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어 모지민 Jul 22. 2024

털 난 물고기 모어


나는

어부의 물고기가 아닌 털 난 물고기

어부가 친 그물망에 걸린 물고기가 아닌 세상에 나온 털 난 물고기 모어


유월 유럽

살을 쥐어뜯는 더위

개 같은 여름의 시작이구나

모어는 겨울에 태어났고 신은 왜 여름을 주시어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가만히 숨만 쉬어 숨이 턱턱 막힌다

거리

한걸음 딛고 현기증이 나 그만 카페로 들어가 그늘에 몸을 숨긴다

에어컨도 아이스커피도 없는 엉뚱한 곳에서 늑골을 벌려 숨을 들이켠다. 얼씨구나 폐에 쓰잘데기없는 이물질이 가득 찬다

아뿔싸, 공기도 살펴 마셔라


참,

아름답지 않은 기억을 수집했구나

나는 수집의 여왕

어쩌자고 이역만리까지 더러운 기억을 끌고 왔을까

더러운 것들은 쉽게 들러붙었다가 어지간히 떨어질 줄 모르니 머리가 고장 나면 심장이 멈추면 멈추려나

참말로 징하다 징해

결국

예술만 남고 세상 모두 다 뼈도 못 추리고 사라질지니 오늘의 일기라도 더 써야겠다

세상엔 천사들이 많고 나는 나의 악함에 토악질이 난다

천사들은 내게 퍼 주고 바라는 게 없다

나는 가진 게 없어 되갚아 줄 게 없고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 그저 고민스럽다


칠월

삶에 지겨워 자빠졌는데 자꾸만 일어 나란다

낭실낭실 덩실덩실

벌써 칠월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럴 때 외치라고 그동안 주여! 를 남발했구먼

사는 것에 혼꾸녕이 났다가 엄마가 보내준 김치에 겨우 밥을 해치운다

부른 배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면 그것은 강 같은 평화이다

아빠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포도시 숨만 쉬고 있다

얼마 전 골반 뼈가 부러져 수술한 엄마는 병시중 당번으로 끙끙

내 부모는 어부가 아닌 농사꾼인데 난 그 밑에서 어여쁘게도 잘 자랐다

마침

어제 올라간 산에서 그 사랑을 보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사랑을 보았다

늙고 검은 달이 차면 나는 약을 털어 넣고 잠에 든다

꿈속에서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음날

털 난 물고기 모어는 메시랍게 헤엄 쳐 나아간다

길은 이어져 있으니, 하염없이 음파음파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