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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Feb 29. 2024

봄에 관한 주어

봄 노래

그 옛날 신중현이 쓰고 김정미가 부른 봄. 옛 노래만큼이나 좋은 건 없구나.


봄 머리

내버려 둘까 하다 다시 삭발로. 집 근방에는 청련사가 있고 그곳에는 나와 머리가 같은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봄 산책

새싹들이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구나. 생명은 참 강하구나. 그렇다면 여적 못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나는 애처롭고 웃기기만 하다.


봄 바람

그 어느 해 보다 꽃샘추위가 강력하게 불어 닥치는 것은 내 마음이 추워서 그런 걸까. 아직은 바람이 새 차고 내 마음속에 바람은 얼음처럼 차갑다.


봄 청련사

매일 상조회사의 버스가 오고 가고 동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죽은 망자의 영을 달래기 위해 염불을 올린다. 그 차에 무겁게 탑승한 사람들은 다시 못 올 사람들을 배웅한다.


봄 속살

죽은 살/ 이것들은 온전히 내게서 왔고 완연히 나의 것이 되었다가 쓸쓸히 떨어져 나갔다. 새살/ 상처에 새살이 돋았다. 아직은 붉은기가 선명한데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다.


봄 옷

초 겨울에 미리 사놓고 쟁여둔 봄 옷을 꺼내 입을 시간. 이 옷을 입기 위해 봄의 소쩍새는 그리 울었다지. 이젠 오일장에 나가 멋스러움을 뽐내 볼 시간. 하염없이 신명이나. 


봄 기억

지난해에 버리지 못하고 쟁여둔 더러운 기억은 시궁창의 오물보다 못하다. 오늘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쓰레기 용역 업체에 수거해 달라고 연락해야겠다. 다짜고짜 여보세요!!!


봄 전시회

한 편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마실 나왔다. 그곳엔 봄처럼 화사한 그림이 걸려 있다. 온 세상이 꽃이로구나. 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험악할까. 꼭 미소를 상실한 나와 너의 얼굴처럼. 


봄 건강

카톡으로 선물 받은 홍삼 즙을 들이켠다. 건강만이 살길! 어서 씩씩해져라! 안 그러면 넌 죽는다.


봄 햇살

봄 햇살은 며느리에게 쬐게 하고 가을 햇살은 딸내미에게. 이 무서운 한국 시월드에서 내 시어머니는 그 옛날 돌아가셨구나. 살아 계실 때 잘할 것을 후회만 남는구나.


봄 물고기

물속에서 노는구나. 석현천의 물은 맑고 바람산의 바람은 잔잔하구나. 자연에 숨 쉬는 것들은 평화롭고 한산하구나. 그래 그렇구나.


봄 나무

나무들아 나무들아! 올 한 해 내가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겠니. 얼마면 되겠니. 무상인걸 잘 알고 있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 일단 너를 믿는다.


봄 카톡

대관절 넓고 휑한 카톡창엔 택배 왔다는 카톡뿐. 그래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보단 낫다 위로하자.


봄 장터

내 십 년 묵은 옷들아. 이제 그만 팔려 나가서 나를 떠나거라. 그리고 내 통장에 현금이 되어 싱글벙글 기웃거리거라.


봄 약

약이 목구멍에 걸릴까 봐서 아직도 삼킬 때 머리를 뒤로 재끼다니. 뭐가 무서워서 그러느냐. 넌 그리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봄 버릇

습관처럼 되뇌는 불행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못난 짓인데 당최 어쩌자는 버릇이냐. 못난 버릇은 뚜드려 고쳐야 하는 법.


봅 짓

짓은 업이고 그 업은 운명일지니. 넌 그 짓으로서 행복하기만 할지어다. 


봄 냉장고

이 떡은 애초에 어디서 온 것일까. 냉장고에서 발견한 시루떡이 오늘 하루를 살리네. 떡은 내게 찾아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떡에게서 인생을 배우는 감사의 시간.


