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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Jan 25. 2021

수트와 드레이프(Drape)

수트 해부 4


    지난 포스트에서 Derek Guy는 비스포크 수트의 선택이 암시하는 수많은 잠재적 '고뇌'를 이야기했다. 비스포크 테일러의 고객은 그가 원하는 수트를 구현하기 위해 수트를 구성하는 ‘옵션'들을 종종 직접 결정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소진시켜서라도 '이상적인' 수트를 구현하겠다는 욕망을 쫓는 그에게 있어 선택의 영역이 다분화되고, 넓어졌다는 사실은 '이상적인 수트’를 위한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  골칫거리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드레이프(Drape)라 불리는 ‘골칫거리’다.



Anderson & Sheppard를 위시한 English Drape Cut의 계승자들 외에도, 드레이프를 그들의 스타일에 접목시킨 이탈리안 하우스들이 존재한다.


    

    작년 말, 테일러와 수트 실루엣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같은 테일러에게서 같은 모델 (싱글과 더블브레스트 수트)의 수트를 여러 벌 주문하고 있기에,  수트들 사이에 나타나는 아주 미세한 차이를 감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난 그에게 최근 수령한 싱글브레스트 수트의 착용감이 이전의 것과 확실하게 달라졌음을 이야기했다. 기존의 수트에 비해 최근에 주문한 쪽의 수트가 분명 가슴 쪽에서 더 슬림해져 있었다. 실루엣 상으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착용감에 있어서는 분명히 핏에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이전의 수트가 더 편안했다.


    테일러는 내 몸이 너무 커 보일 것을 걱정하여 임의로 패턴을 조금 수정했음을 알려주었다. 단신이지만 웨이트 운동을 즐기는 탓에 내 상체는 꽤나 큰 편이고, 테일러 역시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임의로 패턴에 손을 봐준 듯했다. 거울 앞에 멈춰 서서 수트를 살피는 눈은 간사하기에, 그것만으로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어려웠다. (게다가 그 차이는 정말 1cm 안팎으로 미세할 터)그러나 착용감에 있어서는 분명, 공간이 조금 더 마련된 수트 쪽이 더 편안했다.


    난 몇 달 간의 고민 끝에 그에게 이전의 실루엣이 더 좋았던 것 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웬만해선 모든 걸 테일러의 뜻대로 맡기는 이전까지의 원칙에서 조금은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이제 그와 나 사이의 조율 과정도 '정답’이 없는 ‘그레이 존'으로 진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드레이프 컷의 대중화에 기여한 대표적 인물, 알란 플러서. 꾸밀수록 '남자'가 되는 인간(이탈리안)과 꾸밀수록 '중성화'되는 인간(영국/미국) 중 분명 후자에 속하는 남자다.


    한 인터뷰에서 안토니오 리베라노는 심플한 남자만이 우아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늘은 이 구두를 신을까, 저 수트를 입을까 등의 문제로 한참을 고민하는 남성은 우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난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의 아틀리에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아한 남자는 굉장히 심플하게 옷을 입으며, 자신은 그러한 남자를 '시뇨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심플함'은 더할 나위 없는 자연스러움을 가정한다. 이는 물론 편안한 착용감을 필요로 할 테다. 다만 수트와 몸의 조화에 있어서 그 정도의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심플함이란 단어는 내게서  표지와 포장지를 몽땅 제거한 가죽 제본의 책 한 권을 떠올리게 한다,  묵직하게 내 손바닥 안에 쥐어진, 코트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내 손 위에서 완벽히 제 자리를 찾은, 거추장스러운 껍질은 모두 벗어던진 채 알맹이만 남은, 그렇지만 더 필요한 것이 없는 흡족스러운 그런 모양새. 익숙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을 건네주는 매력적인 사상가/작가의 책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처음 비스포크 수트를 오더 할 때부터 그러한 군더더기 없이 편안한, 가장 심플한 수트를 기대했다. '묵직한 영국 원단의 싱글브레스트 수트를 비스포크로 하나 맞추면 되겠지’ - 라고 쉽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난 '심플함'을 구현하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고뇌’가 동반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체험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소매의 길이를 '정확하게' 잡아내야 했고, 그 후에는 이탈리안 식의 짧은 바지 기장을 그대로 둘 것인가 하는 문제로 혼자만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버트닝 포인트의 높이로 골머리를 싸메야 했고, 어깨의 핏 역시 거듭 내 머리를 갸우뚱 거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의 영역 속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반대로 말하면 오답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서, 그것을 ‘나의 답’으로 선언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고뇌의 바다와도 같은 원단 선택에 관해선 그저 절언 하겠다)


    드레이프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역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발견 중 하나였다. 처음 수트를 주문할 당시의 난 그런 거추장스러운 '여유분'의 옷감에 대해 딱히 별다른 생각을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것쯤은 테일러에게 맡겨버리면 되겠거니...라며 가볍게 치부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심플함을 말할 때, 아보카토, 세르지오 로로 피아나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Franco Minucci.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노타이 룩이다. 세미나라 수트, 마리니 로퍼.



