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상태로 느닷없이 눌려진 팔에 적잖이 당황했다. 카뮈의 열정적인 초기 글을 시선과 의식이 시간 차이를 두고 따라가던 중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날 아는 사람인가? '
친근함의 증명을 일종의 가벼운 무례함으로 표현하듯 혹시 반가운 사람일까? 잠시 기다려 본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어져야 할 어떤 단계의 인사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일까? 옆에 앉은 타인의 정당성을 찾아본다. 뜨거웠던 여름 두려움으로 69번 버스를 처음 올라탔던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옆자리에 앉았던 수많은 타인들과 이 사람과의 접점이 있을까?
찾기 어렵다.
합리적 접점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 경험에 비추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의 몸 아래 대부분 들어간 오른쪽 팔이 나에게 물어본다. 나 또한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카뮈에게 물어본다.
버스 운전기사에게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체중의 균형이 깨진 순간 나에겐 카뮈의 같은 줄을 세 번 돌고 다시 그 글의 문단을 한 번 더 바라볼 정도의 시간이었다. 아마도 한 정거장 정도 의식적인 방황 했을 것이다.
일단 놔두자.
창문 밖으로 왼쪽 어깨를 내놓지 않는 이상 공간을 더 만들어낼 재주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맞대는 것보다 존재를 인정하고 겹쳐서 가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이것이 지성인이고 지적 생명체의 선택이다. 알아듣기 힘든 말로 오른팔과 어깨에게 양해를 구했다. 시선도 달래서 맴도는 문단을 벗어나 다음 이야기로 집중했다. 카뮈는 자신의 묘를 미리 마련하고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었다.
숨을 쉰다.
모든 것이 정리되나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타인의 들숨과 날숨을 온몸으로 느낀 적이 있던가?. 5mm에서 10mm 사이로 천천히 들썩이는 몸의 일부가 내 팔 위에 있는 것이다.