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흘러가야 하는데 멈추어야 하는구나.
나는 가야 하는데 잠시 아주 잠시 그 자리에서 꼼짝 마라.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사람들의 손 끝은 잽싸게 아주 잽싸게.
나는 그저 숨을 쉬고 그 숨이 요리조리 순환하다 명치를 콕 찌른다.
아! 뻑적지근하다.
나는 계속해서 흐르고 싶은데 한 발짝도 허락하지 않는구나.
세상 살이 하는 날은 별거 없이 피로가 기승을 한다
그새 포근한 집이 그립다.
그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조금 이른 시간에 눕고 싶다.
닫힌 입을 뗄 수가 없다.
나는 말이 없는 누드모델, 그저 나의 가녀린 몸짓만 필요할 뿐.
간절기, 에어컨 바람이 등짝을 때린다.
시큰둥 놀란 살결이 어머나! 쪼그라든다.
누가 볼까 몰라 자꾸만 아주 자꾸만 쪼그라든다.
아니지. 이미 항문의 털까지 다 보여 주고 말았는데 주눅 들 필요가 없지.
다 보여 주자. 더 보여 주자.
더 늘리고 더 벌리자.
도무지 쓸데없는 번잡스러운 생각들로 머리가 뭉친다.
머리만큼이나 무거운 시간이 게으르게 간다.
20분 가장 긴 포즈, 버티다 버티다 다리에 쥐가 난다.
설상가상 수업 전에 들이킨 찬 커피가 창자에서 번개 친다.
저기요 잠깐만요! 소리치며 화장실로 뛰쳐가고 싶다.
매일 밥을 잘 처먹으면 뭐 하나. 이리 성실하게 싸 재끼는데.
평생 말라 비틀어진 몸. 그리하여 비비 꼬는 동작은 잘도 나온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나는 차크라로 숨을 쉬는 명상가가 되기에는 글렀구나.
자꾸만 잘 가지도 않는 시계를 힐끔힐끔 본다.
시간은 느리게 보란 듯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 시간은 느려터지고 사는 시간은 요리조리 세차게 발버둥 쳐서 저만치 내뺀다.
한평 남짓, 수많은 모델들이 쓰고 간 담요 위에서 섰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 360도 뒹굴뒹굴 회전하다 간신히 찾아온 브레이크 타임.
단내 나는 숨을 몰아 쉬며, 아! 나는 살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달짝지근한 끝은 오고야 마는 법.
그러므로 내 한 치 앞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가주기를.
정처 없이 흘러 흘러 밤으로 새벽으로 고요하게 당도하기를.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성스러운 아침을 맞이하지 않기를.
요러하고 조러하게 되는대로 흘러가라
갈 거면 거슬리지 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순조롭게 가라.
오늘도 별 탈 없이 내 사지를 태워 흘러가는 시간에게 바친다.
나는 그 시간 안에 앉아 있거나 눕거나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