1.a) 가슴 드레이프

       

    난 가슴 드레이프가 어느 정도 있는 재킷을 선호한다. 우선 그것이 상체의 움직임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심미안적 요소와 착용감은 완벽하게 구분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편안하지 않은 수트가 '편안해 보일' 수는 없으며, 편안해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남자가 우아해 보이는 일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편한' 옷만을 추구한다면, 분명 지나치게 헐렁하거나, 주름이 많이 잡히는 옷이 나오기 십상이다. 구현해내긴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상적인' 균형 - 이것이야말로 드레이프의 양을 고민하는 테일러가 추구하는 것일 테다.


     이탈리안 시네마의 거물 둘, 비토리오 데 시카와 토니 세르비로의 영화 속 수트들을 비교함으로써 드레이프의 이점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영화 사이 50년의 터울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가 같은 브랜드(?)의 수트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빈첸초 아톨리니와 치로 팔레르모가 이끌던, 이제는 전설이 돼버린 원조 사르토리아 아톨리니(Sartoria Attolini) (비토리오 데 시카), 한쪽은 기성복 메이커로 변신한 체사레 아톨리니의 수트를 입고 있다 (토니 세르비로) (두 배우 역시 모두 나폴리 출신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성복 브랜드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의 조상뻘인 오리지널 아톨리니 수트를 살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데 시카는 빈첸초가 독립하기 이전에 재단사로 근무하던 Rubinacci의 고객이기도 했다- )  


(빈첸초 아톨리니-치로 팔레르모의 공방은 현재 치로 지졸피 Ciro Zizzolfi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 그렇다면 사르토리아 아톨리니의 진정한 후계자는 체사레 아톨리니, 스틸레 라티노(Stile Latino)가 아닌 Ciro Zizzolfi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테다)


오늘날의 아톨리니 수트와 달리 두드러지는 어깨 셔링(마니카 마피나), 더블 스티치가 발견되지 않는, 좀 더 여유 있는 실루엣의 수트다(벤트리스의 선택도  클래식하다)
가슴 위 세로 주름이 잡힌 데 시카의 아톨리니 수트와  밀착된 가슴, 머신 스티칭, 플랩-패치 포켓이 돋보이는 클라크 게이블의 아이비스타일 수트도 함께 비교해 보자
기성복 메이커로 변모한 아톨리니의 수트는 분명 더 슬림해 보인다. 2012-3년 당시의 유행을 반영하는 것일 테다.


작은 움직임에도 버튼을 중심으로 재킷의 실루엣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허리도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가슴도 슬림하게 재단돼 있다)
사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지의 볼륨감이지만, 바지에 대해서는 추후의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어느 쪽도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영상으로 본 세르비로의 수트는 가슴과 허리 쪽에 여유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약간의 움직임 만으로도 버트닝 포인트에서부터 재킷의 실루엣이 무너지고 있다. 극 중 그의 모습이 멋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수트만을 두고 봤을 때, 약간의 움직임으로 저 정도로 실루엣이 무너지는 수트가 우아해 보이기는 어렵다. 2013년 영화이기에 당시의 유행을 반영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현재 판매되는 아톨리니 수트 보다도 (올바른 사이즈를 가정했을 때) 더 슬림해 보인다.


 

주인공의 첫 등장 장면이 이토록 인상적인 영화 역시 드물 테다.  토니 세르빌로와 소렌티노, 두 나폴리 남자의 조합은 늘 환상적이다.


Look at my face, b.

 


    테일러링에 있어서 드레이프(Drape)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그것은 옷이 착용자의 몸에 걸려 있는 모양새를 가리킨다. "13-14oz의 우스티드 수트가 7-8oz의 라이트웨이트 수트보다 더 좋은 드레이프를 보여준다(Drapes better)"는 표현의 의미는 고중량의 원단이 하늘거리지 않고, 조금 더 보기 좋게, 테일러가 완성 단계에서 다림질로 잡아준 라인을 잘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수트의 올바른 핏이 티셔츠, 카디건, 블루종의 그것과 달리, 몸에 밀착된 것을 가리키지 않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드레이프는 테일러가 수트의 가슴과 등 쪽에 추가하는 '여분'의 볼륨(Excess Cloth)을 가리킨다. 좀 더 남자다운 상체를 연출하기 위해 옷에 입체감을 더하거나, 착용 시 움직임을 편하게 하기 위해 특정 부위에 원단을 조금 더 할애한 후, 다림질로 그 부분의 원단을 늘려주는 것이다.  


