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현대사 - 윌 곰퍼츠]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잔이야 말로 나의 유일한 스승이다! 난 당연히 세잔의 그림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 나는 수년에 걸쳐 그의 작품들을 연구했다.
- p135, [발칙한 현대미술사 - 윌 곰퍼츠]
케네스 클라크는 저서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에서, 그림 보는 법을 "미적 감각에 의한 직감적 수용과 지적인 비평의 반복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그림은 두 단계에 걸쳐서 감상해야 하는데, 첫 번째 - 선입견 없이 그림 앞에 서서 전반적인 인상에 사로잡힌 후, 두 번째 - 화가의 생애와 작품 탄생 배경에 대한 사실들을 떠올리면서 조금 더 오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와 같은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동적으로, 아무런 선입견도 없는 상태에서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선가 본듯한 유명한 미술품들을 보고 종종 화가가 누구인지 알아맞추기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 작품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가 편리하게 작동되는 만큼 보통 거기서 끝이나고, 두 번째 단계까지 들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쪽짜리 감상이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 다른 그림들 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던 건, 파리 오르셰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던 폴 세잔의 작품들이었다. 세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 처음 본 세잔의 그림과 조금이라도 알고난 후 오르셰에서 제대로 본 그림은, 동일한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전혀 다른 두 개의 그림이었다.
(모네나 르누아르, 드가, 쇠라의 작품들은 뭘 모르고 봐도 '우와 이쁘다'하는 감정이 저절로 솟는다. 그런데 아무 정보 없이 접한 세잔의 그림들(특히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같은 그림들)에 대한 첫 감상은, '뭐지, 이게 왜 유명하지?' 였다.)
세잔을 처음으로 (어쩌면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 읽고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만난 건 [처음 읽는 현대 프랑스 철학] 중 몸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장(Chapter)에서였다. 메를로 퐁티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세잔. 그는 풍경을 그릴 때, 하루 종일 조금씩 바뀌는 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양과 그림자,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 그리고 무엇보다 관찰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온 몸으로 감각하고 받아들여' 그렸다고 했다. 나는 이 뜻을 절반만 이해했다.
두 번째로 세잔을 만난 건 작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필수 투어 코스 중 하나로 세잔의 아뜰리에에 들렀을 때였다. 중심 시가지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서 만난, 시골 길 옆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던 이층 집. 예상보다 작은 공간에 1층은 그나마 안내소 및 기념품을 팔고 있었던 것 같고(기억은 정확치 않다), 2층에 올라가서야 그의 작업실을 훔쳐볼 수 있었다. 세잔의 대표작들은 하나도 전시되어 있지 않았고 (전시회가 아니라 작업실이니까 당연히 그럴만도 했다), 그의 작업 대상이었던 사과, 배, 사다리 같은 정물들만 곳곳에 놓여 있는데, 그 공간을 둘러보는 데는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 한 때 세잔이 작업을 했던 공간에 내가 잠시 있다 가는구나 - 정도의 감상으로 만족했던 경험이었다.
세 번째는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서. 마침 내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 5층 이벤트 전시관에서는 세잔의 초상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에밀 졸라를 비롯해서 세잔이 직접 그린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들, 그의 자화상, 그리고 벽 하나를 채웠던 그의 아내 피케의 뻣뻣한 얼굴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내에게 아무런 감정도,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 그 그림들은 초상화 보다는 정물화 같아 섬뜻했다. 내 남편이 나를 그런 얼굴로 그린다면, 나는 정말이지 슬퍼질 것 같았다.
오르셰 방문 후 일년이 지난 시점, [발칙한 현대미술사 - 윌 곰퍼츠]를 읽다가 네 번째로 세잔을 만났다. 그는 그 동안 내가 얕게나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컸던, 미술사에서 한 가닥 하던 사람이었다. 그를 더욱 오래 기억하고, 다음 번 그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더욱 깊이 감상하기 위해, 몇 가지 문장들을 발췌해 둔다.
"세잔은 처음으로 두 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119)
평론가 바버라 로즈는 대(大) 화가들과 세잔의 차이를 제대로 지적했는데, 전자가 '이건 내가 아는 건데'에서 시작한다면 세잔은 '과연 내가 이걸 아는 걸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했다. (122)
세잔은 인간에게는 두 눈이 있어 양안시를 사용한다는 근거를 들었다. 더군다나 양쪽 눈은 각각 다른 시각 정보를 기록한다(물론 이 두 가지 심상은 뇌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왼쪽과 오른쪽 눈이 바라보는 풍경은 미묘하게 다르다. 더욱이 인간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면 고개를 길게 빼거나, 한쪽으로 기울이거나, 앉은 자세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거나, 일어나는 등 움직인다.
하지만 과거(그리고 지금)의 예술품은 마치 부동의 렌즈 하나를 통해 대상을 본 양 만든 것이다. 세잔은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당대 그리고 과거의 예술이 안고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 즉 단일한 시각이 아니라 적어도 두 가지 시작에서 바라본 참된 시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123)
그는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물병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물병의 이미지를 하나로 합쳤다.
나무탁자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판을 앞쪽으로 20도 정도 기울여 사과와 복숭아를 더 잘보이게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통용된 수학적 원근법을 적용했다면 과일들은 바닥으로 데구루루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세잔은 원근법을 포기하는 대신 진실을 손에 넣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우리가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을 바라보듯이 세잔은 여러 각도를 뒤섞어 시점을 표현했다.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