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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Aug 16. 2024

꿈을 꾸어야 한다면

꿈을 꾸어야 한다면 엄마를 만날게요

꿈속에서 엄마는 샘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었어요

감나무에는 샛노랗게 익은 감이 넝쿨째 대롱대롱

나뭇잎은 살랑살랑바람은 바람 바람 

하늘은 높고 파랗고 구름은 낮고 하얗고 

엄마는 바가지로 푼 샘물을 등짝에 뿌리며

"지민아 시원하지"

얇은 속살을 팍팍 문지르며 속없이 배운 때를 속절없이 흘려보내요

큰 다라에 얼음장 같은 지하수를 가뜩 받아 배추를 시치고

하얀 소금에 숨이 죽은 이파리에서 슴슴한 간이 살아나요

장독대에서 된장을 파 먹는 벌가지들이

무화과나무에 뿌려진 거름으로 꾸물꾸물 기어가 그렇게나 번식을 해요

시커먼 간장독을 닦고 한 큰 술을 뜬 엄마의 혀가

"쓰겄다"

날이 다하면 부엌으로 들어가 연탄불을 갈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요

불 속에는 댐배를 문 외할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앉아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썩어 들어가는 발을 잘라 꽃상여에 태우고 가셨어요

엄마는 그 잘린 발을 암시렇지않게 불속으로 내던져요

부뚜막에 오른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새끼를 물어다 광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광에서 흰 쌀을 퍼다 파드득 시친 쌀뜨물로 자작한 된장찌개를 끓여 저녁을 지어요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밥을 먹고 일찍 잠에 들고요

엄마는 자는 새끼들을 살피고 나는 꿈에서 엄마를 보아요

엄마의 하루는 잘 지지 않아요


꿈을 꾸어야 한다면 아빠를 만날게요

아빠는 뒷간에서 땔감을 가져와 

마당에서 불을 지피고 앉아 계셨어요

별 하나 없는 밤하늘엔 

둥근달이 둥실둥실 구름은 뭉실뭉실

하늘은 높고 하얗고 연기는 낮고 뿌옇고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아빠 무슨 생각해?

"없이야"

아빠는 한없는 한숨을  태우고 계셨어요

마당에는 그간 빌어먹은 삶이 태평하게 드러누워 있었고

그 무용한 조각들을 쓸어 담아 불 속으로 내 던저요

기름통으로 만든 화로에 불은 암시렇지않게 활활 타다 솟구치고

재는 허사가 되어 달을 향해 항해해요

아빠는 일어서서 그 달을 빤히 바라보아요

달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주 보고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말씀이 없고 할머니는 인자한 표정으로 웃고 계셨어요

새 하얀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는 고구마를 캐서 막걸리를 담그고 

할아버지는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술통을 달아 집 마당으로 내려주어요

아빠는 그 한술에 아이 야하게 스르륵 잠에 들고요

마당에는 불씨가 벌겋게 피고 죽고

우리 가족은 고구마 술통을 파서 창시를 채우고 이불을 깔아요

천장에는 매주가 달려 있고 달궈진 구들장이 밤새 숨을 쉬고요

초저녁 잠이 많은 아빠는 닭이 울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고 동이 튼 처마에 서리가 앉아요


이러구러 

바다에서 운저리를 잡아 온 동생은 샘에서 등목을 하고

형은 경운기를 몰고 신작로 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요

속옷만 입은 소년이 옆돌기를 하고 사뿐사뿐 걸어가 무화과를 따 먹어요

야간 고등학교에서 돈을 번 누나는 필통이랑 공책을 사서 소포를 보내오고

우리 4남매를 돌봐준 이모는 우물가에서 그 옛날 내가 떨어뜨린 인형을 찾고 있었어요

마당에는 마을을 나댕기다 집으로 돌아온 거멍이가 집을 지키고 

이브게니는 시베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스케이트를 타러 가요

새끼를 밴 고양이가 개집 위에서 암컷 둘 수컷 둘을 나란히 낳고 하얀 젖을 먹여요

젖을 먹고 간신히 기는 새끼가 흙을 파서 똥을 묻고 

젖을 뗀 에미는 하루를 길어 올려 주고 그제야 집을 떠나요


꿈을 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게요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꿈을 꾸러 갈게요

꿈을 사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돌아갈 수 없어도 꿈은 아직 있응께요

꿈을 파 먹을수 있다면 꿈에 있을게요

꿈을 꿀수 있다면 

그럴수 있다면 참말로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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