드레이프 컷의 창시자는 윈저 공작의 테일러, 숄티(Scholte)라 알려져 있다. (사진: Parisian Gentleman)


(잉글리시 드레이프 컷의 역사에 관해선 이미 지난 포스트에서 다룬 바 있기에, 여기에선 설명하지 않겠다)


점선이 드레이프가 가미되지 않은 비교적 슬림한 수트, 선명한 선이 드레이프 컷의 재단 선이다. 여유분이 추가됨을 알 수 있다. (사진:tuttofattoamano)

 


    가슴 쪽에 드레이프가 최소한만 할애된 '깔끔한' 가슴을 선보이는 수트들은 착용감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90년대 Anderson & Sheppard의 재단사로서 드레이프 컷 수트 재단을 맡았던 Tom Mahon은 모던 테일러링이 추구하는 깔끔한 (여분의 옷감이 최소화된) 가슴과 등판의 수트는 그 어떤 마술을 부리건 간에, 드레이프가 가미된 수트만큼 편안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치포넬리 하우스의 로렌조 치포넬리. 슬림한 가슴, 슬림한 소매 , 로프드 슬리브 헤드. 자비/여유를 찾기 힘든 핏이다.(사진:Milanese Special Selection)


    이와 같은 단언은 가슴은 작게, 소매는 크게, 거기다 소매를 앞쪽으로 부착시킴으로써 팔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만드는 수트를 제작하는 치포넬리 하우스 컷의 철학과 상반되는 것이다. 치포넬리 수트를 직접 입어본 경험은 없으나 (유키오 아카미네가 지적하듯 치포넬리 수트의 실루엣은 지나치게 여성적이다 ) 아무리 팔의 움직임이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어깨를 뒤로 젖히거나, 몸을 옆으로 돌릴 때, 이러한 형태의 수트가 드레이프 컷의 수트만큼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편안함'에도 레벨이 존재하기에). Hugo Jacomet, Simon Crompton 등, 치포넬리 수트를 사랑하는 이들 역시 치포넬리 수트에는 ‘자비’가 없음을 고백한 바 있다.

 

 

'톰 포드 사진스러운' 사진을 올리고 싶지 않아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사진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늘 카메라를 의식하는 인간. 사진 속 그는 언제나 느끼하다.

    수트의 인상에서 아무래도 가장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앞모습이다. 치포넬리, 헌츠맨, 테일러 케이드, 또는 슬림한 실루엣을 추구하는 뉴 스쿨 나폴레탄 사르토들처럼  아주 깔끔한 가슴을 선호하는 하우스들을 제외하고선, 어느 정도의 드레이프는 영국식, 이탈리아식 수트를 불문하고 쉽게 발견된다. 다만 드레이프의 처리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한다.


     드레이프의 처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뉠 수 있다. 단단한 부자재를 통해 부풀어 오른 '단단한' 드레이프와, 부드럽게 세로 주름이 잡히는 드레이프가 있다. (물론 이러한 비유는 어느 정도의 비약을 가정한다. 대부분의 수트의 경우 드레이프는 부분적으로는 '부풀어 오르고' 부분적으로는 '접히기' 마련이다)


    '단단한 드레이프'의 예시로는 톰 포드(Tom Ford) 수트가 있다. 톰 포드 수트의 실루엣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특유의 볼륨감을 자랑하는 가슴이다. 이탈리안 수트에 비하면 어깨 패딩 역시 두꺼운 편이지만, 착용자의 가슴에 가히 '웅장한' 볼륨감을 가미하는 앞판 드레이프, 넓은 가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라펠, 그 아래로 급격하게 조여드는 허리 라인과 길게 내려오는 스커트(특히 윈저 모델)야말로 톰포드 수트의 시그네쳐라 할 수 있겠다.


'부풀어오른' 가슴  드레이프가 두드러지는 사이몬의 A&S 수트와 강한 어깨 패딩, 밀착된 가슴이 특징인 리처드 앤더슨의 수트를 비교해 보자 (사진: Permanent Style)



    이러한 종류의 '드레이프'는 보통 세로 주름을 만들기보다는 가슴이 부풀어 오른 형태를 유지하는데, 이와 같은 '단단함'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심지의 두께다. 위의 사진들의 수트에서 우리는 그들 수트의 캔버스가 이탈리안 수트들 보다 두꺼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소프트 테일러링을 대표하는 이탈리안 수트들은 드레이프가 가미되는 경우, 보통 세로 주름이 가슴 쪽에 잡히게 된다.