봄 전화

아빠 돈 입금했어. 아빠한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구나. 다음엔 건강은 어떠냐고 물어봐야지. 자식으로서 인간으로서.


봄 유튜브

여행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온 세상 방방곡곡을 전한다. 나는 나가지 못하고 집 거실 티브이로 본다. 난 언제쯤 저들처럼 홀연히 떠날 수 있을까. 나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동족이거늘. 사지 멀쩡한 내가 못할게 무엇이더냐.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넓다.


봄 친구

천 개가 넘는 연락처를 뒤져 보았으나 연락할 친구가 한 명도 없다니. 이게 사는 건가. 속상해서 눈물만 난다.


봄 소식

지하철에서는 신문을 천 원에 팔더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했지만 사지 않고 역에 도착한 전철에 몸을 싣기 바빴다.


봄 이불

홈쇼핑에서는 지난해 안 팔린 이불을 헐값에 팔고 현대미술가 이불은 삼청동에서 전시회를 여는구나. 무이자 할부로 주문한 이불을 엄마에게 보내고 전시회는 안 가도 그만이니 블로그에서 보는 걸로 대신했다.


봄 작품

세상엔 너무 많은 작품이 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지난 과거에 내놓은 나의 작품은 과연 쓸모가 있는 걸까.


봄 빨래

솜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강'으로 돌려 보자. 그 옛날 엄마는 샘에서 어쩌자고 이불 빨래를 했을까. 그 고생으로 엄마의 손은 부르트고 낡았구나.


봄 한숨

올 한 해는 또 무엇으로 써내려 가야 하는지 도무지 하염없어서 한숨만 나온다. 이 한숨은 공짜니까 수만 번을 반복해도 손해 볼 건 없지. 숨을 크게 쉬는 건 건강에 좋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돈 드는 일 아니니 더 크게 내 쉬어 보자.


봄 충격

굳은 작심과 맹세는 온데간데없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아니하니 김완선의 충격 보다 더 충격일세. 나 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봄 의지

무기력만 감돈다. 누가 정신 차리라며 내 머리채를 '씨게' 흔들어 줄 사람 있으면 번쩍 손을 들어 달라.


봄 지하철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 저렇게 살면 백 년은 무병장수로 살다 가겠다. 이제 나도 마스크 챙겨 다녀야지. 가린만큼 신비스로워 질 테니까. 냐하하!


봄 상처

아직이구나. 잊히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어지간히 징하구나. 쉽게 잊힐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입지도 않았겠지.

 

봄 낮잠

내 코 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 깬다. 누가 안 들어서 다행이다. 낯은 두껍고 낮은 짧다. 일상은 부끄럽고 잠은 얕다.


봄 그림

꽃을 그리려는데 자꾸만 색 연필이 날카롭게 그어진다. 선, 면 무시하고 내 이름이나 적자. 내 이름은 그저 끼순이!


봄 셀프

자신이 없으니 자신이 희미해져 간다. 흐려터진 자아를 벗어던지고 명료한 나를 찾아야 할 시간.


봄 행복

랭보는 불행은 나의 신이라고 했는데 나는 랭보처럼 역사 속의 위인이 아니니 불행을 말할 자격이 없다.


봄 낙서

글은 한 줄도 쓰기가 어렵고 낙서만 늘어 가는구나. 할 수 있는 게 낙서뿐이라니 주여!!!


봄 운전

모라는 그새 1만 킬로를 달렸구나. 나도 달려야지. 앞으로의 여정 성실히 밟으리.


봄 남편

그나저나 휴대폰 아작 나겠다. 눈 안 아프냐. 그만 좀 쳐다봐라. 하는 짓이 고와가 가는 말이 고운 것을 너는 아느냐. 


봄 고양이

모모야. 자니?


봄 생명

삼라만상 이불을  박차고 나왔구나. 천지신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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