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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Oct 17. 2019

어느 희안하고 특별한 글쓰기에 관하여

난임 일기 5. 아무나 쓰지 못하는 글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오래동안 일기를 써왔다. 매일 쓸만큼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살다보니 기록하고 싶었던 날들이 여러 날 있었다. 남편을 처음 만난 무척 설레던 날이라든가 (그렇다, 나는 금사빠였다), 오래 전 일이라고 하면 고등학생 때 크게 용기내어 학생회에 지원했는데 단 번에 탈락했던 날이라든가.


육 년 전부터는 블로그에 부지런히 독서 리뷰도 써왔다. 서평이라고는 절대 부를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에는 늘 '재밌었다' 라든가 '어려웠다' 같은 진부한 표현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수준은 낮다 치더라도 나름 꾸준히 오래 동안 책에 관한 글을 써왔는데 조회수는 항상 바닥을 기었다. 그러다 한 번은 가수 에일리의 다이어트 방법을 바탕으로 한 나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정리하여 글을 올렸더니 단번에 내 블로그의 인기 포스팅이 되었다. 어쩌다 TV에 에일리가 나오는 날이면 조회수가 1,000을 넘기도 했다.


작년 2월부터 나는 난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여태껏 써왔던 글들과는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글쓰기이다.



1. 나는 매 번 글을 쓸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라며 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매거진을 새로 만들면서 생각했다. 이 매거진에는 글이 딱 하나만 실렸으면 좋겠다고. 처음 올린 글이 '임신은 쉬운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니에요' 라는 글이었는데, 그 글이 운이 좋게 다음의 추천 랭킹 글에 뜬 것 같았다. 글을 발행한지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조회수가 1,000을 찍었다. 작가의 서랍에 저장했던 글을 저녁 퇴근 길에 발행했던 건데, 그 날 잠들기 전에 조회수가 4,000을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회수가 1,000단위를 넘을 때마다 브런치에서는 내 핸드폰에 알림 팝업을 띄워줬다. 팝업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브런치에서 처음 썼던 그 난임 일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썼던 일기서부터 서른 살이 넘을때까지 써왔던 모든 글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조회수에 행복감에 젖어 나는 생각했다.


두 번째 난임 일기는 없을거야.


이 다음부터 나는 브런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육아 일기를 써야지.



지금 이 글은 난임 일기 5 이다.

이 난임 일기는 여기서 끝이기를 바란다.



2. 이 글은 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글이다.


작년, 처음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을 때 나는 회사 사무실에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입꼬리가 올라가서 웃음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주위 동료들 모두 모아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모든 카톡 단톡방들에 자랑글을 올리고 싶었다. 나 브런치 작가 됐다고. 그런데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브런치를 지원할 때 썼던 계획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난임 일기'를 올리겠다는 거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회사에도 친구들한테도 내가 시험관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부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에 겨우 남편에게 자랑을 했는데, 남편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브런치가 뭐야?' 라니.


나는 남편에게 시간과 공을 들여 글쓰기 플랫폼으로서의 브런치의 장점에 대해

그런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남편이 내 설득과도 같은 설명에 얼만큼 수긍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 동안 써왔던 난임 일기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동시에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큼의 난임 일기는 쌓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책을 내게 되면 아마도 필명을 쓰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책을 어디에까지 알릴 수 있을까.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내 SNS에서 홍보할 수 있을까?



3.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쓰고 싶지만, 자꾸만 진지해져버린다.


나의 욕심은, 난임을 겪는 사람이든 겪고 있지 않은 사람이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진지한 말투로, 내가 시험관을 겪느라 이렇게 힘들어요, 하고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정도1)의 무게로 난임 일기를 쓰고 싶다. 우울 백서인데 그럼에도 판타스틱한 우울 백서2)의 느낌으로 쓰고 싶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자꾸만 침잠하는 기분이 된다. 내가 시험관 2년차 라는 단어를 키보드로 치고 글자가 화면에 뜰 때마다, 벌써 2년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내가 왜 시험관을 시작했는지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선천적인 자궁 기형을 언급할 때마다 나는 위축된다. 그러다 절반의 경우 나는 글쓰기를 중단한다. 나머지 절반의 경우 나는 진지해진다. 죄 없는 독자를 붙들고 토로하고 싶어진다. 나, 사실 힘들어요. 그러지 않겠다고 수없이 결심해놓고선.


참 희안하게도, 그렇게 쓴 글들을 사람들이 읽어준다.

투정과도 같은 글을, 결코 짧지 않은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올린 난임 일기의 조회수가 늘어날 때마다, 글 쓰면서 내려앉았던 기분이 올라간다. 글을 쓰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사실 나는 누구든 들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1)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2) 판타스틱 우울백서 - 서귤




난임 일기를 쓰면서 생각한다.

내가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이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은 아니야.

브런치에서 가장 잘나가는 에세이 작가도 난임 일기를 쓸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계속 쓰자.



이번에도 여지없이 길어진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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