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 Mar 02. 2021

#4. 더럽다고 알려진 인도 여행의 실체

성스럽거나 혹은 더럽거나, 인도 갠지스강

인도 바라나시에는 ‘강가(गंगा )’라는 강이 있다. 우리에게는 ‘갠지스강’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인도인에게 이 강은 힌두교 최고의 성지다. 강이 그 자체로 ‘신’이다. 워낙 성스러운 강이므로 셀 수 없이 많은 인도인이 아대륙 전역에서 매일 같이 찾아온다. 그 신성함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가고자 이들은 매일 이 물에서 목욕한다. 머리도 감고, 당연히 양치도 하며, 종종 수영 대회까지 열린다. 어떤 사람은 국도 끓여 먹는다. 이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다 강에서 이뤄지는 건 전적으로, 강이 신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인이 아닌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목욕도 하는 반면, 인도인은 여기서 화장(火葬)도 한다.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를 강에 뿌리고, 화장하지 못 하는 동물이나 어린 아이, 임산부 등은 바위에 시신을 묶어 강에 풍덩 빠뜨린다고 한다. 사실 특별한 정화 장치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이 목욕과 빨래를 하면 얼마나 많은 노폐물이 쌓이겠는가. 바라나시 대학의 미국인 수질 연구원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총동원해 갠지스강의 더러움을 설파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 많은 시체를 빠뜨렸다니 어쩌면 물귀신이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이방인에게도 갠지스를 즐기는 나름의 방법은 있다. 보트를 타는 것이다. 특히 ‘관광용 보트’라는 걸 타면 사공 겸 가이드인 인도인이 갠지스강과 인도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심지어 한국말을 잘 하는 인도인도 있다. 배가 갠지스강의 중앙 정도에 오자 사공은 유창한 한국어로 인도 문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인도 힌두교에서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후생이 연결된다고 해요. 전생에서 쌓인 죄업들로 현생으로 태어나고, 지금 쌓는 죄업들로 또 그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믿어요.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나쁘게 태어나고, 좋은 일 많이 하면 좋게 태어나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후생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갠지스 강에 와서 몸을 씻으면, 일생에 쌓은 그 죄업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말해요. 나쁜 일을 많이 했어도 그게 다 씻길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인도 사람들, 나이가 들면 죽기 전에는 꼭 바라나시에 찾아와 갠지스강에서 목욕해요.”


하지만 그 말과 반대로 배를 타고 가까이서 본 강의 모습은 오직 더럽기만 했다. 빨래와 목욕에서 나온 하얀 거품이 여러 오물과 쓰레기와 뒤엉켰다. 물 색깔은 그 탁함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고, 심지어 하얗게 불은 시체가 떠다니기도 했다. 그런데도 인도인은 그 한 가운데에서 아무렇지 않게 목욕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짐짓 그 인도인의 건강이 걱정됐다. 그 더러운 물을 보면 분명 무슨 병에라도 걸릴 거라는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배를 탔던 다른 관광객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사공에게 물더라.


그럼 인도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한 뒤 전염병에 걸리면 어떤 생각을 하나요?”


나는 그 물음의 의중을 바로 파악했다. 갠지스강에 대한 인도인의 생각과 현실적으로 걸린 병이 충돌하면, 어떤 인지부조화가 나오느냐에 대한 질문 같았다. 사공도 곧장 대답했다. 그런데 나로선 그 대답이 꽤 의외였다. 


아니요.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 여긴 갠지스 강이니까요.”


사실 나는 한국말도 저렇게 잘하는 사공이 아주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 했다. 그래도 나는 사공을 믿었다. 꼭 그를 변호하듯 한국인 여행자에게 대신 답했다. 


만약 병에 걸리더라도 갠지스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예상 밖에도 그 말에마저 사공은 반대했다.


아니에요. 그럴 일도 없어요. 절대 병에 걸리거나 아프지 않아요. 여긴 갠지스강이니까요.”


그 마지막 한 마디에서 사공에 대한 내 첫인상은 와르르 깨졌다. 실제로 얘기를 깊게 나눠보니 사공은 힌두교에 대해 종교적으로 ‘꽉 막힌’ 사람이었다. 근거도 없이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그 모습이 나로선 좀 답답했다. 


