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변치 않는

part 1

by 최서원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끝이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영원할 것 같은 기억도 전부 사라진다. 우주도 결국 블랙홀이 모두 증발하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시간의 흐름도 사라질지 모른다. 종교적 관점을 제외하면 영원이라는 건 내가 경험할 수 없고 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허나 연인들 사이에선 “널 영원히 떠나지 않을게, 영원히 사랑할게” 같은 비혈실적이고 멍청해 보이는 저급한 말들을 흔히 내뱉는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실 “영원히 널 사랑할게”라는 말을 보고 멍청해 보인다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이란 감정과 가까워지지 못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연히 영원히 널 사랑할게라는 말은 난 널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원한 건 없다 언젠간 영원히 사랑할 것 같던 사람들도 결국 떠나고 정말 모든 걸 주고 싶었던 사람도 다시 봤을 때 아무런 기분이 안 들 수도 있다. 허나 그러한 사람들은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난 최선을 다했는데 ㅜㅠㅜ 안 되나 봐 그냥 원래 안되는 거야 ㅜㅜ”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한 게 없다. 보통의 학자들은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말라고 말한다. 허나 여기서 중요한 건 “최선”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수험생이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야망에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매번 릴스 좀 보고 놀다가 집에 와선 “피곤한 거치곤 내 최선을 다했어 공부습관만 잡히면 서울대는 그냥 가지”하며 매번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럼 이 사람은 내일은 열심히 할까? 그다음 날은? 아마 평생 똑같을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가 자기 자신 인생을 망치는 거면 몰라도 자신의 인생이 망쳐가는 이유도 모르고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척하며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하며 이유도 없는 낙천적인 생각들로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중요한 문제들은 회피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며 싫은 거 하나 하지 않으며 죄책감들조차 회피하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며 포장한다. 만약에 결과 나쁘면 꽤나 슬퍼하다가도 “난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된 거 같아 어쩔 수 없었어.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이런 생각만 하며 평생 발전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 자체로도 엄청 한심하지만 이는 연애에서 단점이 극대화된다. 흔히 말하는 회피형 “난 엄청 노력을 했는데 난 여기까지야 못하겠어” 말로는 노력하였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모르겠다는 게 중요하다. 아 결국 어디까지의 노력을 원하였나?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처음 내가 진심을 주기로 했다면 -이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이 사람이라면 날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 그를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가장 간단한 약속처럼 보이더라도 지키는 것 지키는 태도는 어떤 곳에서든 중요하다


니체


니체가 주장하는 “위버멘쉬” 즉 기존의 도덕, 관습, 종교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에 대해 부정할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닌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불편한 예일 수 있지만 “얼굴이 잘생기고 키는 187에 근육질 몸매와 다정한 성격과 지적 능력을 가진 돈 많은 사람”을 이상형으로 두는 것과 별다를바 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니체는 여러 책에서 사랑은 권력의지의 표현이며 자기 긍정과 자기실현의 일환이라 이타적 희생이 아니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힘의 관계이고 인간의 긴장과 투쟁을 발현하는 현상이라 함과 동시에 사랑이 가장 창조적인 힘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니체는 자기 초극을 위한 시련, 때로는 의존을 낳는 위험한 감정, 창조적이고 본능적인 힘으로 설명하며 자기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감정이라 무조건적 사랑은 위선이라 비판하였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도 내가 비판하고픈 부분은 이것이다.

자기 자신을 무한히 극복하고 또 극복하라. 자기 긍정의 주체가 되어라. 이는 사람을 유혹하기 좋은 문장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을 등하시 하는 게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프리드리히 니체, 소렌 키에르케고르,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아서 소펜하우어. 이름은 다 들어보았을 유명한 철학자들이지만 사랑에 무너졌다. 정신 붕괴, 후회, 극단적 우울과 고독, 사랑을 갈망, 여성 혐오, 죄책감 광기로 물들었다. <이 사람을 보라> <안티 크리스트> <유혹자의 일기> < 두려움과 떨림> <철학적 탐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 매우 많은 책에서 볼 수 있든 전부 철저히 건강한 사랑에 다가가지 못하였으며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철학적으로 승화하려 하였지만 다른 관점으로 봤을 때 그들이 사랑이란 감정에 남긴 말들은 사랑에 약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의 사랑의 실패를 자기 자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감정을 등한시 하여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 세뇌하거나 사랑이 틀렸으므로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정당화하거나 자신이 하였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정의하여 회피하려던 사람들의 위선적인 말들로 보인다. 그저 삶과 사유의 불일치, 실존적 불성실이며 니체가 항상 말하는 인간본성의 억압이다.

납득이 안되고 철학적으로 모순이 많아 보이는가? 허나 부분적으로 이들이 사랑에 대하여 꽤나 좋은 통찰과 조언들을 당신에게 주었을지 몰라도 이들-사랑을 알지 못한 자들-의 사랑에 대한 대부분의 말들이 당신의 감정과 사랑에 진실되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며 진실한 사랑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이끌고 있다는 것엔 난 단 하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