"을 대학 시절 대강 읽어보았을 뿐, 톰 울프란 인물에 대한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었기에 이번 번역을 위한 가벼운 리서치를 통해 그의 복식에 대한 생각을 처음 접하게 됐다. 서른두 살이던 1962년부터 50년이 넘도록 오로지 흰색 수트 차림을 고수했던 그가 복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남자였음은 당연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가 옷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소견을 어필했던 작가였음을 알게 됐다.


영상: 60minutes Overtime


   미국 최고 전성기 1940-50년대를 기억하는 그는 분명 시대의 수혜자였다. 계절과 날씨를 막론하고 흰색 더블브레스트 수트 차림으로 뉴욕의 거리를 활보하던 그의 모습은 21세기 뉴요커들에게는 기괴해 보였을 테지만,  남성들이 진정으로 우아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그에게 있어서 되려 21세기 미국인들의 몰골은 참담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 그는 파크 애비뉴와 월가를 대표하는 진지한 남자였다. 그는 영국에서 1800달러를 주고 맞춘 투 버튼 싱글브레스트, 기본 노치 라펠, 청회색 네일헤드 소모사 수트를 입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더블브레스트 수트와 피크 라펠은 조금 지나치게 화려한, 지나치게 가먼트 지구(Garment District)를 연상시키는 차림을 의미했다. (허영의 불꽃)


    

    주인공 셔먼 멕코이를 묘사한 "허영의 불꽃"(1987)의 한 문장이다. 절대 세련된 시절로 규정될 수 없는 미국의 80년대, 레이거노믹스의 심장과도 같았던 월스트리에도 어느 정도의 '멋'에 대한 감각이 아직 살아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Wolf of Wall Street로 유명한 Jordan Belfort 역시 톰 울프의 문체를 모방하면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반면 1998년의  인터뷰에서  울프는 형편없이 망가져버린 미국 남성들의 옷차림을 지적하며 최고 부유층 남성들 역시 "'피난민'처럼 옷을 입고 있다고 평한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격식을 갖춰야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대접받고 싶다는 것을 알리는 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라며 미국 남성 복식의 현재를 향해 일침을 놓고 있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 올드 머니의 무분별한 사치를 무자비하게 조롱했던  역시, 21세기 미국인들의 천박함 앞에서 불가피하게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복식에 관한 신념은 내게 있어서 클래식 남성복 문화와 불가분의 존재인 랄프 로렌(1939년생)과 알란 플러서(1945년생)를 떠올리게 한다.  '패션'을 거부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랄프 로렌이 남성 복식을 위해 세운 가장 큰 공은 20세기 초 미국 상류층 복식 문화를 다시금 대중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남성 복식의 룰을 확립한 알란 플러서 역시 그의 유년기 시절 동부 WASP의 소굴들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복식의 룰을 정리함으로써 클래식 남성복 바이블의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알란 플러서는 그의 첫 책, Clothes and the Man를 집필하던 당시, '이런 건 모두 다 아는 내용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단정치 못한 옷차림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미국인들을 향한 그의 쓴소리는 오늘의 한국에도 온전하게 적용될 수 있을 테다. 오늘날의 미국과 한국은 격식 없이, 편하게, 솔직한 속마음/'진짜 나'를 꺼내놓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대중문화를 공유한다(누가 누구를 모방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논할 가치도 없겠다).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긴장을 풀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TV와 유튜브는 '격식 없이, 허탈하게' 노는 것만이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는 식상한 담론을 지속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포르노(김준산)의 장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는 부자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오늘은)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라 말한다.  그것은 마치 예쁜 여자만이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설명을 보태면서 말이다(이 소설이 오늘 출판됐다면 하루키 역시 남성우월주의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테다).


    돈이 없는 이는 '오늘은 돈이 없어'라는 말이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오늘날 한국인/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오늘은 편하게/격식 없이 놀자" 따위의 말이 그들에게 허락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돈에 대한 맹신을, '격식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주장하는 교양에 대한 멸시를 고백한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건 타이가 아니라, '버는 일, 즐기는 일(소비) 외 나머지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말 것'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목줄이다.  오늘날 한국/미국인들에게 (물론 유럽의 젊은 세대 역시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톰 울프는 ‘왜 네 허심탄회한, 가식 없는, '진짜 모습'은 어느 전쟁터의 피난민 꼴이어야만 하는 거냐?’라고 묻고 있다.






The Secret Vice


Tom Wolfe



리얼 버튼 홀. 바로 그거야! 남자가 엄지 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손목 쪽의 소매의 버튼을 푸는 거야. 왜냐면 이런 수트는 그곳에 리얼 버튼 홀이 있거든.


