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착각했다. 아니,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하단의 음악(플레이리스트)과 함께 감상하시면 좋습니다.
- 목 차 -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때가 되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내 부모를 떠나보내고, 나도 곧 그들처럼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10년 동안 나의 동료와 선/후배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부단하게 찾아다녔다. 아마, 축의금만 천만원이 넘을 것이다. 여전히 혼자인 채 삶의 방향조차 못 잡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의 청첩장은 이제 부담이다.
내 통장 잔고 역시 0과 마이너스를 오가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운 좋게 월급이라는 게 들어와 밥을 먹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 연명한다. 어느 덧, 주변 친구들은 부모를 떠나보내고 있었고, 나 또한 나를 키워준 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설렘’과 ‘감정’의 역치는 무뎌지고,‘고통’과 ‘상처’를 무덤덤히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시간이니 그저 참고 견뎌야만 한다고, 심장에 이성을 이식하고 남들 앞에서 약한 척 하면 안 된다고. 이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몇 날, 몇 일 밤을 지새우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채로 일터로 출근해, 평범한 대화로 소중한 것들을 지워버려야 한다. 그게 쿨한 거니까. 이젠 누군가를 사랑할 힘도 정신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꿈꾸던 것을 하나 둘씩 이루며,‘욕망’과 ‘소유’를 양손으로 저울질한 채, ‘자만’과 ‘자부심’과 ‘자존감’의 경계를 스스로 허무는 순간,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몇 푼 안 되는 월급과 욕값으로 번 보너스로 평소에는 어울리지도 않을 루이비통과 구찌와 에르메스 매장을 기웃거리다, 씨발비용을 헌납하고, 나에게 전리품 하나를 선물로 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30대 중반 즈음, 차 한 대는 있어야 결혼이든 연애든 뭐라도 한다며 매장을 헤매다, 우연히 외제차 3대를 한 꺼번에 사는 사람을 보았다. 그의 시원한(?) 배포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참으며, 견뎌온 내 시간들과 틈틈이 모은 돈과 빼곡히 짜여진 엑셀시트의 고금리할부 플랜은 개미의 한줌 먹이도 안 돼보였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차를 사야하나? 하면서도, 소유욕에 눈이 먼 채 나 자신에게 없는 자존감을 남들의 시선과 잣대로 포장하려 애썼다. 지금 내 옆자리에는 실체없는 자부심만 동승한다. 감가상각된 이 차의 가치만큼 나의 가치도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부모의 언어를 귀로 흘려보내고, ‘고집’과 ‘신념’으로 지은 나의 허술한 성이, 망각이,나를 있게 한 세월을 덮어 버릴 때,어른이라고 착각했다. 어느 순간 '부모에게 혼났다.'가 아닌, '부모와 싸웠다.'로 바뀐 내 언어가, 내 어줍잖은 권위로 그들의 권위를 무시했던 내 행동이 내가 어른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그렇게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다. 살아온 궤적을 서류 한장과 몇 분의 만남으로 포장해 인생을 건 취업 카지노에서 합격의 잭팟을 맛보았다. 통장을 스쳐가는 빠듯한 월급을 숨만 쉬고 모으면 언젠가는 서울에 내집 하나를 가질 거란 희망을 가졌을 때, 그곳에서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퇴근 후에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상상했을 때, 난 곧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강남 8학군에서 한달에 300만원짜리 과외를 받아, 당당히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배와 사장실 휴지통을 같이 치운다. 그와 나의 한숨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매일같이 뉴스에 떠도는 LH 직원들의 땅투기 소식에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되는거라며, 집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지난 3년동안 139군데의 모델하우스와 분양사무소를 발품 팔며 돌아다녔지만, 서울 하늘 아래 내 집 하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카드값과 생활비에 버거움은 희망을 꿈조차 꿀 수 없는 불면의 밤으로 변해있었다.
비싼 교육을 받고, 힘들게 대기업에 합격한 '잭팟의 착시'는 어느 덧 사장실의 쓰레기와 함께 뒹구는 현실을 눈 앞에 펼쳐놨고, 온전한 터전을 갖고자 했던 내 통장에 쌓인 저금리의 소액데이터는 '후회'만 가득한 채 투기의 허상을 뒤쫓게 했다.
그렇게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다. '그냥' 청춘을 보냈던 내가, 30대에 생업전선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40대에 인생의 많은 것을 수확하여, 그것을 누리며 삶의 황혼기를 맞이할 수 있을거라 착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삶의 질이 좋아져, 평균 수명을 90세 이상으로 바라본다는데, 우리 어른들은 50대 이전에 은퇴를 고민하게 되었다. 먹고 살게 넉넉하지 못 하다면 은퇴 후 40년 동안 매 순간 불안과 싸워야한다.
그렇게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다. 내 자신이 행복한 것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구다보면 부는 언젠가 따라온다는 어느 어른의 충고를 따르다보면, 돈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부자가 될 것이라 착각했다. 어른들은 항상 정치인 같은 소리를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다.꿈을 없애고, 현실에 순응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고,무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하면 어른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나도 정치인 같은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주어진 조건과 기회에 감사하며, 나름의 노력을 다해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면 잘 못 산 인생도 아니 건만은 나는 여전히 20대 어두운 청춘 골목 어느 즈음에 머물러 있다. 결혼도, 가정도, 그렇다고 버젓한 월급조차 없는 어른. 나는 담배 연기보다 짙은 한숨과 독주보다 쓰라린 위액으로 속을 쓸어내리는 몸둥아리 하나로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일터로 향한다.
플레이리스트 그냥 4 편 어른에게 한편의 시와 위로가 될 음악들
Sam smith - Fix you (originated by Coldplay)
Ed Sheeran - Afterglow
Bon Iver - Holocene (Official Music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