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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un 10. 2024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최고의 명상 방법

명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일종의 진언을 반복해서 외우는 명상이다. 소위 '만뜨라 명상'이라고 한다. 만뜨라는 보통 특별한 뜻을 갖지 않는 말로 이루어진다. 가령,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것이 그 예다. 한 자리에 앉아서 그 만뜨라를 계속 외는 것이 보통의 만뜨라 명상의 형태다. 


명상을 배우러 왔던 A 역시 평소 만뜨라 명상을 한다고 했다. 그가 주로 하는 것도 만뜨라 명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명상을 할 때 어떤 진언을 외워야 하는지가 간혹 헷갈린다고 했다. 그가 평소 외는 것은 '옴마니반메훔'인데, 과거 한 불교 사찰에서 배우기론 '관세음보살'을 외워야 더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무엇이 더 좋은, 혹은 '올바른' 진언(만뜨라)인지를 물었다. 


그의 물음을 듣자, 수년 전 인도에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인도 서부 라자스탄 지역의 조드푸르에 머물 때였다. 숙소 근처의 한 전통시장을 찾았는데 대문에서 한 인도인 무리가 나를 붙잡았다. 처음엔 인도에 흔한 잡상인 호객꾼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물건이 아니라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금전을 대가로 바라지는 않았다. 그들 뒤 담벼락엔 손수 그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앞에는 작고 먼지 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호객하며 그들은 내게 말했다. 


"인생의 어떤 문제도 풀어줄 수 있는 궁극의 명상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이 명상만 안다면 세상에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처음엔 의심스러웠다. 아무래도 길거리에 양탄자만 깔고 있는 모습에선 어떤 전문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신할 건 아니었다. 어차피 무료이니 밑져야 본전이었고, 저런 사람일수록 고수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바쁜 일도 없으니 일단은 그들 말대로 양탄자 위에 앉았다. 말똥말똥한 눈동자에 열정을 가진 듯해 보이던 젊은 인도인이 내게 영어로 절차를 알려줬다. 그런데 그들의 '비법'이란 것은 너무나도 쉽고 단순했다. 그저 그들이 내게 알려준 마법의 주문만 끊임없이 되내이면 되는 것이었다.


"허리를 곧추 세우세요. 눈은 지그시 감으세요. 그리고 제 말을 따라해 보세요. '클링-크리슈니클링.'"


나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그는 날더러 이젠 그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라 했다. 

"클링-크리슈나클링. 클링-크리슈나클링. 클링-크리슈나클링. 클링-크리슈나클링. 클링-크리슈나클링..."


처음엔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무언가를 배우러 온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면할수록 의심이 종식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짙어졌다. 도대체 이게 뭔지. 그는 분명 이 말만 끊임없이 반복하면 삶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거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게는 어떤 좁쌀만한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5분 정도가 지나 눈을 떴다. 보통 5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특정 단어만 반복하며 앉아있을 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이거 순 엉터리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그땐 나도 명상을 공부하기 전이라, 함부로 무엇이 맞고 아닌지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에야 명상을 공부하고 보니, 그들이 내게 알려줬던 것은 전문 용어로 '만뜨라 명상'이었다. '클링-크리슈나클링'이라는 주문(만뜨라)이 그들에겐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주문인 셈이었다. '수리수리마수리'를 반복해서 외치면 삶이 행복해지는 마법이 펼쳐지는 것처럼. 특히 인도에는 이와 같은 다양한 만뜨라 명상이 있다. 명상원마다, 요가원마다 각자의 다양한 만뜨라 명상을 한다. 그리고 모두 자신들의 만뜨라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가능한 말일까? 만뜨라만 외운다고 삶의 문제는 정말 해결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만뜨라 명상'이 꼭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진언 자체의 내용은 다르지만 만뜨라 명상은 실제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유럽으로 이주해 살던 한 인도 출신의 수행자가 있었다. 그가 수행자라는 사실은 해당 유럽 지역에서 유명했다. 하루는 인생에 고민이 많던 한 현지인이 그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가족 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주부였는데, 그 문제가 수 개월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아 결국 그 수행자를 찾아가게 된 거였다. 그의 사정을 들은 수행자는 그에게 고민과 번뇌에서 벗어날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다만 거기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지금부터 내가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 가지 주문을 알려줄 거다.

둘째,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만 그 주문을 알려줄 거다. 당신은 한 번에 이 주문을 완전히 외워야 한다. 주문을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한다거나 종이에 적는다거나 외우지 못할 경우, 주문은 효력을 잃는다.

셋째, 주문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말아라. 그러면 역시 주문은 효력을 잃는다. 

넷째, 인생에 문제가 생길 때면, 이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면 된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된다. 절대로 마음 속으로만 주문을 외워야 한다. 입밖으로 꺼내면 역시 효력을 잃는다.

다섯째, 그 주문은 '에크도띤챠르빤치'다. 


여자는 수행자의 말을 명심했다. 그리고 정말 그의 말대로 했다. 수 개월이 지나 여자는 수행자를 다시 찾아왔다. 그가 말한대로 하니 정말로 삶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에크도띤챠르빤치'가 대단한 영적 에너지가 담긴 진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클링-크리슈나클링'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진언이라고. 하지만 인도 여행을 한두 번 쯤 해본 사람이라면 이 주문의 실체를 알아챌 것이다. '에크도띤챠르빤치'는 우리 말로 풀자면,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다.


그러니까 그 주부를 구했던 것은 어떤 특별한 진언이나 주문이 아니었다. 단지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홍수나 번뇌가 찾아왔을 때,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을 잡아 줄 끈이 필요했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위협하는 것은 강한 감정의 습격이고, 감정이란 거센 파도처럼 찾아왔다가도 그 순간만 버티면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붙잡아줄 기둥이다. 


다시 본론인 A의 물음으로 돌아와보자면, 사실 어떤 만뜨라가 더 좋고 더 탁월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만뜨라에도 주문 자체에 어떤 특별한 힘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은 어떤 만뜨라에는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건 객관적인 방식으로 증명할 길은 없다는 사실이다. 증명할 수 없으니,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주제가 되지 못 한다. 


결국 '어떤' 만뜨라를 외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이 되는 것은 무엇이 되었건 만뜨라를 외운다는 그 사실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수리수리마수리건, 옴마니반메홈이건, 옴~이건, 관세음보살이건, 클링-크리슈나클링이건, 하나둘셋넷이건. 할렐루야건. 만뜨라 명상의 의의는 그 주문의 '내용'이 아니라, 마음이 감정에 넘어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그 '반복'이라는 행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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