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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Apr 12. 2024

쇼가 지나간 자리에서

왜 가는지 몰랐을까 

왜 그 시간이 가는지 몰랐을까

그땐 그 시간이 그렇게나 꼼짝달싹 굼뜨기만 했다

그 지난한 시간에 몸서리치며 보낸 시간

애진작에 도망치지 못한 걸 죽는 날까지 후회할 것이다

후회는 항상 이렇게나 아픈 것이다

가발을 벗어던지며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해 놓고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그곳에서 슬픈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름다웠을까

아니지

나는 참으로 어색했다

내 어색한 몸짓을 본 객들은 나의 태도를 나무랐다

눈물로 지새운 수많은 날들 내 애처로운 손으로는 샐 수가 없구나

밤마다 내 갈길을 인도해 달라고 울었건만 

귀신은 씻나락 까먹는 소리만 해대고 모른척했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스무 해가 지나고 내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겨버렸구나

아! 인생은 이렇게나 짧은 것이구나

그곳에서 나는 살아있었을까

아니지

나는 참으로 비겁했다

내 비겁한 눈초리를 본 객들은 나를 조롱하기 바빴다 

세상 모든 먼지탱이를 들이 마신 폐는 하다 하다 그만 썩어 버렸고

햇빛이 들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본 세상은 아침이 오지 않는 캄캄함 뿐이었다

밤새 피어 재낀 담배로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리고

디제이가 틀어대는 영문도 모를 찬란한 음악에 내 연약한 고막이 터져 버렸구나

담배 냄새로 찌든 옷엔 아무 손님이 무심코 낸 구멍이 크게 뚫려 있고

전국에서 온 객들이 던진 돌에 맞아 가슴팍에 난 구멍만큼이나 크게 그렇게나 크게 

그곳에서 나는 사랑받았을까

아니지 

그들은 내가 무섭다고 혀를 차며 도망갔다

내 이상한 몸짓을 본 객들은 그런 내가 무섭다고 소리쳤다

자정 한시 두시

나는 처량한 얼굴을 하고 꿈적하지 않는 시계만 죽어라 쳐다보았다

그곳에서의 밤은 그렇게나 길고 한없이 더디었다

내겐 그곳이 한탄할 지옥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너 그건 엄살이야라고 했다

버티다 지친 나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거 같은데 엄살이라니

인간들은 뭘 안다고 남의 인생을 그렇게 쉽게 말할까

나도 그랬을까

나도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지껄였을까

아닌 거 같은데 나는 그러지 않은 거 같은데

내가 없어도 그만인 곳에서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그곳에서 왜 그토록 긴 시간 울고 있었을까

전쟁터에 나갔으면 총을 겨누고 맞서 싸워야지

나는 왜 그렇게 겁에 질린 병사처럼 총을 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을까

이기지도 못할 술을 목구멍에 붓고 화장실에서 몰래몰래 구역질하다 

쇼 시간이 닥쳐오면 무대로 뛰쳐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입을 찢고 뻥끗거렸다

미끄러운 시멘트 바닥에 높은 힐을 신고 금방이라도 비틀비틀 쓰러질 것만 같은데

나의 정신은 이렇게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의 애씀을 본다면 당장 이 무대로 돈을 던지시오!

팁은 쉽게 오고 가고 그 아무에게서 아무렇지 않게 받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구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밤새 허기로 찬 창자에 들이킨 약을 셀 수 있을까

그 약을 삼키면서 제발 다시는 눈 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기도를 셀 수 있을까

미련하게 눈을 떴을 때 단 하루라도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간절함을 셀 수 있을까

집 구석탱이에는 이십 년간 흉내 내던 가수들의 판에 먼지가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어떤 여가수는 이젠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고 나는 여전히 그럭저럭 살아 있구나

다른 어떤 여가수의 목소리는 늙고 나도 따라 늙고 낡아 버렸구나

쇼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뒤꿈치를 들고 늑골을 벌려 숨을 쉰다

나는 아름답게 늙고 싶다

나는 아름답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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