물론, 근거를 빼고 결과만 본다면 무조건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렇게 매일 목욕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인도인은 ‘절대’ 아프지 않은 게 맞는 것 같았다. 챨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따라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라면 자연스레 도태됐어야 맞다. 그런데 어찌 지금까지도 자행이 되겠는가. 다만 바라나시에 도착한 이래 나는 지금껏 그 이유를 ‘면역력’이라고 생각했다. 인도인은 어려서부터 이 물을 접하고 단련 되었으니 면역이 생긴 거라고. 그도 그럴만한 게, 며칠 전 들은 얘기에 따르면 인도인을 보고 따라서 갠지스에서 목욕한 한 외국인은 그날 이후 며칠을 앓았다고 했다. 인도인과 달리 그에게는 면역력이 없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공의 말로 생각하면 이건 또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사공에 따르면 인도인이 아프지 않은 까닭은 ‘면역력’ 덕이 아니라 단지 이 강이 ‘갠지스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외국인도 아프지 말아야 했는데, 왜 아팠던 것인가. 그 부분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공을 비합리적이고 답답한 종교쟁이로 몰아갈 수도 없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한국인 독자 분들은 대부분 과학화 시대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리 생각하실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종교’에 오류가 있듯 과학주의에도 오류는 있다. 무엇보다 그 당시 내 수준에선 사공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으므로, 무조건 거짓이라고 몰고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로선 모든 시시비비의 판단을 유보해야만 했다.




한편, 그 시절 내가 머물던 숙소에는 나 외의 한 명의 투숙객이 더 있었다. 지금까지는 행색을 보니 투숙객 같진 않고 생김새만 나와 닮은 인도 현지인인 줄 알고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오후엔 처음으로 우연히 대화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한국인이었다. 


그는 바라나시에 머문 지는 벌써 두 달이 됐으며, 그 동안 힌두교 문화에 매료됐다고 했다. 심지어 갠지스강과는 사랑에 빠졌는데, 아쉽게도 내일이면 정 들었던 바라나시를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인 오늘은 갠지스강과의 작별을 기념하고자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수영을 하러 갈 예정이라고. 별일 없으면 내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즉각 전에 들었던 ‘외국인 얘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사람은 평소에 자주 수영을 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겉으론 전혀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인도인이 아닌 자가 갠지스강에 수영을 하러 간다는 건 나로선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이 사람은 저 물이 어떤 물인 줄 알고 그러는 것인가. 다만 그의 태도가 워낙 덤덤했어서 나도 짐짓 놀라지 않은 척 했다.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그와 동행했다.


강변에 나가 보트부터 탔다. 관광용은 아니었다. 삼백 미터 정도 떨어진 맞은편에 갔다가 삼십 분 정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강가 횡단 왕복 보트’였다. 열댓 명 정도 승객이 오르자 보트는 출발했다. 우리 둘을 빼고는 모두 인도인이었다. 그런데 보트가 강의 한 가운데쯤 오자 그가 별안간 옷을 훌렁 훌렁 벗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남자가 왜 보는 눈도 많은 데서 갑자기 옷을 벗는 건지 당황스러웠지만, 놀란 눈으로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가방과 벗은 옷을 보트 한 쪽에 고이 모아두더니, 속옷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배 난간에 발을 올렸다. 당장이라도 갠지스강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성적으로 납득은 안 됐다. 어찌 이 더러운 물에 뛰어들려는 건가. 하지만  그건 내 이해 여부와 관계 없는 개인의 신념이었다. 제 3자가 감히 함부로 왈가불가할 게 아니었다. 다만 이 위험한 인도 땅에서 옷과 가방을 보트에 그냥 두고 가는 건 객관적으로 위험한 짓이 맞았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아니, 가시더라도 짐은 여기에 그냥 두고 가시게요? 누가 훔쳐가면 어떡해요!?”


그는 더 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단호히 말했다.


여기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그거 훔쳐가는 사람은 정말 나쁜 죄업을 쌓는 거에요. 그럴 일은 없어요. 여긴 갠지스강이에요.”


일말의 흔들림 없는 그의 표정에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의 뚜렷한 확신에 비하면 나는 별다른 신념 같은 건 없는 휑뎅그렁한 사람이었다. 멋진 대사를 남긴 그는 곧장 갠지스강 한 가운데로 몸을 던졌다. ‘풍덩’ 소리가 커다랗게 강물이 여기저기 솟구쳐 보트에도 좀 들어왔다. 보트 안에 있던 인도인들은 그 물이 몸에 튀자 엷은 비명을 질렀다. 다만 물놀이하는 것처럼 얼굴은 다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떻게든 그 ‘더러운’ 물이 내 몸에 안 닿게 하기 위해 잽싸게 피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으로 단련해놓은 민첩함이 이때 쓸모가 있었다. 


