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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May 14. 2024

명상할 때 호흡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

이 사람 저 사람 가르치는 호흡법이 다른 이유

명상과 호흡은 늘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 소위 '호흡 명상'이란 것만 호흡과 괸련된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명상이란 것이 태생적으로 호흡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혹은 걷기 명상이니 차 명상이니 하는 다른 모든 명상도 실은 '호흡 명상'으로부터 파생된 쪽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명상을 가르치는 사람마다 이 '호흡법'이란 것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명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찾아가다 보면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 사람은 이렇게 호흡하라 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호흡하라 하고. 하지만 사실 누구도 딱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차이가 발생하는 건 단지, '명상'이란 것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1. 건강과 생명을 위한 호흡.

수 년 전 내가 명상 또는 호흡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였다. 달리 말하자면 에너지 충만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에너지가 없다는 것은 매 순간을 살아가는 데 몸이 무겁다는 것이다. 무거우면 창의적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반면 몸이 가벼워지면 창의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니, 달리 말해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다. 당시엔 그러한 신체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었다. 좋은 음식도 먹어 보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하지만 모든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고,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것이 '복식 호흡'이다.

복식 호흡을 명상 또는 수행이나 수련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이름 자체를 다르게 부른다. '단전 호흡'이라거나 '석문 호흡'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호흡을 할 때에 정확히 사용하는 것은 '배(복)'가 아니라 배꼽 아래의 '단전(또는 석문)'이니, 구체적으로 칭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통칭하여 '복식 호흡'의 이점은 '숨'을 생명 유지에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가령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들이 있다. 주로 생각하는 것은 음식, 그 중에서도 필수 영양소와 물 등이다. 그런 것들은 자연히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섭취해줘야 한다. 또 좋지 아니한 것을 먹으면 생명에 지장이 오니, 좋지 못한 것을 거르는 노력도 일면 필요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음식이나 물은 설령 먹지 않더라도 한 며칠에서 몇 주 정도는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숨'은 단 5분이라도 멈추면 아예 삶이 끝나버린다. 그 중요도로 치자면 음식이나 물보다도 더 중요한 게 '숨'인 것이다. 하지만 음식과 달리 숨은 무의식중에도 얻을 수 있고 공짜인데다 꼭 좋은 것을 취하려는 노력은커녕 아예 얻는 데에 어떤 노력도 필요 없다 보니 우리는 숨의 중요성을 늘 간과하고 산다. 

하지만 실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원천이 되는 것은 '숨'에서 오는 에너지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껏 좋은 음식을 찾으러다녔던 것처럼, 이제는 '좋은 숨'을 쉬는 노력을 하자는 데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 '복식 호흡'이다. 보통의 경우 호흡은 폐까지만 오고 가는데, 그 에너지를 복부(단전)까지 끌어내려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숨을 깊이 마시고, 깊이 뱉어야 한다. 가령 '한숨'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한숨은 꼭 '명상'이나 '수련'이 아니어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자연스런 운동이다. 한숨은 주로 마음이 답답할 때 나오는 것인데, 그 특징은 평상시와 달리 마시고 뱉는 숨이 더 길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답답하거나 에너지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한숨을 쉬게 되니, 그러한 '길고 깊은 숨'을 활용해 명상을 하는 건 본능의 응용이 되는 것이다. 

한편 그 방법도 여러가지다. 다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단순히 단전에 자신의 의식을 두고, 숨이 거기까지 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뭐 들숨이 몇 초 날숨이 몇 초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의식을 단전에 두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호흡은 알아서 따라온다. 

아무튼 더욱 자세한 내용은 따로 이와 관련한 글을 쓰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는 '이런 것이 있다' 정도만 다루고 넘어가 보자. 이 글만 보고 독자 여러분이 함부로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거니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마음의 안정을 위한 호흡

사실 대부분의 호흡 명상에 해당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결국 현대인이 명상을 하는 목적은 소위 말하는 '이너 피스',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다. 이건 1번과도 연결이 된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는 여러 증상을 보이지만, 그중 하나는 호흡이 비교적 가빠진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 관계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심리적 불안이 호흡 장애를 초래하기도 하는 반면, 반대로 호흡 장애가 심리적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아무튼 전후 관계에 관계 없이 호흡 장애가 심리적 불안과 관련되니, 그 가빠진 호흡을 안정시켜 그 결과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이른바 '호흡 명상'의 방식이다. 그 방법도 여럿이다.

길게 한 번 뱉고 두 번 마시는 한숨 호흡법, 4초 동안 마셨다가 8초간 정지했다가 6초동안 뱉는 486 호흡법, 2~3초간 마셨다가 똑같이 2~3초 뱉는 호흡법, 짧은 호흡을 자주 하는 호흡법 등 그 종류도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 지점이 초보 명상가들이 주로 헷갈리는 포인트가. '호흡 명상'이라는 제목은 같은데 가는 곳마다 방법이 다 다르니 혼란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명상을 지도하는 이들마다 각자 공부한 것과 깨달은 바가 있으니, 각자가 주장하는 호흡법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여러 호흡법의 맥을 관통하는 공통된 한 가지 사실은, 결국 모든 호흡법의 특징은 '명상가의 의식을 집중시킨다'는 것에 있다. 