치로 팔레르모의 공방, 원조 사르토리아 아톨리니의 명맥을 잇고 있는 치로 지졸피의 수트가 궁금해질 정도다. 아톨리니를 입은 데 시카는 정말 멋지다
가슴, 어깨 쪽에서 상당량의 드레이프가 발견되지만, 팔꿈치 아래로의 소매는 꽤나 슬림하다.


가슴에 세로 주름들을 만들어내는 소프트한 드레이프의 예시. HD 버전으로 그의 재킷을 세밀히 관찰했지만, 프런트 다트를 찾을 수 없었다. 오픈 쿼터 역시 리베라노를 연상시킨다


Tuttofattoamano 블로그의 제프리 디덕은 이러한 '소프트한' 드레이프를 만들어내는 요소 중 하나는 가슴에 추가되는 체스트 피스를 암홀에까지 연장시키지 않고, 가슴의 중간 지점까지만 오게 함으로써, 가슴과 암홀 사이에 체스트 피스가 덮지 않는 '부드러운' 공간을 마련하는 심지 구성이라고 말한다.


빈티지 앤더슨 앤 쉐퍼드 수트의 내부 사진. 체스트 피스가 가슴 중간까지만 내려온다- 암홀 쪽에는 한 겹의 캔버스만을 남긴다(사진:Tuttofattoamano)

(이 점에 관해서 테일러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의견을 구했다. 그는 드레이프의 '단단함'의 차이에 있어서 체스트 피스의 유무보다는 부자재 자체의 두께/그 종류의 차이가 더 결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조심스레 그의 의견을 공유해주었다. )



가슴의 볼륨을 더해주기 위해 Dog Cut이라 불리는 작은 다트가 추가되기도 한다. A. Caraceni와 Steven HIthcock에서 즐겨 쓰는 테크닉인데, 리베라노를 포함한 그 외의 테일러링 하우스들에서도 필요에 따라 종종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난 이 작은 다트들의 효과를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다. Dog Cut에 대한 정보는 추후에 조금 더 탐색해보도록 하겠다.


 

사이드 바디와 Dog Cut이라 불리는 라펠 아래 다트를 활용하는 더블브레스트 재킷 패턴 (사진: Steven Hitchcock Instagram)



1.b) 스커트(재킷 하단) 처리


     가슴에 여유분의 원단이 추가된다면, 허리에서 '조여져야' 하는 볼륨 역시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연출되는 역삼각형의 실루엣이 드레이프 컷 본연의 매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드레이프가 가미된 수트의 허리선과 스커트에도 역시 각별한 신경이 요구된다. 상체의 역삼각형을 부각하기 위해 허리 아래쪽을 몸에 밀착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다트의 활용과 사이드 바디의 활용으로 축약될 수 있다.

프런트 다트와 사이드 다트만을 이용해서 허리선을 연출하는 스티븐 히치콕의 드레이프 컷 수트. (사진: sartorial notes)
사이드 바디로 재단된 스티븐 히치콕 수트. 부푼 가슴 아래로 급격하게 좁아드는 허리선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https://thesavilerowtailor.co.uk/)


    스티븐 히치콕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테일러 중 하나다. 그는 영국식 사이드 바디 재단과 사이드 다트와 프런트 다트의 두 개의 다트를 활용하는 피시 컷 재단 중 하나를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 앤더슨 앤 쉐퍼드식 재단인 피시 컷(프런트+사이드 다트) 재단 외에도 사이드 바디를 활용하는 이유를 원단의 경량화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벼운 원단의 경우, 고중량 원단처럼 다리미의 열을 활용하여 원단을 수축시키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에, 가슴에 추가된 볼륨감을 감안했을 때, 프런트 다트만으로 좁아드는 허리선을 연출하기  어려울 수 있고, 이러한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사이드 바디를 통해 수트의 형태를 더 확실하게 잡아주는 것이다.


