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Kant & Love라는 Ivan Iyer의 글을 바탕으로 작성
that like the beautiful, the feeling of love has no objectively discernible basis and in its pure form is not the result of an interested seeking. As painful as it might be to not be loved back, it is just as unreasonable to have loved at all. One does not know why one loves, even though one may seek to answer, after the fact and to differing degrees of success, as to why one loves or does not.
-Ivan lyer - kant&love -
아름다움
“ 나는 이 노을을 아름답다 생각한다
나는 왜 노을이 아름답다 생각하는가?
나는 노을을 좋아하고 저것은 노을이기에 저 노을은 아름답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식별 가능한 것들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것이며 어떠한 개념에도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판단이라 하였다. 칸트에게 명확한 개념들은 직관에 결합되어 그 대상을 하나의 보편 개념 아래 포섭함으로써 사고할 수 있게 하는 개념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노을이라는 개념은 특정한 하나의 노을을 우리가 노을이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저렇게 말하면 칸트는 진정한 미의 판단이 아니라 할 것이다.
사랑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나오냐면 내가 읽은 논문의 저자가 사랑은 목적이나 이유 등에 기반하지 않고 설명 불가능한 감정의 흐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칸트의 미적 판단도 비슷하다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칸트는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보편적 동의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즉 우리는 “이것은 정말 아름답다”라고 선언하듯 말하지 “이것이 나를 기쁘게 해 주고 뭐~ ” 이래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저것에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널 너무 순수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너라서 사랑해” 와 “나는 널 이러이러해서 사랑해” , 사랑은 직관적으로 조건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과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나는 이러하니까 넌 사랑해야 해는 서로 모순되지만 둘 다 그럴듯하다. 이것이 안티노미이다, 신은 존재한 다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 모두 똑같게 유효하고 이유가 있지만 둘은 서로 대립된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은 불확실한 개념에 기초하기에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 동의를 요구할 수 있다. 왜냐면 이러한 판단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을 통해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름다움은 완전히 주관적이지도 완전히 객관적이지도 않은 둘이 섞여있는 특별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다시 겪을 수 없다. 각각의 아름다움은 단일한 것이며 똑같은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이는 칸트의 체계의 순수한 미적 판단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판단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나 객관적 사실, 매혹시키는 것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미적 판단은 인지적 판단과 달리 특정 직관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며 아름다움의 느낌은 대신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특정 감각 경험과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발명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경험(모든 순수한 미적 판단)은 하나이기 때문에 이전의 개념은 그것을 위해 다시 사용될 수 없다 또한 새로 발명된 개념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결정된 개념에 따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왜냐면 내가 사랑하는 이유도, 그녀가 날 사랑할 수도 있는( 물론 안 할 수도 있는) 이유도 전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열할 수 있다. 이뻐서, 목소리가 좋아서, 성격이 좋아서
근데 이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인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것들을 묘사하는 것인가? 아마 이쁘고 몸 좋고 능력 있고 막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랑이라 말했다면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저 수단화된 사랑일 뿐.. 그러므로 우린 특정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앞서 말해왔듯 아름다움과 사랑은 상당히 비슷하며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객관적으로 식별 가능한 척도는 없다. 보면 달려들고 싶은 마음 안고 싶은 마음 헌신하고 싶은 마음의 정도,,, 다 다르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적거나 너무 많다고 우리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사랑은 순수하며 다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사랑받은 적 없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사랑하지 않는 이유도 사랑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고 너는 왜 그들을 사랑하고 왜 사랑하기로 하였으며 왜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는가
유일과 영원
아름다움과 사랑은 유일하며 그것이 존재한 이후로 영원하다. 그때 사랑했는데 나중에 보니 안 사랑했다 뭐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은 원래 불합리하고 불확실하며 이유가 없고 순수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기적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에 대한 판단만큼 불합리하고 불확실하다면 그것이 정말 사랑이 비참하고 우연하며 매혹적인 사랑의 측면이 아닐까. 좋든 나쁘든 이유가 없었을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았을 수 있는 것 둘 중 무엇에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랑은 단 한 번이고 아름다움도 단 한 번이다. 왜 사랑하는지 왜 아름다운지에 대한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다니체가 말처럼 자기애의 변형된 형태라 생각하거나 예수가 말하는 아가페가 진리라고 생각하거나 에로스, 필리아라 생각하든 뭐 모두 나름이겠지만 난 이게 가장 좋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아름답다 생각하는 것을 아름답다 느끼는 것과 전에 아름답다 느꼈던 것을 아름답다 느끼는 것과는 달리한 번도 아름답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아름답다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물론 최선을 다해보아야 하지만 노력과 결과가 항상 비례하진 않는다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적이고 네가 누굴 사랑하는 것도 기적이다. 무언가를 바라지도 말고 일부로 무언가를 하지도 말라 항상 순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