위에 거론한 여러 호흡법의 특징은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몇 초 동안 마시고, 몇 초 동안 뱉고. 만약 아무런 숫자를 붙이지 않고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뱉으라고 한다면 호흡에 대한 집중을 금방 잃고 만다. 무얼 하건 기준선이 없거나 불분명하면 지금껏 만들어놓은 질서도 쉽게 흩어지는 것이다. 반면 얼마가 됐건 숫자를 붙여 놓으면 기준이 있으니, 흩어지려 해도 쉽게 돌아올 수 있다. 즉, 숫자는 뭐가 되어도 좋다. 지속적으로 내 의식을 호흡에 붙들어 놓을 수만 있다면, 그게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이는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명상법이다. 부작용이 나올 일도 없고, 숫자만 따라가면 되니 뭐 심오하거나 깊은 지식을 얻을 것도 없다. 


3. 깨달음을 위한 알아차림(마음챙김)의 호흡

초보 명상가에게 더욱 혼란을 일으키는 건 이 3번의 출현이다. 3번은 명상의 목적 자체가 다른데, 2번이 즉각적인 마음의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3번은 그야말로 장기적인 '수행'이 그 목적이다. 2번과 달리 명상을 하는 데 외려 힘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3번에서 설명하는 호흡에는 들숨을 몇 초로 하라는 것도 없고 날숨을 어떻게 하라는 것도 없다. 단지, 모든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이다. 명상을 하기 위해 가만히 앉거나 눕거나 서서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는 것이다. 앞서 다뤘듯 여기서 '호흡'이라는 것은 나의 의지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운동이다. 꼭 내가 어떻게 쉬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의 몸은 '이미' 호흡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호흡을 의도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냥 호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만을 보는 것이다. 

호흡이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대로. 호흡이 길면 긴 대로. 호흡이 짧으면 짧은 대로. 호흡이 거칠면 거친 대로. 호흡을 통제하려고 하는 일말의 작용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명상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호흡이 길고 안정적이어야 마음도 안정화되니, 호흡이 거칠고 짧다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호흡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별 문제는 아니다. 만약 호흡을 자꾸 통제하려는 현상이 발생하다면, 그러한 마음조차도 관찰하면 된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호흡에 대해 '관찰'의 태도를 취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을 위해서다. '깨달음'이라는 개념은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하나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신체의 작용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몸과 마음이 '내 것'이라고 여긴다. 이미 '나의 몸'이란 표현에서 '나의'라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은연중에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몸이란 것은 '내 것' 같지만 온전히 내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앞서 다룬 '호흡'이란 것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음식을 찾아다니는 노력 역시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생존 본능에 따라 이루어지는 작용인 것이다. 혹은 현대인이 흔히 하는 말인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라는 말 역시 이와 관계된다. 이 말은 풀어 해석하자면 나는 분명 행복의 감정으로 마음이 늘 채워져 있길 원하나 실제 마음은 행복과 거리가 먼, 되레 나를 불행하게 하는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마음'이란 것이 정말 '내 것'이라면, 왜 내 바람과 달리 불행해지겠는가. 일련의 특징들을 좇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무엇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라는 것이다. 

내 것 같아 보이는 어떤 것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의 유익함은 '통제의 시도'에 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경우는 물론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큰 원인을 잡자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할 때' 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할 때'이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는 것은 현재 불만족 상태에 있고, 그 대상을 바꿔야만 만족 상태에 갈 수 있다는 건데, 여기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 '변화'는 영영 달성될 수 없다. 불만족 상태는 결국 해결되지도 못 하고, 공연히 바꾸려는 헛수고로 인해 피로만 쌓이니, 이는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지름길인 것이다. 

반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애당초 마음을 쓰지 않는다. 종종 이를 무기력한 포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되레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집착은 무의미한 집착일 뿐이다. 통제의 가능 여부를 보는 것은 단지 대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 몸에서 호흡이 일어나는 것을 2초건 3초건 통제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연습은 언젠가 '이 호흡이 내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애써 호흡의 속도와 길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연습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통제의 욕구를 줄어들게 한다. 궁극적으로 호흡을 통해 해온 이러한 연습은 '마음'에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슬픔이나 분노, 집착 등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감정이 올라왔을 때 우리는 보통 그 감정을 없애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생긴 것도 결국은 다 그럴 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올라온 것이니,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되레 바꿀 수 없는 감정을 바꾸려는 노력은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더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반면 굳이 그 감정을 없애거나 바꾸려하지 않고, 호흡을 관찰하는 것처럼 단지 '이런 감정이 올라왔구나' 정도로 관찰만 한다면 일단 없애려는 노력이 사라졌으니 그로 인한 피로감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나아가 호흡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감정 역시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존의 본능이 있으니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호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면 슬픔도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크게 보자면 명상의 호흡법은 위의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낫고 무엇이 못 하다고는 할 수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도 없다. 단지 명상을 필요로 하는 이가 각자의 목적에 맞게, 자신에게 필요한 방식대로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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