톰, 보라고. 정말  끔찍한 일이야. 이것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로 계속해서 그것만을 찾게 된다니까. 언제 어디서나 말이야! 결국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남자만이 존재하게 돼.  수트의 소매 위에 버튼들이 그저 꿰매져 있는 남자들과 – (그냥 싸구려 장식품인 셈이지)- 또는, - 그래! – 재킷 소매의 버튼을 손목에서 풀어버릴 수 있는 남자들이지. 그들의 수트에는 리얼-버튼-홀이 달려 있어. 소매에 정말로 버튼을 채울 수 있는 거지. – 엄청나지!-


나폴리,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의 재킷



내 친구 로스, 괜찮은 남자지. 서른두 살, 시내(뉴욕시)에서 일하는 변호사. 스카치-아이리쉬 풍의 멋진 머릿결을 풍성하게 갖고 있어 – 올바르게 자라는 머리말야 – 하류층의 머리와는 다르지 – 그는 지금도 81가 코너의 그의 사무실에 앉아있어. 플레미시 산 브로케이드 쿠션이 올려져 있는 Thonet 의자에 앉아선 Thackeray, hazlitt, Lamb, Walter Savage Landor, Cardinal Newman과 같은 저명한 문장가들의 도서 세트들에 둘러싸인 채로 말이야.



Gavarni 판화


판화들은 대부분 Gavarni만을 걸어두었어. 다른 젊은 변호사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면 사람들이 밀집 같은 그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 Daumiers, 혹은 귀엽다 못해 끔찍한 Spy 판화 따위를 걸어두지만 말이야. 로스는 담배 연기에 훈제되다시피 한 이런 황갈색의 물건들에 둘러싸여서는 최근에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은 최신 술을 마시면서 리얼-버튼홀이 소매에 달린 재킷(Coat)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얼굴 위에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띠고선 말이야!


Spy 판화


그건 마치 축제에서 페리스 관람차에 탄 11살 남짓의 아이들이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옆 골목 앞 통로에 걸린 현수막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짓는 표정과 같은 거야. 거기에는 “섹스의 미스터리가 밝혀집니다! 16명의 나체의 여성들! 벌거벗은 진실! 흥분되는! 교육적인!”이라 적혀있지. 쇼에 입장했을 때, 그들은 알코올 병에 담긴 나이 순으로 정렬된 열여섯 태아를 마주하게 되지 - 하지만 그들이 처음에 띄운 그 미소란!


Daumiers 판화


뉴욕에 사는 서른둘의 로스도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게”. 로스가 말했어.


“내가 버튼홀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재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어. 어느 토요일에 Dunhill’s에서 스터지스와 마주쳤지.”


던힐은 담배 가게고, 스터지스는 로스의 로펌의 젊은 파트너 변호사야.


스터지스는 로스에게 있어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어. 로스는 스터지스가 아타셰케이스를 점심 도시락이라 부른다는 이유로 아타셰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일을 그만둘 정도였지.


 “어제 내가 누굴 봤는지 알아? 스톨즈를 봤단 말이야. 점심 도시락을 들고선 Exchange Place 쪽에서 걷고 있더군. 불쌍한 자식.”


태평양을 건너온 가죽 도시락


스터지스는 언제나 이와 같은 소리를 내뱉곤 했어. 어찌 됐건 로스는 던힐에서 스터지스를 마주쳤다고 하더군.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자에게 브라이어 파이프인지 뭔지를 사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어”


하여간 스터지스 그 자식!


“아무튼 난 당시 체비엇 트위드 수트를 막 한 벌 산 참이었어. 로밧 색상의 수트였지 – 기성복이었어 –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꽤 멋져 보이는 수트였어.


스터지스가 내쪽으로 걸어와서는,


‘오, 우리 로스가 새 옷을 샀나 보군’


따위의 말을 던지더군. 그러더니


‘잠깐만, 좀 볼게.’


라면서 소매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버튼들을 만지작거리는 거야. 그러더니,


"좋은 수트네(Nice suit)"


라고 말했어. 하지만 너무나 빈말인 것이 빤히 보이는 식으로 말하는 거야. 그러고 나선 그가 언제나 끼고 다니는 날씬한 여자들 중 하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떠나더군. 그래서 난 그에게 가서 물었지,


"아까 버튼들을 가지고 뭘 한 거야?"


그러자 그는


"난 그냥 네 수트가 맞춤 수트인지가 궁금해서’"


라고 하는 거야. 마치 이제는 내 수트가 맞춤 수트가 아니라는 것이 더없이 명확하다는 듯이 말이야.



