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휴직의 끝에서
임신 준비기간 5년, 시험관 시술 3년, 배아 이식 12번, 임테기 두 줄 총 0번. 올 3월 초까지 나의 난임 기록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일 년 간의 난임 휴직도 이제 끝을 보이고 있었다. 복직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어렵게 무급 휴직을 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휴식했다. 그거면 됐다고 마음을 달랬다. 새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가야지. 물론 시험관 시술은 앞으로도 회사 일과 병행하며 계속 진행할 예정이었다. 아직 아이가 있는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일은 이렇게나 간단하고도 대책없는 일이구나. 이제야 나는 당시의 상황들을 한껏 여유로 포장한 채 감추고 덮어쓰고 있다. 3월의 나는 절대 쿨하지 못했다.
아니, 무너져 있었다.
1월에 친한 친구가 둘째를 출산했다. 2월에는 함께 시험관 시술을 받던 친구가 단톡방에 임신 소식을 전했고 3월에는 입사 동기가 SNS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대신 방구석에 혼자 웅크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알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임신은 어떤 제로섬 게임의 결과도 아니라는 걸. 내 주변의 누군가가 임신한다고 그만큼 나의 임신 확률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의 불행과 친구의 행복은 완전 별개의 일이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그걸 확실히 알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축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 4년 차가 되니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습관이 돌아왔다. 회사 사람들 모두가 나의 휴직 사유를 알고 있었다. 일 년동안이나 일을 내팽개치고 자리를 비웠는데 결국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간다는 것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일 년 전까지의 상황이 오랜만에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회사 일과 시험관 시술, 둘 중 하나도 맘 편히 포기하지 못해 욕심 내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만 펼쳐져 낙담했던 날들이었다. 나는 휴직계를 내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왔었다.
3월 중순, 복직 전 마지막 시험관 시술, 13번째 이식을 진행했다. 단 한 번도 착상되지 않았던 지난날들과 마찬가지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알람 한 번 설정하지 않은 채 늦잠을 자고, 침대에 오래 누워 있었고, 배달앱으로 음식을 자주 시켜먹었다. 지난 드라마들을 정주행 하고, 웹툰을 보기 위한 유료 머니를 충전했다. 남편과도 한판 크게 싸웠다. 아무리 이식 후라도 그렇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어떻게 집안일 하나 안 하고 누워만 있느냐는 남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냉담하게 인사 한 마디 없이 출근한 그날, 대청소를 하기로 결심했다. 누워만 있는 건 답이 아니었다. 집이 깔끔해지면 기분도 나아질 것이다. 집 안에서 적당히 움직이는 건 몸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혹시 모르니까, 정말 혹시라도 모르니까 맘 편히 노동을 시작하기 전에 확인하고 가야 할 일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수납장 문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 아기는 4월 1일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임테기의 선명한 두 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