강물 한 가운데에 빠진 그는 곧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내게도 얼른 들어오라면 멀리서 손짓했다. 넘실거리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선 전에 본 적 없던 행복이 물씬 풍겼다. 


반대편에 도착한 보트는 뭍을 3미터 남짓 남기고 멈춰 섰다. 어차피 금방 떠날 거라 재출발을 위해 완전히 접안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런데 내겐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날아오는 물방울은 잽싸게 피할 순 있어도, 뒤뚱 거리는 배에서 멀리 뛰기를 3미터씩은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뭍에 가려면 부득이 강에 발을 담가야만 했다. 그토록 꺼리던 일이었으니, 결국 내리지 못할 처지였다. 반면 다른 남녀노소 인도인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모두 바짓단을 걷어붙이고 가볍게 내렸다. 첨벙 첨벙 강물을 가르며 다들 저쪽 뭍까지 지나갔다. 그러면서 아직도 앉아 있는 내게는 왜 내리지 않느냐고, 어서 같이 내리자고 보챘다. 하지만 싫었다. 당신들에게는 성스럽고 신성한 강일지 몰라도 내게는 오직 오물과 시체 가득한 ‘더러운’ 강이었으니까.


모두 내리고 아무도 없는 보트는 퍽 외로웠다. 홀로 한 삼 분 앉아 있었다. 사람이 혼자가 되어버리면 정말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때 나도 그랬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 거절했던 강물인데도, 한 번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인도 사람들이나 나나 국적만 다를 뿐 실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저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나라고 못할 쏘냐. 무엇보다 언제 다시 출발할지도 모르는 이 보트를 지루하게 혼자 기다리고만 있기에도 어딘가 좀 쑤셨다. 


갈팡질팡 고민한 끝에 승리한 건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두드러기가 나면 며칠 더 고생하고 말지 뭐, 하고 일단 바짓단을 걷어봤다. 어차피 며칠 고생한다 해도 상관 없는 게, 나는 시간이 많았다. 물론 생각과 현실은 다른지라 마음을 그렇게 먹었어도 실제 물에 들어가는 건 어려웠다. 몇 번이고 빠질락말락을 반복하다가, 결국 보트 난간에 한 쪽 다리를 걸쳤다.


어스름해진 저녁놀이 미쳐 강물은 누렇게 바랜 갈색이었다. 내리던 곳의 강은 무릎 정도 깊이였다. 나는 두 눈은 질끈 감았고, 조심스레 1mm씩 이동하며 갠지스를 향해 발을 뻗었다. 보트 밖으로 빠져나간 발 끝이 강 표면에 닿기까지 족히 삼백 년은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발끝이 갠지스와 접촉했다. 다행히 물귀신이나 괴물이 내 발목을 잡아 당기는 일은 없었다.




발끝으로부터 느껴지는 수온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어떤 쪽으로도 자극적이지 않았고, 딱 적당했다. 내 체온과 거의 같은 온도, 어쩌면 ‘강가’라는 신의 체온. 그런데 참 이상했다. 발을 담그는 행위는 어떤 물이든 다르지 않겠지만, 분명 그 날은 달랐다. 분명 지금껏 발을 담갔던 모든 물과 달랐다.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아, 어찌 말해야 할까. 짙은 감정으로 충만했던 그 느낌은 ‘황홀’이라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지금껏 내 평생에 느껴본 적 없던 더 없이 강렬한 황홀경이었다. 혈관을 흐르는 적혈구와 백혈구가 모두 손에 손 잡고 무도회라도 연 것처럼 내 온 몸이 기뻐했고, 잔뜩 뭉쳤던 몸과 정신의 근육이 생크림처럼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첫 키스를 할 때 귓전에 커다란 종이 울린다는 알쏭달쏭한 말이 ‘감각적으로’ 이해되긴 처음이었다. 


지금껏 머릿속에 가득하던 생각들도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다 순식간에 증발됐다. 방금 전까지 했던 이 물이 더럽다고 생각도, 두드러기가 나면 어쩌냐던 걱정도, 인도인은 면역력 때문에 괜찮을 거란 편견도, 관광 보트 사공에 대한 의심도. 그리고 꼭 갠지스강과 관련 없어도 그 당시 일상처럼 하던 모든 걱정과 고민들까지!