그러더니 자기의 수트를 보여주더군 – 윈도-페인 체크 수트였어. 그런 체크 수트를 본 적 있어? - 아무튼 보여주더군. 소매도. 그 수트 소매에는 버튼홀이 있었어. 맞춤 제작된 수트였지. 그리곤 버튼을 풀어 소매를 여는 걸 보여주는 거야.  너무 간단하게 말야. 옆에서 여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라는 듯이 한쪽 허리를 짚고 비스듬히 서서는 스터지스가 소매 버튼을 푸는 걸 보고 있었지. 그리고 나선 난 내 버튼들을 만져봤어. 버튼들이 그냥 소매 위에 꿰매져 있는 거야. 알겠어?”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로스는 이날 정말 크게 충격을 받아 버렸어. 그 후로 다시는 그 수트를 안 입을 것처럼 굴었다니까. 알아. 바보 같은 이야기지. 사실 이걸 고백했다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일지 몰라. 부끄러운 일이지. 게다가 그 짓궂은 미소라니!



그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린 거야! 불쌍한 로스는 뉴욕시 거물들의 은밀한 금기에 이미 중독돼 버린 거지. 맞춤 수트와 거기에 들어가는 작은 디테일들에 대해 탐닉하는 악습 말야. 월스트리트, 투자 회사, 은행, 로펌, 정치인, 이유는 모르지만 특히 브루클린의 민주당원들, 유명한 댄디, 그 사람들 말야, 일류 문화 평론가, 대형 박물관 관장, 출판사 사장, 고풍 직물 블라인드를 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 말야- 뉴욕의 가장 큰 손들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돼. 이들이 전부 맞춤 수트의 미세한 디테일에 혈안이 돼 있는 거라니까.



그건 거의 비밀 클럽의 휘장과도 같은 거야.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금지돼 있지. 그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 그런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지. 그러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같은 것들만을 찾아대고 있는 거야. 그들은 여자들보다 더해. 게다가 그걸로 서로를 평가하기까지 한다니까. 이러한 것들로 승진, 취직, 등등 심지어 더 큰 것들이 결정된다고 -  그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남자들은 메디슨 가의 어느 영국풍의 옷가게에서 엄청난 돈, 시간, 공을 들여서 기성복을 사는 남자들이야. “진정 멋진 워드로브를 완성해 가고 있다”라고 믿으면서 말이지. 이런 남자들은 2류, 루저, 떨거지 취급을 받는 거야. 밤이면 가죽 점심 도시락을 흔들며 집으로 향하는, 술 한 잔, 그리고 아기와 노는 시간을 고대하는 그런 치들 말야.  


이런, 우리의 로스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듣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야. 그건 금기라고! 섹스라면 혀가 닳도록 떠들라고 해. 하지만 남자들의 옷이라니 – 그런 걸 보려면 단춧구멍 눈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게다가 다 큰 남자들이 그러고 있다니! 하지만 – 알았다고!



이건 비밀스러운 금기야! 잉글랜드, 프랑스처럼 유럽에선 양산형 기성복은 새로이 나타난 존재야. 모든 남자는 크건 작건, 테일러에게서 그들의 수트를 맞춰오고 있었지. 따라서 유럽의 남자들은 그들이 구매하는 옷에 대해서 조금 더 말을 많이 하게 돼 있어. 하지만 미국에서 그건 은밀한 금기와도 같아. 예일과 하버드의 남자 학생들은 Leer, Poke, Fee, Prod, Tickle, Hot Whips, Modern Mammaries등의 잡지를 한 권 뽑아서 공공연히 읽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해. 섹스는 금기의 대상이 아니니까.



하지만 브룩스 브라더스, 제이 프레스의 카탈로그가 나왔을 땐 이야기가 달라. 그건 오직 몰래 꺼내봐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들은 그것들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지. 다들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한정판 셔츠감들” “Finest Lairdsmoor Heather Hopsacking,” “Clearspun Rocking Druid Worsteds,”에 대한 트위드와 밀짚을 연상시키는 문구들을 읽어 나가는 거야. 그리고선 탐정이나 된 것처럼 옷들 사이 미세한 차이들을 찾아내곤 하지. 셔츠의 가슴 포켓에 달린 플랩이나(제이 프레스), 가슴 포켓이 없는 셔츠(브룩스 브라더스)나, 밀리터리 포켓이 달린 바지, 웰트 솔개가 가미된 폴로 코트 등등 – 마치 어머니를 졸라서 버튼다운 셔츠를 선물 받고선, 그것이 셔츠 칼라 뒤에 버튼이 없는 괴상한 셔츠인걸 (어머니가 셔츠를 잘못 샀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서, 불쌍한 어머니로 하여금 밤을 새우며 셔츠 칼라 뒤에 버튼홀을 뚫고, 버튼을 달게 만드는 10대 소년들처럼 완벽하게 ‘미세한 차이’에 대해 통달하기 전까지, 그들은 공부와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  




    그렇게 4년간 아버지의 피 같은 돈을 탕진한 후, 예일, 하버드, 그리고 나머지 대학들은 이러한 ‘비밀의 금기'에 관해 통달하게 됐음을 자신하는 어린 신사들을 배출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선 이들은 곧장 월스트리트건 어디건 가로 향하게 되지.