 반면 나폴레탄 수트는 사이드 바디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다트를 밑단까지 내리는 방식으로 수트 재킷의 스커트/하단을 몸에 밀착시킨다. 데 시카의 수트를 잘 보면, 여유가 있어 보이는 가슴 부분과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복부에도 불구하고 허리 부분과 스커트가 몸에 잘 안착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힙 포켓 아래로까지 이어지는 프런트 다트를 통해 입체감을 구현하고 있는 데시카의 재킷. 반면 클라크 게이블의 수트는 너무 작아 보인다(당시 그는 극심한 체중 변화를 겪고 있었다).
가슴 드레이프 외에도 복부 쪽에 상당한 볼륨을 요구하는 데 시카의 체형은 복부 아래 스커트를 밀착시키기 위해 밑단까지 내려오는 나폴레탄 프런트 다트를 필요로 했을 것



    프런트 다트가 생략된 피렌체 수트의 경우, 겨드랑이에서 포켓으로 이어지는 사이드 다트 하나로 가슴-> 허리의 차이를 연출해야 하고, 따라서 피렌체식 수트 제작에 있어서 다림질을 통한 원단의 수축은 필수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드레이프 컷의 창시자로 알려진 숄티가 윈저 공작을 위해 제작한 수트들에는 프런트 다트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겨드랑이에서 힙 포켓으로 이어지는 사선의 사이드 다트만을 활용한 (오늘날 피렌체식 재단으로 통용되는) 윈저 공작의 수트는 오늘날의 피렌체식 수트와 그 미학적 관점을 공유한다. 체크 트위드 재킷을 사랑했던 원저 공작은 재킷 앞판의 패턴을 깨뜨리지 않는 프런트 다트의 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을 테다.



초크스트라이프 플라넬 더블브레스트 수트 차림의 윈저 공작. 숄티가 재단한 재킷들에서 프런트 다트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머리의 알란 시. 브라운 초크스트라이프 플라넬 수트. 리베라노. (사진: The Armoury Tumblr)




2. 등의 드레이프


재킷의 후면, 어깨의 견갑골 주변에 추가되는 드레이프 역시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다.


Tom Mahon이 견갑골 쪽 드레이프가 팔을 편하게 움직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임을 설명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ZUoa3WJHI

 

물론 등판 쪽에 드레이프를 추가하는 일 또한 착용감과 심미안적 요소가 모두 고려돼야 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하루 중 팔을 앞쪽으로 뻗은 채 보내게 되는 시간이 많기에, 등 쪽 드레이프는 충분한 편이 좋지만, 지나치게 많은 드레이프는 재킷의 등판을 '지저분'하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보기 좋은 '깔끔한' 등판은 경우에 따라 불편할 수 있기에,  가봉 과정에서 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시켜보며, 움직임에 충분한 것인가를 체크해보는 쪽이 좋다. 난 광배근 역시 큰 편이어서 드레이프가 충분한 재킷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재킷을 입은 채로 기차, 비행기의 수납칸에 짐을 올리거나, 신발끈을 묶거나, 책상에 오래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도 약간의 드레이프는 필수적이다. 최근 나는 가봉 과정에서 등에 0.5cm씩 드레이프를 더했는데, 역시, 소매의 무게 덕분에 뒤에서 봤을 때, 눈으로는 거의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없었음에도, 팔의 움직임이 확실히 편안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프리 디덕 역시 ‘소매의 무게에 끌려 들어가는 여유분의 양이 상당하기에, 테일러가 등에 '숨겨 넣을 수 있는' 드레이프의 양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 평한 바 있다.








3. 소매의 드레이프  


     전술한 이메일에서 나의 테일러는, 드레이프를 논하며, 소매에도 여유분의 볼륨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착용자가 팔을 움직일 때, 소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거의 모든 하우스들은 작은 암홀에 큰 소매를 부착시키기에 겨드랑이에 소매쪽의 여분의 옷감을 숨기게 된다. 그러나 소매 아래쪽에 얼마나 많은 드레이프를 추가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하우스들은 각기 다른 답을 제시한다.

소매 아래/겨드랑이에도 여유분의 옷감이 상당하다. 높은/좁은 암홀 역시 눈에 띈다.
당시 아톨리니 수트의 탁월한 퀄리티를 증명해주는 영상이다. 재킷이 도무지 몸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집에서 따라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당신의 수트에 실망하게 될 테다. 


데 시카의 수트와 비교했을 때, 소매 쪽이 분명 더 슬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om Mahon은 90년대 앤더슨 앤 쉐퍼드가 팔의 언더 슬리브에 다른 하우스들보다 확연하게 많은 드레이프를 추가함으로써 광장히 편안한 수트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수트는 물론 뒷모습에서 는 여분의 옷감 때문에 비교적 ‘깔끔하지 못해’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진다.


90년대 앤더슨 앤 쉐퍼드 수트에는 언더 슬리브 쪽에 여유분이 상당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ZUoa3WJHIE


언더 슬리브를 암홀과 어긋난 형태의 직선으로 재단함으로써 소매 밑에 드레이프를 추가하는 방식의 재단을 보여주고 있는 Tom Mahon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8cGMYzoAM4&t=43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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