심지어 나도 모르게 웃음까지 터졌다. 주변의 많은 인도인들은 모두 속옷만 달랑 입고 머리까지 담그고 수영하고 있던 반면 나는 소심하게 바짓단만 살짝 올려 다리만 조금 담그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나는 마치 나만이 이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라도 마냥 손을 번쩍 들어올려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환호성’이란 것이 내 안에서는 좁아 견딜 수 없어 내 의도와 관계 없이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바라나시 전체가 떠나갈 만큼 큰 소리를 치며 웃었다. 내가 걱정하던 대로 더럽거나 그런 건 없었고, 오직 황홀경과 행복만 가득한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물놀이하던 인도인들이 다 나를 쳐다봤다. 이유도 모른 채 웃어대는 나는 그 구역의 미친 사람이었다. 누군가 혼자 갑자기 그렇게 웃어대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이상한 눈초리로 봐야 맞다. 그런데 어떤 인도인도 미친 듯 웃어대는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반가운 얼굴을 지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 ‘너도 이제 알았구나’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어떤 깨달음 비슷한 게 뇌를 스쳤다. 결국 ‘말’이라는 것도 우리가 어떤 것을 과학적으로 남들에게 주장할 때 하는 거라면, 그때 나는 정말이지 말문이 막혔다. 


아, 이래서 인도인들이 그토록…’


저 앞에는 보트에서 먼저 뛰어내렸던 이가 여전히 수영 삼매경이었다. 강에 머리를 집어넣고는 잠깐씩 잠수하기도 했는데, 다시 고개를 들 때는 원심력으로 뻗치는 마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저녁노을의 예리한 빛줄기는 잽싸게 그 물방울 방울을 포착해 빛을 반짝 비췄다. 마치 보석 구슬이 흩날리는 듯했다. 그가 말했던 “갠지스강과 사랑에 빠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아무렴 더러운 물이라지만, 인도 힌두교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인 연꽃도 더러운 진흙탕에서 피어나지 않던가.


보트가 ‘저쪽 뭍(彼岸)’으로 와 정박한지 어느덧 삼십 분이 지났다. 다시 원래 있던 ‘이쪽 뭍(此岸)’으로 갈 거라며, 사공은 큰 소리로 승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 한국인 여행자는 보트가 출발해도 타지 않고 있더니, 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트가 강 가운데게 갔을 때야 올라왔다.


그는 숙소로 가지 않고 곧장 황금 사원으로 갈 거라고 했다. ‘황금사원’은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으로, 누구나 출입 가능한 다른 사원과 달리 힌두교도가 아니라면 절대 출입이 금지되어 있을 정도다. 또 황금 사원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은 그 사원의 명성에 걸맞게 목욕재계로 몸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야 한다. 그만큼 경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런 성스러운 사원을 갠지스강의 ‘더러운’ 물을 묻힌 채 가려고 했으니, 나는 이제 한 번 갠지스에 발목 담가봤다고 나름 인도 문화에 대한 존중이 생겼다는 태도로 물었다.


그래도 이런 물에서 수영했는데, 숙소에서 샤워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역시 단호히 답했다. 

괜찮아요. 지금까지 수영한 게 아니라 목욕한 거에요. 여긴 갠지스강이니까요.”


그는 강변을 가득 메운 인파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아무 말도 이을 수 없었다. 





주석 ) 물론 내가 느꼈던 게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나는 함부로 갠지스강에 정말 비밀의 무언가가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나는 지금껏 오직 논리와 이성만을 따르며 살아왔고, 내 생에 가장 중요한 건 논리다. 논리가 없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런데도 그때 갠지스강은, 아무리 그런 나라고 해도 무조건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근거와 논리가 없어도 그 선명했던 황홀경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실제 느낌이 맞았다. 무슨 신비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어떤 걸 말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내 개인적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지만. 다만 그 후 3년이 지나 다시 인도를 찾았을 때 나는 강물에 머리까지 담가 인도인들처럼 목욕까지 했지만, 그때 그 황홀경은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며칠 몸살을 앓았는데, 주변 다른 변인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라 갠지스강 때문인 지는 나도 단언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숙소 예약도 없이 여행을 떠나면 생기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