    

    그리곤  퍽! 우리의 로스처럼 그들도 제대로 눈 사이에 제대로 한 방 맞아버리는 거야.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리는 거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야! 버튼홀! 새로운 옷 가게의 이름들도 잔뜩 배워야 해


    Bernard Weatherill- 뉴욕에서 가장 명성 있는 테일러지. 굉장히 영국적 스타일의 테일러. 프랭크 브라더스와 던힐, 던힐 테일러지 –그들은 뭐랄까... 조금 더 화려하달까? - 이런 하우스들, 혹은 이보다 더 난해한 세계인 런던의 하우스들, 헨리 풀(Poole), Hicks, Wells... 얼마나 더 많을지 누가 알겠어. 이들은 이런 하우스들을 찾기 위해서 런던으로 가려고 난리라니까. 아니면 런던 하우스들이 정기적으로 뉴욕으로 보내는 직원들을 호텔에서 만나서 그들을 통해 직접 주문을 하는 거야. 빌트모어와 같은 호텔에서 말야. 책상 위에 쌓인 커다란 스와치 북, 원단 샘플들 사이에서 말야.



    비밀의 금기! 이건 완전 신세계인 거야! 기성복 제조업자들은 소매에 리얼-버튼 홀이 달린 기성 수트를 만들 수가 없어. 기성복 제작의 원칙은 옷걸이에 걸린 수트가 대략 네 가지 이상의 체형의 남자들에게 맞도록 만드는 거야. 따라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소매를 길게 만들지. 가게에는 보통 상주하는 테일러가 있어. 수트 수선을 해주는, 소통이 불가능한 왜소한 남자지. 그는 소매를 잘라내서 팔이 짧은 남자에게 맞춰주고, 버튼 위치를 위로 올리는 거야.



    이제 로스는 알게 돼. 버튼홀 정도의 디테일을 눈치채기 시작했다면, 이제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그래! 예를 들자면 Scyes(몸통의 암홀)야. Scyes이라니! 우리의 로스 같은 남자가 이런 난해한 단어들을 통달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로스는 진짜 괜찮은 녀석이라고,  젠장. Scyes라니!


    Scyes는 재킷의 암홀이야. 기성복에서는 암홀을 홀랜드 터널 정도의 사이즈로 제작하지. 누구 건 간에 이 재킷은 맞게 돼 있어. 팔이 소화전 크기만 한 전 역도 챔피언 짐 브래드포드와, IBM에서 메모들을 뒤적거리는 일에 오후를 허비하며, 집으로 돌아가 술 한 잔을 즐기며, 아이와 놀아줄 시간만을 고대하는 불쌍한 치가 같은 재킷을 입을 수도 있는 거야.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짐 브래드포드가 아니라면 이런 재킷을 입은 모양새는 헐렁하고 엉망진창일 거야. 맞춤-제작 수트의 암홀이 높은 이유지. 남자의 어깨와 팔의 형태에 맞춰서 수트가 제작되는 거야. 게다가 나머지 디테일들도 한몫을 하지. 로스가 속한 세계에선 -월스트리트- 이런 디테일들은 전부 영국식 테일러링을 모방하고 있어.

    

    허리: 수트의 허리는 조여져 있지, 밀착된 형태야, 아이비리그 스타일처럼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아. 아이비리그 스타일은 기성복 제작자들에게 있어선 정말 훌륭했지. 그냥 자루 같은 옷을 만들기만 하면 다들 그것을 입어댔으니까.


    라펠: 맞춤 제작된 수트의 라펠들은 더 넓고 조금 더 Belly가 가미돼 있어. 바깥쪽 모서리가 조금 더 둥근 곡선을 그리는 거지.  


프레드 아스테어의 연미복/화이트 타이 재킷. 암홀이 정말 높다.



