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시. 가을맞이 시 추천

계절감 - 오은

by 모레바람



시집을 읽다 보면, 시마다 각각 나름의 숫자를 매길 수가 있는데,

이 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를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에 따라 0부터 10까지의 척도에서,

0의 시와 9의 시, 그리고 그 사이의 시들이 있다.

(시인의 뜻을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테니 - 어쩌면 시인 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

10의 시는 있을 수 없다)

나에게 2의 시는 누군가에겐 7의 시이기도 하다.


처음 시집을 구해서 읽었던 게 김선우 시인의 녹턴이었는데,

0과 3 사이에서 내가 시를 읽는지 시가 나를 읽는지 어쩔 줄 몰라하며 페이지만 넘기다가

간혹 6이나 7의 시를 만나면 내가 이해한 만큼만 부분적으로 공감하며 귀퉁이를 접었다.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성들이 세밀한 단어들을 통해 전해지는 시를 특히 좋아했다.


일년 동안 천천히 시를 읽다 보니, 낮은 숫자의 시도 애정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현대 시를 좋아하게 된 과정은 한편으로는 모든 시에 공평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도 우리는 시를 배울 때마다 단어 하나 하나에 부여된 함축적 의미를 달달 외고는 했는데, 막상 시인이 수능 기출문제로 출제된 자신의 시의 해석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했었나 자신 있게 풀었는데 오답이었다고 했던가 하는 일화를 들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이미 고등학교 때 배웠다. 시는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고, 해설이 필요하고, 기껏 해석해 놓아도 시인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점을 인정하고 시를 읽는 경험과 인정하지 않고 시를 읽는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계절감>은 오은 시인의 시집 [유에서 유]에 가장 처음으로 수록된 시이다.

이 시에서 자꾸만 등장하는 개가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귀퉁이를 좋아하고,

기대고 기다리고, 주머니를 더듬고, 나도 모르게 뒤돌아 보고, 땀이 흐르는데도 어찌하지 않는 것들이 모두 내 일 같이 느껴지고,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는 문장이 특히 좋다.


천천히 필사하며 곱씹어본 결과, 이 시는 나에게 4의 시이다.




덧붙임.

내가 오은 시인을 처음 알게된 건 그의 시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본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였는데,

국어 사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인상 깊었다. 과연 그의 시들은, '낭독할 맛'이 난다.


Q. 많은 사람이 시인 오은에 대해 '단어를 참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 비결이 있나

A. 단어를 사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매일 봤다. 사전을 딱 펼쳐서 '아지랑이'처럼 발음을 했을 때 '말 맛'이 있는 단어를 그 날 하루 동안 꼭 써먹어 보려고 했다. 맥락에 맞던 그렇지 않던 발설을 했을 때 내 단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공부라기 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내가 쓰는 시도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단어가 단어를 불러들이는 글이 많다.

(비즈한국 박혜리 기자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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