칼라: 맞춤 수트의 재킷 칼라는 목에 매우 밀착되게 잘 맞아. 기성복의 반쯤은 재킷의 칼라와 목 사이에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지. 그건 기성복이 모든 종류의 체형에 맞도록 제작되기 때문이야. 맞춤 제작된 수트는 더 밀착되고, 칼라에도 역시 약간의 곡선이 가미돼. 고지 근처에 말야.


소매: 소매는 더 좁고, 손목으로 갈수록 미세하게 좁아들어. 보통 네 개의 버튼이 달려있지, 때때론 세 개가 달려있어. 이 버튼들은 진짜 잠그고 풀 수 있는 것들이야. 어깨에는 실루엣을 연출하기 위한 패딩이 추가되지. “내추럴 숄더”는 별 볼일 없는 얼간이들을 위한 거야.


벤트:  재킷은 종종 사이드 벤트 또는 벤트리스(노 벤트) 형태지. 센터 밴트 대신 말야. 그리고 기성 수트보다 더 깊기 마련이야.


    로스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참 더 이야기할 수도 있어. 하지만 대충 문제가 어떤 것인지 짐작했으리라 생각해.


    로스는 심지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도 알고 있어. 방 안에 들어섰을 때 그곳의 남자들의 수트에 리얼 버튼홀이 달려있는지 알 수 있을 리 없잖아. 이처럼 미세한 디테일들은 다 그런 종류의 것이니까. 너무 작아서 눈으로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았어! 그게 바로 이 문제가 특이한 이유야. 여성복의 경우 매년 스타일이 통째로 바뀌지. 언제나 새로운 ‘실루엣’이 등장해. 허리와 밑단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칼라가 밖으로 나오거나 안으로 들어가 버리지. 가슴이 부풀어 오르거나 사라져 버려. 우린 그 흐름을 탐색할 수 있지. 하지만 남성복에 있어서는 이번 세기에 단 두 번의 변화밖에는 나타나지 않았어. 게다가 둘 중 하나는 너무 난해해서 테일러조차도 그것을 도형 없이는 설명할 수도 없을 정도야. 그중 하나는 가슴에 들어가는 솔개가 생략되고 ‘다트’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을 대체하는 된 사건이었지. 1913년에 일어난 일이야. 다른 변화는 1922년에 일어난 바지 플릿의 등장이었어. 라펠과 바지 통의 너비는 과거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어. 하지만 라펠과 바지에 있어서 대부분의 극단적인 실험은 기성복 세계에서 나타나기 마련이야. 기성복 업자들은 언제나 스타일의 변화를 통해서 한 푼 돈벌이를 해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맞춤복에 있어선, 적어도 영국 전통식 테일러링에 있어선, 지난 50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어. 변화는 전부 미세한 디테일에서 나타나는 거야- 옷에 돈을 좀 썼고, 네 옷을 위해서 ‘하인’들이 미친 듯이 가위질과 바느질을 했다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는 것들이지. 품위! 그래!



    그래. 그런데 어떻게 소위 말하는 거물들이 이런 것에 탐닉하게 된 거지? 난들 알겠어. 어쩌면 이런 일들은 린든 존슨에게서 일어난 식으로 일어나는 일인지 몰라. 우리의 대통령 말야. 1960년에 린든 존슨은 케네디와 함께 선거 유세 중이었지. 그러다 보니 그는 케네디의 옷을 보게 됐고, 그리고 나선 자기의 옷을 보게 됐어. 그리고선 특유의 매력적인 목사님 같은 목소리로


“이럴 수가, 내 옷은 철도 직원 작업 바지 같잖아. 맞아. 내 옷은 철도 노동자 작업 바지 같아 보여”


라 말했을게 분명해. 이 케네디라는 작자는 영국 테일러에게 그의 옷의 대부분을 맡기고 있었거든. 어찌 됐건 간에 선거가 끝난 후, 1960년 12월의 어느 날, 린든 존슨, 텍사스 오스틴의 자랑인 그가 영국 런던 새빌로에 나타났어. Carr Son & Woor에 들어섰지. 그리고선 여섯 벌의 수트를 주문하겠다고 했어. 그의 주문은


“난 영국 외교관처럼 보이고 싶소”


였어. 영국 외교관이라니! 린든 존슨이 말야! 그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라고. 린든 존슨이 누구겠어. 미합중국의 대통령, 빈곤층의 친구, 나토(NATO)의 사자, 건국의 아버지들의 신념의 수호자, 우리 세대의 평화의 지도자, 교활한 동양의 적과 용맹하게 싸우는 매와도 같은 존재, 자유 세계의 지도자 –가 버튼홀에 극성을 부리고 있다니! 상황이 이런데 난 겨우 로스를 가지고 놀라고 있었다니까.


케네디와 린든 존슨


백악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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